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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Nov 18. 2020

바로 너!

하나코와 미치코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 이모네 집이 있던 동네.

산동네라 부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영도대교를 건너서 몇 정거장 지나 내려 비탈을 오래 올랐다. 방학 때 몇 번 가본 게 전부지만 사촌언니들이 데리고 가주었던 태종대 해수욕장과 남포동 먹자골목에서의 기억이 즐겁게 남아있다. 동네 교통편이 좋지 않아 외출은 한두 번 정도. 내가 지낸 일주일 남짓한 시간 대부분은 집에서 보냈다.      

 비탈을 한참 오르다가 골목으로 들어서서 두 번째 집. 낮은 대문 안쪽으로 두 방향으로 갈린 계단이 보인다. 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마당으로 내려가면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현관이 있다. 현관을 열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안방과 작은방, 부엌, 화장실이 차례로 있다. 햇볕이 잘 들지 않아 불을 켜지 않으면 복도도 부엌도 화장실도 어둡다.

 마루 구석에는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을 올라 높은 문턱을 넘으면 갈색 카펫이 깔리고 검은 피아노가 놓인 넓은 방이 하나 있다. 벽에 안중근 의사의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글귀가 적히고 손도장이 찍힌 족자가 걸려있다. 맞은 벽에는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을 모아두는 창고 용도의 긴 벽장이 있다. 방 크기에 비해 물건이 없어서 휑한 느낌이다.

 벽장 옆 미닫이문을 열면 갑자스럽지만 신당이다. 벽면은 화려하게 채색되어있고 금빛 불상과 향로, 쌀이 담긴 그릇이 놓인 제단이 있다. 당시 이모는 일본의 신흥종교인 천리교를 믿고 있었다. 제단까지 갖춘 걸 보면 일반신도보다 높은 위치였던 것 같다. 가끔 신도들이 신당을 찾았다. 대문에서 이층을 향해있는 계단으로 곧장 들어왔기 때문에 가족들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이모는 신당은 출입금지라고 엄하게 일렀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이모가 집에 없을 때마다 신당에 들어갔다. 쌀을 만지고 향냄새를 맡고 알록달록한 그림을 구경했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다시 옆방으로 건너가 피아노를 쳤다. 틀리지 않기 위해 건반에 집중하고 있으면 누군가 옆에서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 들곤 했다. 옆을 보면 아무도 없었다. 피아노를 치고 있으면 등이 서늘해졌다. 뒤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었다.


 밤이 되면 무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사촌언니들은 이야기를 잘했다. 이야기의 흐름을 살피면서 강약 조절을 잘 했는데, 부산 사투리가 섞인 목소리에 몰입감은 배가 되었다. 특히 둘째 언니는 무서운 귀신 이야기를 잘했다.


 무더운 여름밤, 이모 집에서 가장 시원한 이층 피아노방에 둘러앉는다. 신당으로 향하는 미닫이문은 닫고 작은 알전구만 켜놓는다. 이야기가 시작된다. 둘째 언니는 낮고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이건 진짜 있었던 일인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엉덩이를 들썩여 가까이 다가간다.      


 -일본 어느 마을에 단란한 가족이 있었어. 남편은 대학교수. 부인은 꽃집을 했어.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금술 좋은 부부였어. 부인은 하나코, 미치코 쌍둥이 딸이 태어난 다음부터는 꽃집을 접고 집에 온실을 만들어 꽃을 키웠어. 햇볕이 잘 드는 마루에 앉아 부인은 딸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었어. 퇴근하는 남편의 손에는 맛있는 음식과 딸들에게 입힐 예쁜 옷이 들려있었지. 소문날 정도로 행복한 가족이었어. 그런데 불행하게도 두 딸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마을에 큰 지진이 일어났어. 남편이 있던 학교는 피해가 적었는데 부인과 딸들이 있는 집은 거의 무너졌어. 두 딸과 온실에 있었던 부인은 땅이 흔들리자 아이들 위로 엎드렸어. 온실 유리가 깨지며 쏟아졌어. 남편이 집에 도착했을 때 부인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어. 쌍둥이 딸들만 차가운 엄마 품안에서 울고 있었지.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둘째 언니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본다. 창백한 얼굴에 두 눈을 크게 뜬 얼굴은 낮에 보았던 상냥한 언니가 아닌 것만 같다. 언니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남편은 슬퍼하며 날마다 술만 마셨어. 가끔 두 딸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어. 다 너희 때문이야. 그 말을 들은 뒤부터 딸들은 아버지를 피했어. 아버지는 겉으로는 멀쩡했어. 예전처럼 학교에 출퇴근을 하고 수업을 했어. 하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술을 마시고 딸들을 원망했지. 그럴 때마다 딸들은 이 세상에는 오직 자신들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언제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위로하고 더 의지했어. 둘은 마치 한 사람처럼 행동했어.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아버지의 원망을 들을 때마다 약속했어. 절대 결혼하지 않고 평생 둘이서 살 것. 이 약속을 깨뜨리는 사람은 죽음으로 갚을 것. 하나코와 미치코는 손가락을 물어뜯어 흐르는 피로 맹세했어.     


 손가락을 물어뜯어서 피가 날 수 있다니. 자신의 손가락을 물어서 피가 날 정도면 얼마나 세게 물어야 할까. 나는 희미한 빛에 흔들리는 언니 얼굴을 보며 내 손가락을 물어보았다. 아무리 세게 물어도 자국만 남을 뿐 피는 나지 않았다.      


 언니가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려고 할 때 신당 미닫이문이 덜컹거렸다. 그 자리에 모인 우리는 모두 신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분명히 닫았는데.”  “나도 봤는데 아까는 닫혀있었어.”

 순간 정적이 흘렀다. 후텁지근한 바람도 멈추고 알전구만 깜빡거리는 이층 피아노방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우리 그만 내려갈까?” 내가 말했다. 하지만 둘째 언니는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이야기의 끝을 맺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건강이 점점 나빠져서 두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어. 딸들은 슬프면서도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어. 이제는 정말 세상에 단 둘만 남은 딸들은 평생 함께 하자는 맹세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어. 그렇게 세월이 흘러 스물일곱 살이 되었어. 뱃속에서부터 하나처럼 똑같은 삶을 살아왔던 두 딸에게도 변화가 생겼지. 어느 날부터 동생 미치코는 언니 하나코와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옷을 입고 집에도 늦게 들어왔어. 그리고 언니가 하는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어.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언니는 동생이 자신과 똑같이 길게 기르던 머리를 단발로 자르고 오자 의심이 생겼어. 그때부터 언니는 동생을 몰래 뒤쫓았어. 시간이 갈수록 자신과 달라지려고 애쓰는 동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싶었던 거야. 그러다 알게 됐어. 동생에게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는 걸. 그날 언니는 동생에게 말했어. 남자와 헤어져. 평생 나와 둘이서만 살기로 약속했잖아. 동생은 세상에 행복한 일이 너무 많아서 평생 언니와 사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어. 나는 결혼할거야. 언니는 동생의 변해버린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어. 그래도 아직 기회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동생을 계속 설득했어. 동생은 그런 언니를 견딜 수 없어서 집을 나오기로 결심했어. 언니의 옷과 같은 옷은 넣지 않고 짐을 쌌어. 피로 했던 맹세는 잊어버린 거야? 나만 남겨두고 떠나다니. 언니는 짐을 싸서 대문을 향해 걸어가는 동생을 돌로 내리쳤어. 동생은 그대로 쓰러졌어. 순간 지진이 나서 집 전체가 흔들렸어. 유리창이 깨지면서 동생의 얼굴과 몸 위에서 부서졌어. 언니는 피투성이가 된 동생을 집 근처 강물에 던져버렸어.     


 밤이 깊어가고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언니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깜짝거리는 알전구가 만들어낸 빛과 그림자가 깊은 윤곽선을 만들어낸다. 크게 뜬 눈이 무섭다. 나는 이야기를 멈출 수 있는 건 언니밖에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일 년이 지났어. 한 낚시꾼이 강가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는데 강물에 무언가 둥둥 떠있더래. 죽은 것 같은데 죽은 것 같지 않은 젊은 여자였어. 피투성이 얼굴에 유리조각이 박혀 있었어. 낚시꾼은 여자를 강물에서 꺼내려고 했어. 하지만 여자는 자신은 물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면서 물에 담긴 채로 옮겨달라고 했어. 결국 경찰과 병원과 방송국에서 달려왔지. 여자는 시 중심에 있는 인공연못으로 옮겨졌어. 방송국에서는 연일 여자에 대한 소식을 전했어. 여자는 유명해졌지. 시에서는 이 기회에 낙후된 시를 알리고자 여자를 이용했어. 입장료를 받고 관광객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야. 죽었는데 살아있는 사람처럼 말을 하는 여자는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거든. 예상대로 관광객이 몰려들었어. 인공연못에 도착한 사람들은 여자에게 이름이 뭐냐고 물었어. 미치코. 여자는 대답했어. 사람들은 또다시 물었어. 너 얼굴이 왜 그렇게 됐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니? 그 질문만 돌아오면 여자는 입을 닫아버렸어. 여자가 똑같은 대답만 반복하자 사람들은 금세 질려했어. 관광객은 줄어들었고 시장은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지. 그래서 한 달만 더 관광객을 받고 여자를 수족관이나 동물원의 수조 같은 곳으로 옮기기로 했어. 하나코는 먼 곳에서 그 소식을 듣고 있었어. 처음에는 설마 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해졌고, 결국 여자를 보기 위해 인공연못을 찾아왔어. 하나코는 연못에 떠있는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갔어.      


 나는 어느 순간부터 무릎을 감싸고 앉아있다. 신당 쪽에서 향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둘째 언니의 목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달라진 것처럼 들렸다.     


-하나코는 여자에게 물었어. 너 이름이 뭐야? 미치코.

-얼굴이 왜 이렇게 됐어?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니?     


 언니는 갑자기 이야기를 멈추더니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눈과 입을 크게 벌려 나를 가리켜 소리쳤다. “바로 너!”     


 그때 끼이익 소리와 함께 신당 문이 열렸다. 바람이 불면서 진한 향 냄새와 시들어가는 꽃 냄새가 났다. 끼이이이익. 우리는 모두 비명을 질렀다.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해! 어서 가서 자.” 이모였다.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신당에는 촛불이 켜져있었다. 일렁거리는 그림자 사이로 미치코가 언니의 얼굴로 ‘바로 너!’라고 계속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너!’를 외치는 순간에 있었다. 목소리를 작고 낮게 내다가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표정에 맞추어 목소리가 바뀌는 것도 그 순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일 초에 불과한 짧은 순간을 위해 행복했다가 불행해진 가족과 맹세를 깨고 죽음에 이른 자매의 스토리가 필요했다.

 그날 밤 계단을 내려가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울 때도 꿈속에서도 나는 ‘바로 너!’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참, 이야기의 끝은 이렇다. 미치코가 ‘바로 너!’를 외치자 하나코는 그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었고, 미치코는 물울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언니는 말했다. “나 같았으면 그곳에 안 갔다.” 나도 그랬을 것 같다고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하나코는 갔다. 범인은 범죄가 잘 마무리 되었는지 확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밤에 이야기를 들은 다음날에는 한낮에도 이층에 올라가는 것이 꺼려졌다. 하지만 넘쳐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계단을 올라가 이층에서 피아노를 쳤고 신당에서 놀았다. 피아노를 칠 때면 누군가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계속 들었지만 나중에는 그러려니 했다. 혹시라도 신당 미닫이문이 갑자기 열리지 않도록 처음부터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방학은 길었고 집에 내려갈 날은 아직 멀었고 부산시 영도구 청학동 이모네 집에서는 창문을 열어도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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