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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Dec 24. 2020

고요한 밤

언니 이제 자야지

 세수를 하고 난 뒤 젖은 수건을 라디에이터에 올렸다. 저녁 무렵에는 미지근하던 라디에이터는 밤이 되자 뜨거워져있었다. 수건을 올려두면 금세 빳빳하게 말라갔다.     


 고요한 밤이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된 직후 기숙사에 남아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말이었고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기숙사에는 나처럼 약속이 없거나 갈 곳 없는 몇 명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기숙사는 1층부터 4층까지가 숙소, 5층은 텔레비전이 있는 휴게실이었다. 내가 있던 방은 1층에 있었다. 경비실을 거쳐 기숙사로 들어오면 바로 옆에 사감실이 있고 기다란 복도가 펼쳐진다. 복도를 따라 걸으면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고 그 다음부터 방이 시작된다. 층마다 열다섯 개 정도의 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방의 구조는 모두 똑같았다.

 길쭉하고 좁은 방 한 가운데는 작은 탁자가 놓여있고 양 옆으로 이층 침대 두 개, 작은 거울이 붙은 옷장 네 개, 책상과 의자 네 개가 있다. 유리창에는 사시사철 빨지 않는 무거운 커튼이 걸려있었고 창가 라디에이터에는 젖은 수건과 양말이 올려졌다.     

 

 “이제 먹을까?”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컵라면이 완성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얇은 종이뚜껑을 뜯어내자 맵고 진한 인스턴트라면 냄새가 훅 끼쳤다. 우리는 라면 뚜껑을 고깔모양으로 말아 라면을 건져 올렸다. 나와 함께 한밤중에 컵라면을 먹고 있었던 사람은 다른 방에 살고 있었던 한 살 많은 언니였다. 약간 가무잡잡하고 순한 얼굴에 작지만 까만 눈동자가 또렷했고 단발머리에 한쪽에만 실핀을 찌르고 다녔고, 말수가 적었지만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던 언니. 다들 고향에 내려가고 방에 혼자 남아있던 차에 기숙사 식당에서 언니를 만났다. 함께 밥을 먹고 매점에 가서 과자를 사들고 휴게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애들도 없는데 혼자 방에 있으면 좀 심심하지 않을까’ 그런 말을 꺼내게 되었고, 그날 밤 내 방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언니는 베개와 이불을 챙겨와서 내 이층침대에서 대각선으로 내려다 보이는 일층 침대에 자리를 폈다.      


 기숙사에서 라면 취식은 금지된 행동이었지만 기숙사 생활을 한 지 일주일 만에 금지된 일들을 몰래 하는 재미를 배웠고, 며칠만 지나면 완전히 기숙사를 떠나게 될 참이었으니 별로 상관없었다. 게다가 국물까지 완벽하게 먹어서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다면 과자를 먹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었다. 저녁을 먹고 과자까지 먹었지만 라면을 먹을 배는 언제나 따로 있었다. 겨울밤은 길었고 우리는 잠이 오지 않았다. 라면을 후후 불면서 먹은 다음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커피믹스까지 타서 마셨다.      


 평소에 말수가 적다고 생각했던 언니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다른 애들보다 나이가 많아서 입학하고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이야기부터 새로 들어간 동아리에서 자꾸 관심을 표시하는 선배 이야기까지. 무엇보다 언니는 고향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야.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이웃들 관계가 밀접하고 작은 마을이라서 버스에서 내리면 마을 초입에서부터 다 아는 얼굴들. 인사를 하지 않거나 옷차림이 평소와 다르거나 조금만 눈에 띄는 행동을 해도 어느 집 자식이 어떻다더라. 하는 말이 금세 돌아오는. 우리집은 목수집으로 불렸어. 아버지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목수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웃들이 부를 때마다 가서 밥상이나 문짝, 책상이나 의자 같은 것들을 고쳤어. 그런데 웃기는 일이 뭔지 알아? 우리집에는 멀쩡한 가구가 하나도 없었어. 너무 오래되어 낡아서 부서지거나 던져서 부러진 것들을 테이프나 노끈 같은 걸로 고정시켜서 그냥 썼으니까.”     


 ‘던져서 부러진 것들’이라는 말에 ‘왜?’라는 물음이 쏙 들어갔다. 나는 원래 왜냐고 자주 물어보는 편인데 그때는 물어볼 수 없었다. 던졌다는 것은 폭력이 있었다는 의미인데, 그런 깊은 이야기까지 주고받기에 우리의 친분이 너무 얕았기 때문이다. 나는 언니에게 시골마을이면 공기가 좋겠다며 말을 돌렸다.      


 “고향이 시골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공기가 좋겠다는 말을 해. 물론 시골 공기는 좋아. 하지만 우리집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 창문이 하나도 없는 창고에서 살았으니까. 잘린 목재나 톱, 망가진 의자 같은 것들이 놓인 커다란 창고는 아버지가 목수 일을 하는 작업장이었고, 창고 구석에 놓인 사다리를 올라가서 문을 잡아당기면 바로 우리 가족이 사는 집이었어. 창고의 천장이 우리집의 바닥인 셈이야. 창문이 없는 창고는 어두웠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집도 마찬가지였어. 불을 켜지 않으면 캄캄했어. 아버지는 아침이 되면 창고로 내려가서 샷시문을 올렸어. 그러면 빛이 들어왔어. 샷시문 크기만큼의 빛이 들어왔어. 아버지는 샷시문 근처에 의자를 두고 앉아 라디오를 틀어놓고 밖을 내다보다가 사람들이 부르면 일하러 나가곤 했어.”     


 샷시문 크기만큼의 햇빛이 들어오는 창고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완벽한 어둠에 잠긴 창고에 문 크기만큼의 작은 빛이 들어온다. 빛은 바깥과 접한 작은 어둠만을 조각내서 삼키고 멈춘다. 창고를 채운 어둠은 그득하지만 빛은 더 이상 발을 내딛지 않는다. 문이 더 열리지 않는 한 새로운 창이 생기지 않는 한 자신은 나머지의 어둠을 어찔할 수 없다는 듯 완강히 버틴다. 그 빛 근처에 목수가 앉아있다. 목수 뒤로 펼쳐진 어둠이 깊다. 언니의 이야기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나는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남은 커피를 마시고 있는 언니를 쳐다보았다.      


 “해가 질 때면 문을 닫았어. 그래서 늦게 집에 돌아오는 날에는 다들 알아서 샷시문을 살짝 올려서 들어왔어. 안에서 자물쇠를 채우지 않았거든.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장 사다리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어. 집에 아무도 없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나한테는 두 살 많은 오빠가 있는데,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중학교를 가면서부터 화를 잘 내고 거칠어졌어. 어릴 때는 아버지가 술에 취하면 오빠가 나를 챙겨주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를 때렸어. 기분 좋아 보이다가도 말 한마디에 갑자기 화를 냈어. 그러면 고개를 숙이고 하라는 대로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걸 몇 번의 경험 끝에 알게 됐어. 오빠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다녔고 일찍 술과 담배를 했어. 가끔 어릴 때 착한 오빠 모습이 보일 때도 있었지만 다시 가까워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이 들면 슬펐어. 나는 집을 떠나고 싶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을 펼치고 공부했어. 방에 불이 꺼질 때까지 공부를 했어.”     


  갑작스럽게 털어놓은 가족과 오빠에게 당한 폭력 이야기에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나도 오빠가 있다고 어쩌다가 맞은 적도 있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다고 위로를 해야 하는 걸까. 할 말을 찾지 못해 나는 어쩌면 심각한 표정으로 언니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색한 침묵의 시간, 은 길지 않았다. 언니가 먼저 피식 웃으면 말을 꺼냈다.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 나도 다행이다 싶은 얼굴로 웃었다.      


  언니는 그 뒤로 고향입구에 서있던 당산나무와 저수지 이야기를 하다가 어릴 적 함께 놀던 친구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버스를 타고 밤에 내려서 걸어왔던 길이 무서웠다는 이야기를 더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 “이거 진짜 있었던 일인데” 라며 까만 눈을 반짝였다.


 “고등학교 때는 야간자습이 날마다 있어서 밤에 마지막 버스를 타고 와야 했거든. 그런데 그날은 갑자기 늦은 저녁부터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천둥 번개까지 치는거야. 반 아이들은 때는 이때다 싶게 무서운 이야기를 시작했어. 나는 원래 겁이 많아서 귀신이야기는 질색이거든. 그런데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건 막을 수 없었어. 그날 처음으로 ‘머리로 콩콩콩’ 다니는 1등 귀신 이야기를 들었어. 야자가 끝나고 마지막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어둡고 추웠어. 내가 살던 동네는 거의 종점에 가까운 곳이라 버스에는 버스기사 말고는 나 혼자밖에 없었어. 비가 몰아치는 버스 차창으로 1등 귀신의 얼굴이 콩콩콩 부딪쳐올 것만 같아서 창밖을 안 보려고 단어장을 꺼내고 볼펜으로 뜻을 적고 있을 정도로 무서웠어. 버스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가는 길은 십 분 정도 걸렸는데, 그날따라 비바람 때문에 걷는 속도가 느리더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은 채로 창고에 도착했어. 샷시문을 살짝 들어올리고 들어갔지. 언제나처럼 컴컴한 창고에서 사다리를 찾아서 더듬거리며 나아갔어. 불을 켜지 않아도 늘 있던 곳에 있으니까 대충 짐작하며 찾아갈 수 있거든. 어둠 속을 휘저으며 걷다가 드디어 사다리를 찾았어.”     


 언니는 사다리를 밟고 집을 오르기 시작했다. 젖은 운동화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졌고 가끔 미끄러워 헛발을 딛기도 했다. 사다리가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었다. 중간쯤 올라갔을까. 갑자기 무언가 언니의 왼쪽 발목을 붙잡았다. 억센 힘이 느껴졌다. 순간 언니는 생각했다. 이것은 분명 나를 해치려고 하는 것이다. 나를 끌고 내려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무얼까 싶어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아득한 어둠만 펼쳐졌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왼쪽 발목을 붙잡은 힘은 더욱 강해졌다. 언니는 오른쪽 발로 왼쪽 발목을 붙잡고 있는 그것을 찍어 누르고 찼다. 그럼에도 그것은 발목을 놓지 않았다. 순간 버스에서 꺼냈다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볼펜이 떠올랐다. 언니는 한손으로 사다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발목을 붙잡고 있는 그것을 불펜으로 세게 찍었다. 그것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니 발목을 놓았다. 언니도 비명소리에 놀라 볼펜을 떨어뜨렸는데 주울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사다리를 달려 올라갔다. 문을 밀어올리자 아직 불이 켜져있는 방에는 텔레비전을 보다 잠이 드신 아버지가 보였다. 언니는 젖은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말린 뒤 이불 속에 들어갔다. 그제야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한참 울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방문을 올리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는데, 창고에 지난밤에 떨어뜨린 볼펜이 있었어. 피가 묻은 볼펜. 샷시문이 살짝 올려져있었고 그 근처 바닥에는 오빠가 누워있었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샷시문을 올리는데 오빠가 살짝 눈을 떴어. 실핏줄로 붉어진 눈. 술냄새가 지독했지. 나는 샷시문을 올리고 밖으로 나갔어. 그날밤 내 발목을 잡았던 건 뭐였을까?”     


 나는 언니가 일부러 말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말하면서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으로 털어놓는 동시에 숨기려 했던 어떤 비밀에 대해.


 그날 밤은 잠들지 못했다. 가끔 밖에서 술에 취해 지르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언니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오줌이 마려워졌다. 화장실을 갈까 말까. 새벽 3시쯤 되었을까. 그 시간에 문을 열고 슬리퍼를 신고 기숙사 복도를 지나 화장실을 가야 하는 건 일종의 모험이었다. 나는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도저히 참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침대에서 뛰어내려 화장실로 갔다. 밤에도 불이 환한 화장실은 무서울 것이 없었지만 새벽에 혼자 기숙사 화장실에 있다는 것 자체로 무서웠다. 다행히 콩콩콩 귀신도 파란 휴지 빨간 휴지 귀신도 만나지 않고 무사히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덮었다.

     

 무슨 소리가 들렸다. 스윽 천이 스치는 소리.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 콩콩콩 머리를 막는 소리. 나는 이불 속에서 얼굴만 살짝 꺼내서 아래를 살폈다.      


 일층 침대에서 자고 있었던 언니가 어느새 옷장 앞에 서있었다. 언니는 옷장에 머리를 콩콩콩 박으며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었다. 그래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언니는 눈을 뜬 채 옷장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콩콩콩. 공부해야 해.

 나는 이층침대에서 내려가 떨리는 목소리로 언니를 불렀다. 언니는 돌아보지 않았다. 좀 더 다가갔다. “언니 지금 뭐해?” 언니는 옷장을 향해 선 채로 차갑게 대답했다. “공부하고 있잖아.”  

 언니는 옷장을 향해 다시 머리를 박았다. 나는 언니를 붙잡으며 말렸다. 그제야 언니는 나를 돌아봤다. 내가 알고 있는 순하고 웃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아직 잠에서 벗어나지 못한 얼굴이었다. 나는 언니를 침대로 데려갔다. “언니, 자야지.” 언니는 누우려 하지 않았다. “공부해야 하는데.” 겁에 질린 어린 목소리였다. 나는 이제 공부 안 해도 된다고 잘 시간이라고 말해주었다. 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누웠다. 언니가 다시 잠들 때까지 지켜보다가 나도 이층침대로 올라왔다.


 말하지 못한 상처를 떠돌며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언니와 그런 언니를 지켜보며 잠들지 못하는 내가 가끔 고요를 깨뜨릴 뿐 무서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고요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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