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모든 게 낯설었지만 늘 열심히 배웠다. 첫 일 년은 쉬운 말과 쉬운 글을 쓰는 데 모든 가르침이 쏠렸던 것 같다. 쉬운 말과 쉬운 글. 추상적인 표현 대신 구체적인 표현. 그것은 그냥 가르친다고 될 일은 아니어서 여러 글을 숱하게 읽고 비교하고 쓰고 고치고를 반복했다. 수많은 수식이나 수사는 나중 일이었다. 어려운 글도 나중 일이다. 일단은 쉽게 그리고 글 안에서 무언가를 충분하게 쓸 줄 아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 배움 속에 살던 나는 대학을 거쳐 대학원을 거쳐 논문을 쓰며 학술적인 글에 절반을 걸쳐 살았다. 그 사이 내 글은 어딘가 어려워진 부분도 있다. 쉬운 일상적인 글을 쓰다가도 갑자기 그런 어휘나 문장구조가 튀어나온다. 싫다. 그런 문장에 익숙해진 내가 참 싫다.
논문을 쓴 지 오래되었다. 연구하고 싶은 것도 없다. 실적을 쌓아야 한다고 모두가 말한다. 모두가 논문 투고를 권하는데 나는 때마다 슬쩍 웃으며 도망간다. 나는 여전히 많은 글을 쓰고 있지만 그것은 논문도 학술적인 글도 아니다. 그런데 내 글에는 불쑥, 학자의 말투가 묻어날 때가 있다. 싫다. 여전히 나는 애매하다고,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고개만 젓는다.
내가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이야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연구판이랑은 거리가 멀다. 그런데 나는 어쨌거나 학위로 밥벌이 중이다. 이 간극은 참 방법이 없네. 학위를 떼면 일을 못하고 학위를 달면 글의 방향이 애매해지고. 어떤 표식 없이 살고 싶은데 그렇다고 나라는 존재를 드러낼 방법도 없다. 아 참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