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해맑고 명랑한 둘째 아이가 후문에서 누구 뒤통수에다 대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본 게 작년이다. 하교 마중을 나갔던 내가 아이와 가까워졌을 때, 비로소 아이의 말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우리 아빠도 어릴 때 키 작았는데
지금은 186이거든!!
피식 웃음이 날 법한 말이지만 내심 염려했던 일이 생겼구나 하였다. 또래보다 작고 왜소한 아이가 요즘 같이 외형 중심적인 세계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렇게 금세 놀림을 받을 줄이야.
아이 어깨를 토닥이고 걸어갔다. 키도 쪼끄마난 게! 하며 주먹을 치켜들었다는 아이는 같은 학년 여자아이였다. 그래 그래. 잘 참고 잘 얘기했어. 다음엔 그냥 무시해. 어차피 저 아이는 네 말을 듣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하면서도 이게 맞는 대처법인지 고민했다.
두 살 많은 큰 아이도 학급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있었기에 그냥 다 지나가는 그런 일들이라 생각하기로 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인 나는 나대로 그 일을 잊었다.
그런데 오늘 또 오랜만에 아이 얼굴이 구겨졌다. 하교하고 복도에서 뛰어나오는데 작년 그 아이가 이번에는 “미친 새끼”라고 했단다. 아이는 하지 마! 하고 후문으로 나와 형을 만나고는 복받쳐 엉엉 울었다고 했다.
고작 초2인데도 인생이 이렇게 하드코어다. 첫째의 학급 일들 가운데 이런저런 꼴을 봐서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지만 그래도 아직 저 희고 어린 아기들이 저런 말을 던지고 듣고 구겨지고 화내며 지내야 한다는 게 퍽 안타까웠다. 우리 아이의 시간만이 아니라 그냥 그런 시간에 익숙해지며 그런 세계로 알아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든 아이들의 시간이 말이다. 아직 너무 말갛고 어여쁜데 다들 뭐가 그리 급하니.
잘잘못을 따지고 싶은 마음이 움트다가도 멈춘다.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그저 우리 아이가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돕는 게 내가 할 일이다. 늘 나눴던 이야기들을 또 또 나누고 타인의 외형이든 타인의 감정이든 타인의 모든 것에 예의를 갖추는 사람으로 열심히 자라자.
아이는 드럼학원에 가서 드럼을 치고 친한 대학생 누나와 프로야구 이야기를 하며 이 일을 금세 잊었다. 내가 건넨 치즈스틱을 먹으며 아이는 걔가 한 번 더 그러면 그때 내가 선생님한테 말할게, 한다. 너가 나보다 낫다. 힘내라. 하드코어 인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