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25일 런던 리젠트 파크에서 만난 책 읽는 할아버지의 모습. 장갑을 끼고도 손이 많이 시린 날이었다.
책 읽는 사람은 또 하나의 우주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돈은 없지만 재벌 총수보다 훨씬 큰 부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이 아니 행동으로 책 읽는 모습을 매일 보여주었다. 아이에게 유산으로 물려둘 재산도 없었지만, 있다한들 선뜻 물려줄 마음도 없었다. 대신 인생을 좌지우지할 좋은 습관 하나쯤은 물려주고 싶었다. 따라서 매일 부모의 책 읽기는 은연중에 아이에 대한 압력행사였다.(부모가 하는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들은 아이에게 거울이 된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아이에게 제발 엄마 아빠처럼 매일 (조금씩이라도) 책 좀 읽으라고. 그렇다고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개과천선해서 책과 그렇게 친해진 것도 아니긴 하지만.
"아빠! 어제 마드리드 시내 구경하다가 너무 더워서 죽는 줄 알았어. 41도가 뭐야! 그러다 런던의 한인마트에서 파는 한국산 마른오징어처럼 되는 거 아냐. 오늘은 호텔에서 하루 종일 쉬면서 책이나 읽을까? 저녁때 좀 서늘해지면 공원 산책이나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너 또 책 읽는 척하면서 하루 종일 게임하려고 하는 거지?" "아냐, 정말 책 읽을 거야. 책도 몇 권 가져왔는걸."
"헐, 네가 책을 가져왔다고?" "그렇다니깐."
"좋아. 그럼 오늘은 어제처럼 더위에 개고생 하지 말고 호텔에서 책이나 읽어볼까. 아빠도 소설책 몇 권 가져왔거든. 책 속에는 우리가 여행하면서 직접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것들이 분명 존재하니깐."(이 모든 아들과의 대화는, 아이가 한국말을 못 하기 때문에 영어로 이루어짐)
몇 년 전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과 마드리드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스페인의 살인적인 더위를 피하기 위해 떠나기 전 아들과 나름 머리를 맞대고 전략회의까지 하였다. 문제는 더위였다. 스페인의 더위는 그리스나 이태리의 여름처럼 태양이 작렬한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기 때문에 지중해를 끼고 있는 나라들의 집들에는 창문이 이중창이다. 그렇다고 한국의 더블 글레이징 이중창문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중창문이란 유리창문 밖에 나무로 된 창문이 하나 더 있다는 뜻이다. 커튼이나 블라인드로는 작렬하는 오후의 직사광선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만들어진 문화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것이 바로 지중해나 아프리카의 작렬하는 햇빛이다.
드디어 영국에도 6월이 찾아왔고 아이는 방학을 하였다. 아이는 더위에 유독 민감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추운 것은 견딜 수 있는데 더위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만다. 부전자전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스페인의 여름을 회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들의 의견에 따라 7,8월 한 여름을 피해 6월 중순에 떠나기로 하고 마드리드로 떠났던 우리의 전략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곧 밝혀지고 말았다. 한 여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드리드 시내는 연일 40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심지어 마드리드 시내의 가로수가 노란 레몬이 주렁주렁 달린 레몬나무일 줄은 미처 아들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세심하게 정보를 수집한다. 주로 맛집 위주의 정보이기는 하지만 발길 닫는 대로 여행을 하는 내게 아이는 최고의 가이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가이드마저도 40도라는 수치가 주는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길거리에는 가로수에서 떨어진 레몬들이 나 뒹글고 있었다. 마드리드는 그만큼 더웠고 따라서 우리는 도심의 공원 위주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마드리드에는 바다도 큰 강도 없다. 저녁 9시에도 거리의 온도계 전광판에는 39도를 찍고 있었다. 그렇다고 5일간의 여행 대부분을 에어컨이 빵빵한 호텔에서 뒹굴뒹굴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아이의 성장 속도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추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어 주고 싶었다. 아빠로서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추억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아이와의 추억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것은 단둘이 여행을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년 아이의 방학 때마다 런던에서 가까운 유럽의 도시들을 헤매고 다녔다.
그날 늦은 오후, 우리는 마치 바퀴벌레처럼 슬금슬금 호텔을 기어 나와 아무튼 여행을 시작했다. 호텔에서 나와 시내로 향하는 길에 커다란 공원이 있었다. 공원에서도 그늘만 찾아다녀야 할 정도로 더위는 맹렬했다. 그런데 그 더위에도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스페인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웃통을 벗고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도 할아버지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아이는 그 모습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변했다. 어떠한 환경이나 조건에서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성만은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게임을 줄이고 책과 친해지는 대반전 같은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게임의 세계 말고도 휴대폰이라는 마약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극한 상황에서도 책 읽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거나 잠깐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면 대부분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한다. 초면인데도 말이다. 내가 보고 느낀 외국에서 책 읽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이들에게는 마음의 벽이나 경계선이 없다. 훅 치고 들어가도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했다고 당황하거나 불쾌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진한 감동으로 내 마음을 뒤흔들었던 장면들은 아주 많다.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거나 한일전 축구에서 승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역경을 이겨내고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들도 진한 울림을 준다. 하지만 대단한 상황이나 스토리들만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한적한 공원의 벤치나 덜컹거리는 이층 버스 또는 시끄럽고 번잡한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도 묘한 감동을 느낀다. 이게 다 스마트폰이 바꿔버린 디지털 세상 때문일 것이다. 누가 보면 별거에 다 감동을 받는 사람이라고 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종종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런던의 여름 지하철이나 또는 극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공원에서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 사람들은 아쉽게도 주로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나 할머니였다. 그것도 체감온도가 한참 마이너스인 성탄절날에 런던의 공원에서나 아니면 초여름의 40도가 넘는 마드리드의 공원에서 말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도 그러한 사람을 만났다. 영국은 브렉시트와 코로나라는 두 마리 토기를 동시에 쫒고 있는 중이었다. 한 마리도 벅찬데 두 마리 토끼는 쫒아봐야 잡을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브렉시트는 노딜을 두고 막판 협상에서 한 숨 돌리며 잠깐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코로나는 변종 바이러스까지 출몰해서 3차 록다운을 앞둔 크리스마스 임시 록다운중임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단 하루이긴 하지만 잠깐 한 숨 돌릴 수 있는 날이 크리스마스날이다. 왜냐하면 모든 대중교통수단과 상점들이 올 스톱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도 저녁 7시까지 일해서 당일날은 하루 종일 집에서 뒹글 거리며 책이나 읽을 심산이었다. 하지만 오후가 되자 외출하고픈 욕망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숨어 지내다가 틈만 나면 활동을 하려는 바퀴벌레처럼 말이다. 평소 동네 주위만 산책하던 내가 큰 맘먹고 런던 시내까지 걸어서 산책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출몰하기 전 창문을 열어보니 찬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장갑과 목도리까지 챙겨서 집을 나섰다. 책보다는 산책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런던 시내 리젠트 파크의 벤치에 앉아 책 읽는 노신사를 만난 것이다.
산책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풍경들이 내 의식의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었지만 그것은 미묘한 것에 불과했을 뿐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장면들은 동시에 의식의 잔영에서 지워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장시간 산책을 하면 운동 효과도 탁월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정신 건강이다. 머리가 맑아진다. 맑아진 머리에서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르기 마련이다. 어느 철학자(니체)는 산책을 하지 않고 쓴 책들은 모두 사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칸트를 비롯해서 위대한 철학자들의 하루 중 일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독서와 더불어 산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어려서 읽고 싶은 욕구를 "사회과부도"라는 지도책을 보며 달래야 했다. 산골 마을에 도서관이나 서점이 있을 리 없던 시절이었다. 상황은 50년이나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골집에는 책이라고는 아버지가 보시던 옥편과 토정비결이 전부였다. 책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수수대로 만들어진 커다란 원형 울타리에 고구마가 가득 들어있었다. 우리는 그 고구마 보관 시설을 "고구마깡"이라고 불렀다. 그 고구마는 대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간식 창고였다. 중요한 사실은 그 흔한 위인 전집이나 백과사전 하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구황작물을 간식으로 먹고 자란 산골 아이가 책을 읽었을 리 만무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연합고사"라는 시험을 치러서 전주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주에는 커다란 서점이 몇 개 있었다. 학교에는 도서관이 있어서 원하는 책을 실컷 읽을 수(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있었지만 내신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민주화 항쟁이 한창이던 시절, 급변하는 시국 문제에 정신이 팔려서 또한 읽지 못했다(않았다.)
책을 읽기 시작한 건 공교롭게도 한국 책을 구할 수 없는 이민 이후부터였다. 영국으로 이민을 가보니 한글로 된 활자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한글로 된 소설 등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1년에 한 번씩 잠깐 한국에 다녀올 때면 박스로 몇 박스씩 책부터 구입해서 선편으로 영국으로 보내고 나서 볼일을 보고 다녔다. 그렇다고 하루에 한 권씩 읽어재낄 수는 없었다. 그럴 만큼 책도 없었지만 이민 초기에 먹고살기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었다.
책에 대한 짝사랑에 빠져있던 나에게 갑작스러운 시련이 닥쳐왔다. 40이 넘어서기 무섭게 양쪽 다 1.5이던 시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주범은 바로 "노안"이었다. 한참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살던 나로서는 최악의 난제를 만난 것이다. 돋보기를 쓰고는 10분 이상 집중하기 어려웠다. 머리가 아파서 돋보기 도수를 여러 가지로 조절해서 안경 몇 개를 두고 읽어보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낮에는 일을 해야 해서 퇴근 후 밤에 읽으려니 더욱 힘이 들었다. 그래도 계속 읽었다. 아이가 잠들기 전에 엄마나 아빠는 항상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골방 같은 서재에서, 엄마는 대궐(?) 같은 거실에서 말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매일 저녁 책을 읽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접하였다. 그래서 기대했다. 아이만은 어려서부터 책을 읽었으면 하고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이에게는 책 읽을 시간이 너무 없었다. 세 살이 채 안되어 벌써 데스크톱 컴퓨터를 자유 자재로 가지고 놀던 아이는 책과는 친할 리가 없었다. 게임하느라고 바빠서. 어려서부터 배우고 읽힌 무궁무진한 게임의 세계에 빠져든 것이다. 그래도 집에서 자신만 읽지 않고 게임하는 것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은 가지고 있었다. 상황은 아이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서부터는 책 대신에 여행을 인생 공부로 선택하였다. 최소 1년에 두 번 이상은 아이와 함께 해외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국내(영국) 여행은 더욱 자주 하려 했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해외여행에 더 비중을 두게 되었다. 해외라고 해봐야 런던에서 비행기나 기차로 한두 시간 거리의 유럽이긴 하지만. 어쨌든 부자간의 여행에서도 책에 대한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다.
2020년 나를 감동시킨 최고의 장면은 크리스마스날 런던 리젠트 파크에서 책 읽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영국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추위를 타지 않는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 추운 날 공원에서 책을 읽을 용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아이나 나는 언제쯤 저런 멋진 모습을 일상의 테두리에서 자연스럽게 연출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책은 책상이나 도서관에서만 읽어야 한다는 아주 오래된 생각부터 버리면 가능해질까. 오랜만에 만나 영국 신사의 아름다운 모습에 꽁꽁 얼었던 몸과 마음이 훈훈해지면서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