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둥! 드디어 최강유랑단이 떴다. 그들이 함께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나에서 둘로. 다시 그 둘이 다섯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최강유랑단.
물론 다섯이라는 정족수가 끝은 아니다. 하지만 단장의 고령화와 향후 재산 분할권의 축소를 우려한 단원들의 극렬반대로 추가 입단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최씨 엄마와 강씨 아빠. 그리고 강씨 아이들로 구성된 예산군 최고의 유랑단.
온달이 아빠와 평강이 엄마. 그리고 싹싹이, 씩씩이, 쑥쑥이. 이 세 아이들로 구성된 가족유랑단. 맨날 놀 궁리만 하는 단장과 그 덕에 놀아줘야 하는 단원들. 이제는 그런 단장의 행보가 이해보다는 일상으로 잡았기에 견딜만 하다는 단원들. 최강유랑단의 지속성은 그런 단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노는게 일인 아빠. 허구한 날 놀 궁리만 하는 최강유랑단의 단장. 그의 문제는 혼자 놀기를 싫어한다는 것. 반면 온달이의 최대 장점은 남들을 잘 꼬신다는 것과 웃음이 많다는 것. 눈물쏙 감동영화 보기를 좋아하고 가족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좋아한다. 자기가 이야기 하면서 자기가 울 때도 많다. 눈물도 많다.
온달이가 노는 걸 허락해준 엄마. 단장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어주지만 가장 많은 거절을 하는 단원. 가만 놔두면 하늘 높은 줄 오르고, 죽을 줄 모르고 내달리는 단장을 잡아 내리고, 잡아 세우는 단원. 슬기로운 여자다.
단장의 부름을 가장 많이 받는 단원. 2021년 현재 고1. 단원중 젤로 힘이 쎄고, 키가 크다. 그것이 부름의 이유다. 특유의 사교성으로 싹싹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흡입력으로 음식 그룻을 싹싹 비우는 데서 유래된 별명. 아직은 단장이 부르면 간다.
단장의 외보를 가장 많이 닮았었던 단원. 2021년 현재 중2. 아주 먼 옛날 밤길이 무섭다는 오빠 손을 잡아주고 다녔던 딸. 그래서 씩씩이. ‘제 얼굴에 머리만 긴 아이. 그 아이가 제 딸입니다.’ 이런 아빠의 유머가 싫었던 아이. 그래서 살 빼고 지금은 날씬하다. 그리고 시크하다.
단장을 가장 많이 불러주는 단원. 2021년 현재 초1. 최강유랑단 최고의 신상.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기능들이 많고 성장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쑥쑥이. 단장에게 책 읽기를 가장 많이 강요하는 녀석이다. 한글을 깨우친 요즘. 들고 오는 책의 권수가 많이 줄었다. 대신 글씨가 작고 글자 수가 많아졌다. 단장을 제일 잘 다룬다.
세상 천지를 놀이터 삼아 세상 만물을 가지고 놀아보겠다는 한 사내의 욕심과 허영으로 애꿎은 단원들의 긴 여정은 시작되었다. 한 단장은 햄버거 하나를 미끼(나는 동기부여라 칭한다)로 예당저수지 한 바퀴를 돌았던 어느 해 여름, 내가 사는 고장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로 우동최(우리 동네 최고를 찾아라) 깃발 아래 예산군 12개 읍면을 돌았던 다음 해 여름. 서울시에 창의와 모험이 넘쳐나는 놀이터가 생겨나고 있다는 신문기사 한 줄을 이유로 타향 땅을 헤매고 다녔던 그 다음 해 겨울, 등등등. 그 여정에는 항상 그들이 있었다. 최강유랑단. 혼자 하면 될 것을 최강유랑단이라 미명 하에 가족을 볼모로 저지른, 한 사내의 만행과 그에 대한 자아 성찰. 그렇게 그들은 먼 길을 돌았고 아직도 그 길 위에 서 있다.
사내는 놀이를 책으로 배웠다. 유년시절 놀이 경험이 부족했던 그는 자신을 닯은 아이들을 세상에 맞이하고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나이 40을 넘어서며 앓게된 인생의 열병. 잘 살고 있는 걸까? 어떻게 살아야 될까? 그런 물음과, 자신의 아이들을 통해 그때 그 시절을 되짚게 되었다. 그후 삶에 거처를 바꾸고, 삶에 방도를 바꿔가며 그 사내의 눈높이는 그때 그 시절의 동네 꼬마가 되었다. 덕분에 아이들이 고생했다. 키도 크고, 목소리도 크고, 힘도 센 아비, 그런 동네 아저씨와 함께 놀아주느라 아이들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녀석들의 이해와 배려 덕분에 그 사내는 아이들만큼이나 잘 노는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놀이가 유행이다. 아이들은 놀이가 부족해서 병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아이들을 위해 좋은 놀이터가 필요하고, 아이들의 놀 권리를 위해 어린이 놀이헌장을 제정해가며 학교현장의 구석구석에 놀이를 채워보려 무진장 애쓰고 있다. 그러나 이것에 대부분은 어른들의 이야기다. 아직도 아이들의 동의는 부족하고 아이들의 놀이는 부족하다. 나만의 편견일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판에서, 그런 어른들 사이에서 놀이를 업(業)으로 삼아 보겠다고 덤벼든 별수 없는 어른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놀고 있고 그런 어른들이 많아지고 있다.
놀이란 뭘까? 어떤 놀이들이 있지? 어떻게 노는 게 잘 노는 거야? 그렇다면 놀이가 우리 아이들의 무엇을 낫게 한다는 거지? 그 물음들에 답을 얻고자 걸었던 길. 그 길 위에서 만난 이들과, 그들과 함께한 꺼리들을 전하고자 한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족에게서 찾고자 했다. 그들을 통해 증거 하고자 했다. 그것이 한 가족의 수난사가 시작된 이유다. 최강유랑단 단원들의 모진 고난과 인내 덕에 이제 조금은 알아가고 있는 단장은 ‘놀이하는 어른’이 되었다. 개봉박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