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에 놀라고 맛에 더 놀라는 캐나다 밴쿠버의 꽃게, 던지니스
밴쿠버로 이민 온 지 얼마 안돼 초대받은 저녁식사에서 던지니스 (Dungeness)라는 게(Crab)를 처음 보았다. 처음에는 너무나 크고 낯선 모양에 놀랐고, 다음엔 게살이 너무나 맛있고 양이 많아 더 놀랐다.
거기다 이 게를 본인이 직접 아침에 잡아 왔다는 지인의 말에 또 놀랐다. 30분 정도 거리의 Belcarra라는 공원에서 닭살을 망에 묶어 던지면 이 게를 하루에 4마리씩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다음 날 함께 게를 잡으러 가기로 약속했다.
비가 오는 음산한 밴쿠버의 겨울 아침에 차는 바다가 있는 서쪽이 아닌 울창한 나무들이 빽빽한 동쪽 산길로 나아갔다. 내가 이상해하며 묻자 지인은 가다 보면 바다가 나온다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무뚝뚝한 성격에 굳은 표정으로, 검은 우비를 입고, 비가 내리는 산길을 운전해 가는 지인의 옆모습은 이상하게 게망이 아니라 삽자루가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공원에 들어서 내리막 길 끝에 물안개 속에서 거짓말처럼 갑자기 바다가 나타났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이 너무나 흔한 캐나다가 부러웠다. 추운 겨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선착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와 게 낚시를 하고 있었다.
망을 던진 지 30분 만에 10여 마리의 게가 잡혔다. 한번 던졌는데 벌써 목표치를 다 달성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지인은 게들의 배 모양(암컷과 수컷 구분)과 폭을 재보더니, 1마리만 남기고는 주저 없이 모두 바다에 던져 버렸다. 규정에 따라 암컷 게와 규정 크기 미만의 게들은 잡을 수 없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불시 검문을 하는데, 적법한 면허의 소지 여부와 암컷이나 규정 크기 미만 또는 게망 숫자 (1인당 최대 2개), 하루 최대 포획 (1인 4마리) 규정을 어겼을 경우 막대한 벌금을 부과한다.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도 이 규정을 어긴 남성에게 캐나다 3,300 달러(한화 285만 원)의 벌금이 부과됐다고 한다.
낚시를 한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 물개가 나타났다. 지인은 짜증을 냈는데, 이 물개가 망을 던지는 족족 바로 잠수해서 망에 달린 닭살을 모두 빼먹어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여분의 닭 살마저 다 빼앗겨 더 이상 낚시를 할 수가 없었고, 우리는 3마리라는 초라한 성적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게 낚시에 재미가 들린 나는 큰 게를 잡을 욕심에 내가 얼마나 무모한 짓을 하는지 모른 체 고무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기대를 가지고 끌어올린 피라미드형의 게망이 고무보트 위에서 쫙 펼쳐졌고, 게들은 사방으로 다니며 날카로운 발로 보트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손이 물리는 것도 모른 체 정신없이 게들을 집어 바다로 던졌다. 보트 여러 곳에 구멍이 뚫려 공기가 새어 나왔지만, 다행히도 보트는 몇 개의 공기 격실로 구분되어 있어 가까스로 해변에 도착할 때까지는 버텨주었다. 하마터면 게 잡다가 사고가 났다는 황당한 뉴스의 주인공이 될 뻔했다.
비록 게는 잡지 못하고 새로 산 보트를 은퇴시켰지만, 나는 이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