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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이 아빠 Feb 09. 2019

아내 / 엄마 없이 살아가기 - 둘

애들아, 오늘은 뭐 먹을까? 엄마의 빈자리가 사라져 간다.


아내가 떠난 1주일은 전쟁과도 같았다. 두 아이의 스케줄 때문에 매일 다른 시간에 일어나고, 비록 주로 인스턴트 도시락이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점심 도시락과  스낵을 준비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대신 나도 같은 도시락을 싸가며 맛을 확인하고 좀 더 맛있는 메뉴를 싸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첫 번째 월요일이 지난 후, 미니김밥이 표에서 사라졌다. 들어간 시간 대비 효율성이 너무 떨어졌다. 대신 다음 월요일은 전날 사다 놓은 김밥을 싸주었다. 시금치의 맛이 이상했고 이후로 김밥은 점심 도시락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인스턴트 볶음밥은 첫 주에 파 기름에 계란이, 둘째 주에는 굴소스가 추가되어 업그레이드 볶음밥으로 완성됐다.


과일을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스낵은 반드시 과일을 준비했다. 하지만 미리 과일을 사서 준비하는 일은 수시로 장을 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도시락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2주 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슈퍼스토어 클럽사이즈 과일
한 번에 1주일치 스낵으로 재포장


하루가 가고 한 주가 지나갈수록 노하우가 쌓여갔다. 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늘어날 뿐 아니라 맛도 꾸준히 개선시켜 레시피를 보완해 나갔다.


큰 고민이던 저녁 메뉴는, 처음 2주간은 늦어도 전날 저녁에 다음 날 먹을 음식을 미리 결정했다. 이후 나의 요리 실력이 늘어나고  시간은 단축됨에 따라, 퇴근 전에 카톡으로 내가 1~2 가지의 메뉴를 추천하고 아이들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당일 저녁을 준비했다.


아이들과 저녁 식사 메뉴를 논의

아빠: 저녁으로 떡볶이 아니면 불고기 전골?

Annabel: 불고기 전골이 뭐죠?

Grace: 난 1번, 떡볶이

아빠: 불고기 전골은 샤부샤부 하고 약간 다른 것

Annabel: 둘 중 아무거나 상관없음

아빠: 그럼 떡볶이로 결정

Annabel: 김말이도 같이 해 주세요

아빠: 오케이. Grace는 5시 이후에 육수를 3컵 정도 만들어 놓기 바람.

Grace: 오케이


하루하루 냉장고에 붙은 메뉴판이 지저분해질수록, 하루하루 삶의 노하우가 쌓여갈수록 아내의, 엄마의 빈자리가 메워져 나간다. 아내는 나와 아이들이 잘 있음에 안도하면서도 자신의 빈자리가 사라져 가는 것을 서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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