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남자 Oct 31. 2020

봉기하라,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여

<에필로그> 세상의 남편들에게 전하는 작은 위로 


 남자이기는 하지만 남자가 아닌 사람들이 있다.

 한때는 위풍당당하고 자신감이 쁑쁑 넘치던 그들이었지만 결혼 후 살다 보니 남성성을 포기, 아니 거세당하는 남자들로 변해가고 있다. 세상의 법이라는 잣대가 그 남편들을 중성화 수술대에 올려놓고 꼼짝 마라, 아무 짓도 하지 마라며 조롱하는 듯하다. 우리는 그 가련한 남자들을 흔히 남편이라 부른다. 

 그 남편들은 아내로부터 무시당하고 아이들로부터는 그림자 취급을 받는다. 가정 내에서는 잘해봐야 삼식이 취급이나 당하고 산다. 그나마 삼시세끼 눈칫밥이라도 얻어먹는 부류의 남편들은 선택받은,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 자랑질을 하고 다니는 행복한 남편들 축에 속한다. 오늘도 많은 남편들은 집에서 가장 작고 구석진 외딴방에서 잠만 겨우 자고 나오기도 한다. 안방은 언제나 아내분들 차지이기 때문이다. 오손도손, 도란도란 밥상머리 대화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남편이 제발 출장 좀 가 주었으면 좋겠다는 한결같은 소망을 안고 살아간다. 그 능력도 없다면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해주었으면 한다.

 집에서의 서열도 언제나 개나 고양이 다음이다. 그렇다고 상전이 된 개나 고양이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나마 퇴근하면 꼬리라도 쳐주며 반겨주는 유일한 녀석들이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뼈 빠지게 돈 벌어다 주고 그 돈에서 몰래 비자금을 챙기는 남자들,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해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온갖 구박과 타박을 당하는 남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점점 척박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나가는 척, 있는 척, 당당한 척, 멀쩡한 척하며 일상을 살아내야만 한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도 있는 옵션이라고는 보이질 않는다. 돈 벌어다 주는 AI가 된 기분이다. 오직 하루하루를 견뎌나가는 방법 외에는 길이 보이질 않는다. 이러한 생활도 오래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다 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신만 그런 것도 아니다 회사 동료들도 다 사는 게 비슷비슷하다. 퇴근 후  매일 술 마시자고 꼬드기는 부장님은 아예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 같다. 상무님은 두 집 살림을 한다는 소문이 돈다. 세상이 어지럽다. 빙빙 돌아간다. 지구가 돌기 때문인지 태양이 돌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술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들의 타들어가는 가슴을 열어보고 싶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남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들은 정말 아무 일도 없이 잘 살아내고 있는지. 그것도 제법 행복하게 말이다.


 그렇다면 그 남편들은 그 수모를 당하면서도 뭐가 두려워 자신마저 속이며 거짓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까. 법이 무서워서, 재산이나 재물을 잃을까 두려워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잃을까 두려워서, 그것도 아니면 사회의 시선과 체면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일까. 결혼이란 도대체 어떤 제도이길래 인류의 문화유산처럼 굳건하게 철옹성을 유지하며 소멸되지 않을까. 또한 결코 진화나 진보하지 못하는 결혼이라는 낡고 문제가 많은 제도로 맺어진 부부란 어떤 존재일까. 선한 존재일까 아니면 악한 존재일까. 처음부터 선했지만 결혼 후 악해지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악했는데 그 사악함을 감쪽같이 숨기고 결혼해서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일까. 어렵고 난해하고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까지 하는 남편들의 세상을 들여다보려 했던 이유다. 너무나도 당연시되는, 어느 누구도 감히 반기를 들지 못하는 결혼제도와 그 제도의 희생자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두 가지만은 언제나 예외였다. 심지어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물론이고 세상을 창조했다는 하느님마저도 특정 집단에서는 무시되고 심지어 배척당하는데 말이다.      

 나는 얼마 전 아내와 이별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에게서 패기 처분되었다. 내게 이혼이란 그런 느낌이었다. 남편이라는, 아이의 아빠라는 심지어 가장이라는 중차대한 직책에서 해고당한 것이다. 물론 아내로부터 매달 실업수당을 받고 있지만 현실은 차갑고 암흑 같았다. 이혼 직후 삶의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플랜들을 만지작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과 번민 속에서 불면의 밤들이 이어졌다. 잠 못 이루는 고뇌의 밤은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들었다. 바이러스에 함락당한 노트북 윈도우를 삭제하고 새로운 것으로 다시 설치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슬프지만 견딜만했고 비참했지만 고독으로 승화시킬 수 있던 혼자만의 밤이었다. 그 밤들은 내게 말했다. 이젠 성인이 된 아이만 빼고는 인생을 리셋하라고. 어차피 아이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수 있는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기에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아이의 곁에는 이혼한 아내가 있기 때문에 가진 것도 능력도 젊음마저도 상실한 너까지 나설 필요 없다고. 답은 나와있었다. 인생을 리셋하기로 했다.  

 그래서 한국에 왔다. 명목은 신병치료와 휴양이었지만 실제로는 아내로부터 쫓겨난 것이다. 지난 한국에서의 2년은 휴양이나 안식년이 아니었다. 혹독한 유배였다. 육신과 심신마저도 병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치료하러 왔다가 오히려 더 큰 병을 얻기도 했다. 주치의 선생님과 마주 앉을 때마다 타이르듯 내게 조언을 주셨다. 모든 것을 이젠 내려놓으라고. 그리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라고. 그것만이 심신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현대 의학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말이다.

 선생님은 모든 병의 근원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일갈하시고곤 했다. 서울대병원 신경과에서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을 때 의사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육체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마음을 먼저 치료하지 못하면 어떤 치료도 일시적인 응급치료에 불과할 뿐이라고. 살고 싶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루하루를 즐기라고. 이젠 안다. 나의 병들이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난긴 각방과 별거생활을 통한 이혼의 과정에서 나는 무너져버렸다는 것을. 아내 또한 얼마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를. 그래서 나를 바라보고 아내를 바라보고 주위를 둘러보려고 무거운 눈을 들게 되었다.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 보였다. 앞을 보아도 옆을 보아도 뒤를 돌아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내가 쓰긴 했지만 그들의 시각으로 풀어낸 이 글은 단순한 이혼 이야기가 아니길 바란다. 중년이 되면 아내로부터 버림받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중년 남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고 공감해주고 싶었다. 위로가 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겠지만.    

 그들은 정말 속물이고 언제까지나 철이 들지 않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 어린아이들만도 못한 사람들인지, 시대의 흐름을 절대 좇아가지 못한 채 여전히 봉건시대의 가부장적 사고에 갇혀 사는 사람들인지, 유교와 성리학의 잘못된 만남으로 인해 태어난 사생아 즉, 남성우월주위자인지, 육아나 기타 집안일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는지, 민들레 홀씨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종족보존의 위대한 사명을 위해 수컷의 DNA를 무분별하게 남용한 사람들인지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물론 많은 커플들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잘 살아내려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노력 중일 것이다. 행복이야 어찌 되었든 말이다. 어차피 어느 철학자가 말했던 것처럼 행복은 있다고도 말할 수 없고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무형의 "어떤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남편들도 삶의 최전선에서 매일매일 죽을 똥 싸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지금도 벌이고 앞으로도 벌여야만 한다. 남편의 기구한 운명이기도 하다. 이처럼 살벌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남편들이다. 아내들이라고 다를 바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남편들만큼 살벌하진 않을 것이다. 먹고 먹히는 법칙은 무너진 지 오래다. 먹히고 또 먹히는 정글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들은 인정해 주지 않으려 한다.      



 삶의 전선 말고도 돌아보고 지켜야 할 또 다른 전선에도 목숨을 걸라는 요구는 지극히 당연하게 보인다. 하지만 둘 다를 잘하는 남편들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받을 만한 남자들이다. 하나의 전선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내들도 맞벌이를 해보면 그 전선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곳인지를 알 것이다. 그렇다고 육아전쟁이나 가사 전쟁이 결코 쉽거나 만만하다는 말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편들은 아내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주도권을 상실한 것도 모자라 각방이나 별거는 물론이고 남편의 직무에서 해고를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지고 있다. 새로운 삶의 트렌드로 고착화될까 봐 걱정이 될 정도다. 내가 아내로부터 해고를 당해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핏대를 올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어쩌다가 남편들은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가정에서까지 해고를 당하고 있는지, 그 괴로움과 고통을 과연 누가 알아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나처럼 말이다. 아무쪼록 이 글들이 나와 같은 처지의 남편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물론, 무섭고 난해한 아내들에게도 말이다. (PS: 본 내용은 픽션과 논픽션이 혼합된 글이며, 이혼을 아내가 아닌 남편의 시각에서 바라본 이야기임.)              



이전 19화 그녀가 죽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