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주파수> 채널 14. 트렌스퍼와이즈(TransferWise)
요즘은 해외여행을 다들 쉽게 많이 가지만, 예전에는 생각만큼 해외여행이 쉽지 않았다. 여권을 만들어야 하고, 비행기 티켓을 구매한 다음에는 은행에서 환전을 통해서 여행 국가의 화폐를 구매해야 했다. 여행 초보들은 무작정 은행에 가서 주는 대로 환전했고,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고 싶은 사람은 인터넷으로 환전 비율을 확인하고 우대를 가장 많이 해주는 곳으로 갔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고시된 환율과 은행에서 적용하는 환율은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은행에서 환전을 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수수료라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은행은 중개를 해주는 제 3자의 기업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존재하며, 화폐는 위조화폐의 위험과 사기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비싼 수수료를 내면서 은행을 이용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시스템이 의문을 가진 한 청년이 2011년에 회사를 창립했다. "왜 비싼 은행 수수료를 이용해야 하는가? 만약 미국에 있는 A가 한국 원화가 필요하고 한국에 있는 B가 미국 달러가 필요하다면 이 둘을 연결해서 고시되는 환율로 환전해준다면 은행이 필요 없지 않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했을 법한 이야기이다. 혹은 누군가는 이미 아는 지인들을 이용해서 해당 방법을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타벳 힌리커스(Taavet Hinrikus)는 에스토니아인으로 스카이프(Skype)의 초창기 멤버로 영국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스카이프는 에스토니아에서 개발되었기에 타벳은 유로로 월급을 지급받았다. 그러나 타벳은 영국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에스토니아 계좌에서 영국 계좌로의 송금이 필요로 했다. 타벳은 매번 유로를 파운드로 송금하면서 떼이는 수수료가 비싸고 아깝다고 생각했다.
크리스토 카르만(Kristo Käärmann)은 에스토니아인으로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Pwc와 딜로이트에서 근무했다. 크리스토는 영국에서 근무하면서 파운드화를 월급으로 받았지만, 에스토니아에 있는 주택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서 매번 파운드화를 유로화로 환전해야 했다. 크리스토 역시 매번 추가되는 환전 수수료에 애를 먹고 있었다.
타벳과 크리스토는 우연히 파티에서 만났고, 파운드화가 필요한 타벳과 유로화가 필요한 크리스토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았고, 공시되는 환율로 원하는 금액을 바꾸기로 약속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달 지불해야 하는 은행 수수료를 별도로 지불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한 3~5일 걸리던 송금 시간도 크게 단축되었다.
2011년 타벳과 크리스토는 자신들의 경험을 살린 P2P 환전 서비스인 트렌스퍼와이즈(TransferWise)를 창업하였다. 트렌스퍼와이즈는 각각의 화폐가 필요한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은행 수수료보다 훨씬 작은 수수료를 취득한다. 트렌스퍼와이즈는 기본적으로 구글 검색 시 확인되는 시중 환율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수수료를 0.5~1.5%(최소 1유로)를 받는다. 이는 은행을 이용했을 때보다 평균적으로 89% 저렴하다.
사업 시작 후 5년 만에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100만 명 이상이 매일 7억 5,000만 달러 이상을 보내고 받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트렌스퍼와이즈를 이용하면 하루 100만 달러가 절약된다. 전 세계의 은행이 하루 100만 달러의 이득을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이지만, 사용자들은 100만 달러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하게 되었다. 2018년 기준 트렌스퍼와이즈는 런던(본사),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뉴욕, 싱가포르에 사무실을 두고 있으며, 전 세계 750개의 화폐를 거래하고 있고 매달 40억 달러의 자금이 유통된다.
2014년 미국의 벤처투자사인 세퀘이아 펀드(Sequoia Fund)에서 5,000만 달러를 투자받았고, 2015년에는 유명 벤처 투자사 안데르센 호로비츠(Andreeseen Horowitz)로 부터 5,8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 2016년 기준 11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받은 핀테크 회사인 트렌스퍼와이즈는 역설적이게도 금융 규제를 찬성한다.
1,0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세게 금융 거래의 중심 영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희생을 치러야 할 국가로 뽑혔다. 2008년 9월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을 선언하고 세계는 경제 위기에 빠진다. 미국 밖에서 가장 먼저 모기지 손실을 신고한 곳은 영국 HSBC 은행이었고, 가장 먼저 파산한 곳도 영국 노던락 은행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영국이 앞으로 30년 간 침체를 겪을 것이라 예측했고 "금융 강국이라는 영국의 영예는 과거 시제가 되었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들이 시장을 지배했다.
하지만, 영국은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 5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금융 강국으로의 위상을 다시 세웠다. 영국은 금융과 IT의 융합산업인 핀테크를 제일 선두에서 지휘했다. 전통적인 금융 서비스를 모바일, 인터넷 등의 서비스와 결합하였다. 온라인 결제,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자산관리, 대출, 송금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포함하였다. IT 기술을 적극적으로 융합해 핀테크 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였고, 런던 북동부에 기술 클러스터인 '테크 시티(Tech City)'를 만들어서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16세 이상의 회사 운영자만 존재하면 설립을 승인할 정도로 많은 규제를 풀고 새로운 도전을 적극 장려했다. 1파운드로도 회사를 설립할 수 있자 테크 시티에 많은 자본이 몰려들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영국의 핀테크 산업이 연평균 74% 고속 성장을 한 것을 보면 영국의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어 갔음을 볼 수 있다. 같은 시기 전 세계 핀테크 산업의 평균 성장률은 27%였고, 미국 실리콘밸리의 핀테크 산업 성장률이 13%였으니 영국의 고속 성장을 따라올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핀테크라는 표현조차 없던 2010년에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런던 금융감독당국을 찾았을 때 의외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영국 정부는 우리 같은 스타트업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했다. 런던이 불과 몇 년 만에 세계적인 핀테크 중심시로 성장한 비결이라 생각한다."
트렌스퍼와이즈의 창업자 타벳은 회사 창립을 결심했을 때를 회고하면서 영국의 규제 혁신을 칭찬했다. 많은 한국 기업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도 규제에 가로막혀서 새로운 사업을 하지 못하는 것과 극강 하게 대비되는 모습이다. 타벳은 금융분야는 규제로 가득하지만 이는 세상을 더욱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라 믿는다.
트렌스퍼와이즈는 규제에 맞는 사업을 진행한다. 이들의 큰 규칙 두 가지는 KYC(Know Your Customer)과 AML(Anti-Money Laundering)이다. 이들은 사용자의 신원을 확실하게 확인하고 돈세탁을 방지한다는 규칙을 강력하게 지킨다. "대부분의 국가는 온라인으로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전자적 수단을 갖추고 있어 큰 문제가 없으며 영국 등에서는 거주지 확인 문서 등을 받아서 실명을 확인한다." 고 타벳은 말한다. 인터넷은행이 아니고서야 아직도 대면 확인으로 통장을 개설해야 하는 대한민국과의 기술 혁신에 대한 시차는 몇 년의 갭이 존재한다.
해당 트렌스퍼와이즈의 거래는 우리나라에서는 환치기에 해당한다. 외국환거래법상의 용어로는 무등록 외국환 업무라고 불린다. 환치기는 해외로 송금하려는 자가 국내 환치기업자의 계좌에 입금하면 국외 환치기업자가 입금 사실을 확인 후 해당 금액을 해외 송금 목적인에게 송금하는 것을 말한다.
즉, 외국환은행을 거치지 않고 해외로 송금하는 것을 환치기라 말한다. 환치기를 막는 이유는 크게 밀수대금 금지, 자금세탁 등의 이유가 존재한다. 외국환거래법 제16조 제3호 및 제4호를 보면 거주자가 당해 거래의 당사자가 아닌 자와 지급 등을 하거나 당해 거래의 당사자가 아닌 거주자가 당해 거래의 당사자인 비거주자와 지급 등을 하는 경우(제3호) 및 외국환업무 취급기관을 통하지 아니하고 지급 등을 하는 경우(제4호)에는 한국은행 총재에게 신고하여야 한다고 등록되어있다.
또한 외국환거래법 제8조에 따르면 외국환업무를 하고자 하는 자는 충분한 자본, 시설 및 전문 인력을 갖추어 미리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등록하여야 하며, 외국환업무는 금융회사 등만 할 수 있으며, 이를 어길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억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트랜스퍼와이즈는 현재 외국에서 한국으로 송금이 되는 것은 가능하지만, 한국에서 해외로 송금하는 것은 규제로 인해서 막혀있다고 들었다. 창조적 파괴, 기업가 정신, 혁신적인 기업 등을 강요하지만 대한민국 규제는 이런 혁신을 막는다.
2019년이 들어서 규제 샌드박스를 공고하면서 규제에 막힌 다양한 기업들이 혁신을 주도해나가길 기대했다. 하지만 뚜껑을 연 규제 샌드박스는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가 아닌 철저한 허가와 심사를 통한 놀이터가 되었다.
규제 샌드박스를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신청 트랙에 맞춰 신속처리는 2건 , 임시허가는 4건, 실증 규제 특례는 4건의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추가로 임시허가 트랙과 실증 규제 특례 트랙의 경우, 사업자등록증 등 신청하는 기관(단체)의 현황자료와 신청기관 인감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사업계획서에는 사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적어야 했고, 기대효과에는 최대한 수치를 적어서 설득해야 한다. 무작정 풀어주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개의 서류 심사라는 진입장벽을 통과하는 자들에게만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1파운드만으로 창업을 장려했던 영국의 정책과는 비교과 된다.
혁신은 불편함에서 일어나고, 기득권들의 권리를 나눠가지는 부분에서 발생한다. 또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혁신기업이 있다면 국가 정부기관의 적극적인 장려가 필요로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환치기라 불리는 사업이 8년 전인 2011년도에 영국에서 혁신 산업으로 분류가 되었다. 창조적 파괴, 기업가 정신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어쩌면 새들이 날 수 있는 날개를 막고 철장 속에 가두는 것은 정부가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에서 이미 트랜스퍼와이즈와 같은 기업이 나오기는 조금 늦은감이 있지만, 그 이상의 기업이 나오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스타트업들이 혁신 사업을 장려하고 규제를 감소하는 정부의 지원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