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무언가를 열심히 좋아한다는 것
덕질. 쉽게 말하면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인데, 그냥 좋아하는 건 아니고 좀 더 열심히,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일이다. 이 신조어의 어원은 나무위키에 친절하게 정리되어 있다. 일본어 오타쿠에서 시작하여 오덕후, 오덕, 그리고 덕. 여기에 어떤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나 특정 직업을 낮춰 말할 때 쓰는 접미사인 ‘-질’을 붙여 넣은 것이 그 흐름이다.
과거에 이 행위를 어떻게 불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지, 10대 때 이후 그런 경험이 전무하니 모른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다. 기껏 아는 것이라곤 빠순이 정도. 혹은 누구 빠라고 쓰거나 사생팬 정도만 떠오른다. 뭔가 속되고 비하하는 느낌이라 이 나이에 쓰기엔 좀 불편한 말들이다. 그래서 나는 덕질이라는 말을 아주 유용하게 쓰게 되었다. 덕질의 ‘-질’ 역시 어떤 행위를 낮잡아 부를 때 쓰는 접미사이기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덕질은 간단하다.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행복하다. 나 역시 덕질 중이다. 이미 n년 전에 쓴 싱어송라이터 이승윤 덕질 입문기록이 브런치에 버젓이 있다. 되게 정연한 척 써놨지만 그냥 이승윤이 좋다고만 쓰기에는 아쉬워서 쓴 나의 구체적인 마음들이다.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언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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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과도하면 좋을 게 없기 때문에 그런 과도함은 애초에 제치고, 덕질이라는 하나의 취미 내지는 행동들을 생각해 보면 덕질은 간단하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고민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좋아하는 대상을 좋아하기만 하면 되는 것.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노래를 듣고 가사를 읽고 크게 공감하는 것. 지난 영상을 찾아보고 SNS 라이브 방송에 피식거리는 것. 기사나 인터뷰를 찾아 읽고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것. 공연을 예매하고 공연에서 함께 즐기는 것. 후기를 나눠 읽으며 즐거움을 오래 간직하는 것. 함께 즐겁고 함께 행복한 것. 이 모든 것이 덕질이다.
물론 세상에는 이보다 더 많은 덕질이 있다. 어떻게든 나의 연예인을 앞장 세우고 말겠다는 다짐과 행동들도 있고 다툼이나 배제도 과감하게 실행하는 덕질도 있다. 그 방식과 의미는 각기 다르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아마도 대부분의 바람직한 덕질은 즐거움과 행복. 삶의 어떤 순간들을 조금 더 설레게 하는 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런데 대체!
이게 가능한 이유, 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에 덕질은 현실에서의 일대일 인간관계가 아니다. 그래서 그 인간관계에서 오는 여러 부침들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너는 아티스트. 나는 팬. 나는 너의 음악을, 가사를, 말을 좋아해. 그뿐이다. 덕질을 하는 중에 아티스트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좋아할 뿐이다. 내가 너를 좋아하는데 왜 너는 내 마음을 몰라줘! 내지는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는 마음을 앞세우지 않는다. 안정된 관계를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내야 할 힘겹고 귀찮은 갈등도 없다. 보통의 인간관계, 마음을 나누는 인간관계에서는 얼마나 뻔한 레퍼토리인가. 인간관계가 괴롭고 지치고 피곤한 이유는 다 이런 부침들 때문인데 덕질에는 그런 게 없다.
좋아. 좋아할게. 끝!
매일이 즐거우면 좋겠지만 우리의 일상은 그렇지 못하다. 왜 이리 피곤하고 괴로운 일들이 많은지. 사람이 살면서 해야 하는 일들, 견뎌야 하는 일들은 왜 그리 많은지. 어떨 때는 때마다 바뀌는 계절마저 버거울 때가 있으니 우리의 삶이 늘 행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산다” 대신에 “살아낸다”는 말을 쓰는지도 모른다.
그런 날들 중에 그냥 좋아하기만 하면 되는 덕질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피곤하고 지치고 바쁘고 괴로운 가운데 아무런 기대 없이, 조건 없이, 제약 없이 그냥 좋아만 하면 되잖아. 얼마나 편한 취미인가. 딱히 즐거울 것이 없는 날들이라면 덕질은 더욱 소중하다. 혹은 매일이 괴롭고 걱정만 가득한 날들이어도 역시 덕질은 소중하다. 아무런 염려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 충분하다.
즐거운 덕질생활. 행복한 덕질생활. 슬기로운 덕질생활. 어떤 수식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으니 덕질이 긍정적인 감정 영역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나의 덕질은 이런 이유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