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 30호를 첫날부터 좋아했다. 때마다 나오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질릴 법도 한데 싱어게인은 좀 달랐다. 성공을 위해 어린 시절을 갈아 넣은 사람들보다 돌고 돌아 각자에게는 음악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열일곱부터 문예창작을 전공으로 한 내가 여전히 글에 기대는 걸 보면, 결국 그들에게도 음악은 돌고 돌아 닿는 사막이면서 오아시스일지도 모른다.
자기 방어적인 태도로 자기 음악을 보여주는 싱어게인 30호는 그래서 더 측은했다. 어리다면 어리고 먹었다면 먹은 그 나이만큼 30호는 견디고 있었다. 그래 보였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스스로의 한계를 그어둔 그 모습이 애잔했다. 하지만 회를 거듭하며 색은 분명해진다. 그 오랜 시간, 자기만의 색을 만들어간 그 시간들이 빛을 보는 것 같다.
30호의 이름을 검색하고 지난 노래들을 듣는다. 가사마다 맺힌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구나. 스스로를 애매한 존재라 명명하던 30호는 이런 갈등에 묻혀 살았구나.
애매함. 내가 늘 달고 있던 키워드.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못한 채 서성이는 경계인. 완전히 그런 것이 없는 존재. 그 존재가 숙제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30호는 그 애매함으로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하겠다고 했다. 유희열이 그것을 응원하고 김이나가 그것을 기꺼이 누리기를 바란다고 더 큰 응원을 보냈다.
세상은 언제나 양극단이 저울질하는 곳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양극단이 도드라질 뿐, 그 틈에 얼마나 다양하고 애매한 중간자들이 있던가. 세상이 재단한 양극단에서 시소를 타다 멀미가 났다. 여기 아니면 저기.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지. 우리네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어제부터 우연히 읽기 시작한 책 Factfulness. 여기서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우연이 켜켜로 쌓여 무언가를 만든다는 내 생각에 힘이 실린다. 애매한 나. 애매한 30호. 그리고 양극을 해체하는 Factfulness. 모두 우연일까.
어떤 날들을 살아낼지 궁금하다. 30호가 더 커지길 바란다고, 30호 같은 사람들이 양극단을 비집고 들어와 크게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고, 이런 사람들이 잘 되는 세상이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왠지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도 조금은 나아질 것 같다.
저것이 하늘인지 땅인지, 나무가 거꾸로 자라는 것인지 세계가 뒤집어지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이의 그림에 물음표를 붙이지 않는, 그런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