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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Aug 04. 2020

아홉번째 딸

이불 홑청을 시치던 엄마가 들려주신 이야기

 장마가 길어졌다. 예전에는 7월 셋째주가 지나면 장마가 끝나고 땡볕과 함께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는데 올해는 장마가 남은 여름을 집어삼킨 것처럼 햇살 눈부신 여름이 오지 않고 있다. 해가 나오는 대신 구름만 가득하다. 빨래는 잘 마르지 않고 이불은 하룻밤 사이 눅눅해진다. 비가 들이친 창틀에는 검은 물이 고이고 쉽게 신발이 젖고 습기를 먹은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뻗어간다. 무엇보다 비가 많이 내려 피해가 심각하다.


 장마가 언제 끝나나 싶어 인터넷에 '장마'를 쳤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지 '장마 기간' 장마 시기' '장마 언제까지' 등의 연관검색어가 함께 뜬다.

 며칠 전 라디오에 출연한 케이웨더 센터장은 지구의 급변하는 이상기후로 인해 기상을 정확하게 예보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고 토로하며 우리나라도 이제 장마보다 우기로 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뜨겁게 쏟아지며 살갗을 태우던 해가 그립다. 또 무더위가 찾아오면 덥다고 불평하겠지만 지금은 세상에 뿌린 습기를 모두 증발시킬 수 있는, 뜨거운 여름이 필요하다.

  



 내가 어렸을 때 장마가 끝나고 젖은 땅 구석구석으로 해가 내리쬐는 날이면 엄마는 이불 홑청을 뜯어서 빨았다. 환기가 잘 되지 않은 오래된 집에 카페트처럼 사시사철 펼쳐있던 이부자리는 장마를 지나고 나면 장마의 냄새를 풍겼다. 어두운 방을 떠도는 먼지와 가족들의 땀이 섞인 장마의 냄새는 악몽을 불러왔다. 그 냄새를 떨쳐낼 수 있는 건 여름 햇빛밖에 없었다.

 이불 홑청을 뜯어 새로 시치는 과정이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엄마는 혼자 혹은 할머니와 함께 이불 홑청을 뜯어서 커다란 고무다라이에 넣고 세제를 풀어 밟았을 것이다. 세탁기가 있었지만 너무 작았으니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성 기억이다. 그리고 옥상에 있는 빨랫줄이 가득 차도록 이불 훝청을 널었을 것이다. 여름 해가 이불에 머물렀던 장마의 냄새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도록 겹치는 부분 없이 쫙 펼쳤을 것이다. 그리고 해를 흠뻑 빨아들인 홑청이 뜨겁고 고요한 여름에 잘 데워지면 빨랫줄에서 걷어내어 마루에 이불 홑청을 새로 시쳤을 것이다. 직접 해본 적이 없고 눈여겨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과정은 잘 모르겠다. 다만 새로 하얀 목화실을 꿰어 새로 시친, 햇볕 냄새가 나는 이불의 감촉이 뭐라 말할 수 없이 좋아 몸을 이리저리 굴렸던 기억이 난다.

 

 어느 여름, 엄마는 엄마의 친구 혹은 가까운 이웃과 함께 새하얀 이불 홑청을 시치고 있었다. 여름방학을 맞아서 집에서 뒹굴고 있던 나는 엄청난 분량의 숙제를 개학 사흘 전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했으니 방학 초반기에는 해야 할 일이 없었다. 밖에서 놀자는 친구도 없고 급한 숙제도 없고 뭔가 하고 싶은 것도 없어서 공상과 시간만 엄청나게 넘쳐났다. 누워서 등을 축으로 삼아 몸을 몇 바퀴 돌려도 시간이 더디게만 흘러가던, 지루한 여름 오후였다.

 

 거실 겸 방으로 쓰는 공간에 이불이 커다랗게 펼쳐졌다. 하얀 홑청 바닥에 깔다. 귀가 가장 큰 두꺼운 바늘에 목화실이 꿰어졌다. 엄마는 앞에 앉은 아주머니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주름없이 쫙 펼쳐진 이불 홑청을 시쳤다.

 그때 옆에서 몇번이나 읽은 동화책을 슬렁슬렁 읽으며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동전을 어떻게 하면 얻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내게 어떤 말이 와서 꽂혔다. '죽음'이라는 단어였던 것 같다. 나는 그제야 엄마가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옴마나 세상에 진짜로 그렇게 죽었다고?"

 "형님도 들어봤을텐디. 그집 아들 낳으려계속 낳다가 딸을 여덟이나 낳았다고 하대요. 요즘 세상에도 아들 아들 하는 집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몰라."

 "오죽하면 그랬겠어. 아무리 그래도 아들은 하나 있어야지. 딸들이야 시집가고 나면 남의 집 사람인데 뭘. 명절 때 마음대로 올 수 있나 부모 제사를 지내줄 수 있나."

 "아이고 형님도 옛날 사람이네.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떻다고 그런대요. 우리집은 아들 우선해주고 그런거 없이 아들, 딸 다 똑같이 대하는데. 우리 어릴 때야 차별 받고 살았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 아니잖어."

 

 생각해보면 엄마는 그당시로 다른 집들과 비교해 보면 아들 딸 차별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개인적으로 부당하다고 느꼈던 점들을 제외하면 엄마 말이 맞았다.

 두 사람은 처음에 내 귀를 사로잡았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갔다. 집안인데도 주변을 살피는 듯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엄마가 이야기를 꺼냈다.

 

  "형님도 알잖아요. 그집 시어머니가 얼마나 무서운지. 며느리가  보러 나갔다가 조금만 늦게 와도 무섭게 혼내고 살림살이 줄어들면 친정식구들한테 갖다줬냐고 윽박지르고 친정에도 못 가게 해서 친정엄마 얼굴은 애 낳을 때나 봤을걸."

 "알지 알지.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잖아. 그집 며느리, 벌써 시집온지 몇 년째야. 그렇게 세월 흘렀으면 좀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도 될 텐데, 너무 주눅이 들어서 시어머니 있는데선 밥도 잘 못 먹는다 하던만."

  

  햇볕을 빨아들여 새하얀 이불  홑청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주머니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이야기 속의 그집에는 무서운 시어머니가 있고 시어머니 이름만 나와도 벌벌 떠는 며느리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본래 며느리를 탐탁치않게 여겼는데, 며느리가 딸만 연이어 낳자 본격적으로 구박하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출산할 때마다 아기를 등지고 누워 울음을 삼켰다. 친정어머니는 아이를 따뜻한 물에 씻기고 새로 지은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보드라운 천으로 감싼 뒤 딸의 품에 안겨주었다. 친정에서 몸을 풀고 시집에 돌아가면 시어머니는 한겨울에도 방에 불을 떼지 않고 얇은 천 하나만 깔아서 아기를 눕혔단다.

 그렇게 딸 여덟을 낳은 며느리가 또다시 아홉번째 임신을 했다. 그사이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시집에서 출산을 했다. 아홉번째도 딸이었다. 며느리는 아기를 등지고 누웠다. 기나긴 울음을 삼키다 잠이 들었다.

 식은 땀을 흘리며 혼곤한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방안은 어두웠고 밖에서는 식구들 저녁밥 먹는 소리가 들렸다. 며느리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워 방안을 둘러봤다. 어둠 속에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보였다. 무릎으로 기어가서 손을 뻗었다. 작고 부드러웠다. 아홉번째로 낳은 딸이었다. 아가야, 며느리는 아직 이름을 짓지 못한 딸을 불렀다. 아기는 칭얼거리지도 울지도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엎드린 채였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며느리는 조심스레 아기를 안아올렸다. 너무나도 작은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번의 울음을 터뜨린 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아기는 차가운 방구석에 방치되었다. 아니 죽임을 당했다.

 며느리는 아기를 품에 안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밥상에 둘러앉아있던 식구들이 며느리를 올려보았다. 시어머니와 남편과 여덟 명의 딸들.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아기를 안기며 말했다.

"아기가 숨을 안 쉬어. 누가 아기를 엎어놨어."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미쳤나 이게 미쳤나 했다. 며느리는 우리 아기를, 내 새끼를 살려내라고 시어머니의 팔을 붙들었다. 시어머니는 "저런 것이 집에 들어와가지고. 아들도 못 낳는게 뭐가 잘났다고 난리를 치냐." 라고 하며 아기를 마루 바닥에 놓고 방으로 들어갔다. 순간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목덜미를 잡았다. 어딜 도망가냐고 내 새끼를 살려내라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바깥으로 끌어내려고 할 찰나 며느리의 남편이 밥상에서 일어나더니 며느리를 때렸다. 미쳤냐면서 뺨을 때리고 닥치는대로 주먹질을 했다. 밥상이 엎어졌다. 여덟 명의 딸들은 겁에 질린 채 마당으로 내려가 떨고 있었다. 첫째딸이 아홉째 딸을 안고 있었다. 동생이 너무 작고 가벼워 눈물이 났다.

 '미쳤냐'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말처럼 며느리는 그날부터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베개를 업고 다녔으며 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고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그 다음해 또다시 며느리는 출산을 했다. 출산 도중 하혈을 너무 많이 한 며느리는 열번째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숨을 거뒀고, 아기는 태어난지 한 시간도 안 되어 숨을 거뒀다. 시어머니는 그해 겨울 길에서 넘어져 뼈가 부러졌는데 폐렴까지 걸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뒀다. 이야기 속 그집에는 아버지와 여 명의 딸만 남게 되었다.


 소름끼치는 이야기였다. 엄마와 아주머니는 이야기가 사라진 허공을 응시하다 몸서리를 쳤다. 나는 이야기 속의 그집 식구들이 너무 이상해서 실화라는게 믿지 않았다. 그래서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사람을 죽였는데 왜 감옥에 안 갔어?"

 엄마는 네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느냐는 듯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아니. 옛날에는 그런게 있었어."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더 물어볼까봐 싶어 빨리 이불 홑청을 마무리하고 아주머니와 볼 일이 있다면서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햇볕 냄새가 나는 이불 홑창에 누워 '그집'을 떠올렸다.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태어난 사실조차 알리지 않고 아기를 사라지게 하는 집이 얼마나 많을까에 대해 생각했다. 집안에서 벌어지는, 특히 아기의 죽음은 아무런 죄도 되지 않는 것인지, 그렇다면 나는 살아있어서 다행인 것인가에 대해서도.

 등을 축으로 한 바퀴 돌자 구석에 놓인 아기를 향해 기어가는 며느리가 보였다. 두 바퀴 돌자 밥상에 둘러앉은 여덟 명의 딸들이 보였다. 세 바퀴 돌자 싸늘하게 식은 동생을 안고 있는 첫째딸이 보였다. 더이상 돌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세상에 나와 눈도 뜨지 못한 생명들의 첫 울음과 그런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언제나 일정하게 돌고 있는 자전의 속도에 어지럽고 속이 울렁거렸다.


  여름방학이 한참 남아있던, 고요하고 무더운 어느 여름의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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