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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Jan 18. 2024

초등생과 강릉 한달살기, 쉬울까? 어려울까?



강릉만이 아니라 아니서든. 초등생과 하는 한달살기는 모든 일상을 다 멈춰야 한다. 미취학이야 마음이 가벼울 수 있지만 초등만 해도 사교육으로 범벅되다 보니 그걸 다 멈추는 게 사실 생각보다 어렵다. 그런데 또 중고등 부모들은 초등 때 아니면 언제 노냐고 적극 추천한다. 그런데 또 그들에게 물어보면 초등 때 안놀린? 못놀린? 사람이 훨씬 많다. 내가 장담하건대 그들 중 다시 아이들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온전히 놀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할 수 있었다면 이미 했을 거다. 과거에도 망설였다면 계속 망설일 거다. 이건 내가 해본 사람으로서 단언할 수 있다.

생각은 쉽지만 행동은 어려운 게 한달살기다. 나에게 얼마간의 -살기는 제주에서 보낸 보름이 시작이었다. 그 뒤로 강릉에서 여름 한 달, 겨울 두 달, 그리고 발리에서 한 달을 살았다. 지금은 다시 강릉이다.

무엇보다 사교육을 싸그리 멈추고 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은 망설인다. 나는 아이나 나나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한달살기를 시작해서 학원 그까짓 거 멈추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심신의 안정을 얻은 후에는 나도 고민을 하게 됐다. 괜히 내가 들쑤시는 건 아닐지, 흐름이 깨지지는 않을지, 충실한 삶을 좋아하는 내게 그 시간이 충실한 삶이 될지 하는 염려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하기 나름이다. 흐름을 깨트리지 않고 함께 쉼을 느끼면서 여러 의미로 충실하게 사는 것. 물론 쉽지 않다. 나같이 루틴이 중요하고 계획형인 인간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매일 편안한 듯 그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애씀이 필요하긴 하다.

아래는 내가 -살기를 하며 쓴 글 토막이다. -살기를 하다보면 이런 마음들이 한 번씩 고개를 들 테고 그 순간을 잘 보내면 된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보름살이 정도는 가볍게 지낼 수 있는데 그 이상은 각오도 필요하다.



1. 강릉 한달살기 3회차 중

2주 됐으니깐 현타가 올 때도 됐지. 어디서든 보름은 마의 구간인 것 같다. 나는 늘 해야 하는 일에 진다. 켜켜로 쌓여 있는 문제집과 식탁에 널브러진 답안지들. 흡사 교무실 같은 시간들이 어김없이 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싹 다 그만두고 이런 방학을 선택하는 이유는 이 시간을 견디면 그다음은 비교할 수 없는 일상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원래 집에서 하던 대로 학원을 보내면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오히려 많다. 하지만 거기서 혼자인 백 시간보다 여기서 혼자인 다섯 시간이 낫다. 나는 혼자가 되는 방학보다 같이 걸을 수 있는 방학을 아직까지는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애들이 언제까지 같이 있어줄지도 모를 일이고 당장 다음 방학부터는 이렇게 지내는 게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이곳은 신호등 한 번 건너면 바다가 나온다. 그러니 당연히 여기가 좋다. 난 집 앞에 바다를 가진 그런 사람이지. 현타는 와인과 함께 꿀꺽 삼키고 어떻게든 예쁠 내일을 상상한다.



2. 발리 한달살기를 마치고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낸다는 것이 여행자에게는 제법 어려운 일이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생각보다 많이 애썼다. 틈틈이 굵직한 일정을 집어넣었지만 사실 우리가 오래 기억할 건 작은 일상들이다. 지금도 다른 어느 것보다 비치로 걸어 나가던 오후 4시가 그립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두리안을 처음 먹어본 일, 매일 만난 도마뱀이 몇 마리인지 세어봤던 일, 친절한 사람들과 금세 친구가 되고 얕은 바다를 거닌 일. 그런 일상이 생각난다고 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살기는 얼추 괜찮았던 것 같다. 아주 잔잔한 마음이야.


어디 이 글뿐이겠는가. 나는 -살기를 여러 번 하며 때마다 스스로 갈등을 만들어냈고 고민도 했고 또 그만큼 행복도 했다.

그리고 -살기를 하며 우리는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다. 욕심부리지 않기. 돌아갈 일상을 고려하며 살기. 집에서 공부하기. 적당히 게임하기. 쉬기. 걷기. 책 읽기. 그리고 함께하기. 이 방법은 오로지 가족들의 몫이다. 쉽지 않지만 해볼 만하다. 분명한 것은 나는 이 시간들을 보내며 우리를 더 사랑하고 아끼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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