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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Sep 21. 2020

우연한 여행 2

곱든 고개


 용인에 예약된 엠티로 향하다 문득 산길을 만났다.


주차장이 있고 한 두 사람 가벼운 조깅 차림의 남자가 보였다. 조깅 쫄바지에 반바지를 입은 모습은 쫄바지를 보여주기 싫은 남자의 패션이다. 자신의 거시기가 불쑥 튀어나온 것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예의이지만 상남자(나, 이 정도야!)들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마초이즘에 오히려 배를 가릴 윗옷을 껴 입는데 비해, 자신의 생식기(성기)를 감춘 한 두 명의 남자! 그쪽을 지나치다 유턴을 해 되돌아왔다. 이런 걸 두고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심봤따!! 다!!!


불현듯 만난 산길을 지나쳤다가 되돌아왔다.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름도 신비한 곱든 고개! 뭔가 있을까?


 엠티로 가서 한 숨 자고 뛰든 산에 오르든 해보겠다던 생각을 뒤로하고 마침 눈 앞에 등장한 산길에 나도 모르게 홀렸달까! 산길을 올라가는 발길이 가벼웠다. 어제의 과음도 깔끔하게 잊고 엠티에서 자고 보자던 생각도 잊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이런 길은 거제도 학동 고개에서 보았던 풍경이었다. 학동 고개를 조금만 오르면 보이는 한려해상의 탁 트인 풍경이 쌓였던 모든 근심 걱정을 다 씻어버릴 것 같은 시원한 풍경! 보지 못한 상상력은 단지 상상력일 뿐! 설악산을 오르는 비선대를 보고 찬사를 아끼지 않던 사람들을 보고, 알프스의 빙해를 보지 못한 사람들의 비애를 알까! 행여, 남대문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 따지니 가 본 사람이 침묵하는 현실이라고 할까!


거제도의 절경은 산에 있다. 드라마에 나온 폭풍의 언덕이 유명해지게 된 건 단지 유명세, 내가 가봤다 뿐이지, 실제 절경은 고작 폭풍의 언덕에 있지 않다!



스스로 인생의 즐거움과 즐겨야 할 진정한 의미를 안다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 그것마저도 편견과 오만에 의한 착각인지, 아직 덜 깨달았는지, 산속에서 화전을 일구는 사람에 비해 내가 낫을 게 없다는 겸손은 99%의 악인을 만나고 한 사람의 선인을 만났다. 선과 악은 구분할 수 없이 단순히 그 자리에서 그렇게 보일뿐, 그 앞뒤를 분간할 능력이 없었다. 나 역시 그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어떤 평가를 받을지, 감당할 길이 없었다.


 산길은 단조로웠다. 동네, 2백 미터 높이의 산책로와 견주어도 모자랄 것 없는 길이 편하게, 푹신한 땅을 밟고 가는 길이 가뿐하게 상쾌했다. 나뭇잎이 떨어져 비단길처럼 폭신하게 신발을 벗고 걸어도 좋을 황홀한 산길이 계속 이어졌다. 이런 산길은 어느 순간 탁 트여, 주변의 풍경을 고스란히 안겨주는 즐거움이 있기에, 아는 길, 다닌 산만 다닌 사람이 항상 범하는 오류는 자신이 아는 길이 최고이며, 가장 힘들었고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진짜 여러 길을 다녀보고 좋은 길과 나쁜 길, 좋은 풍경과 감추고 싶은 풍경, 도저히 자랑하지 않으면 남겨둘 수 없는 인생길은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아름다운 산과 산길, 힘든 길과 왜 힘든지, 왜 아름다운지를 현장에서 다른 산길과 비교해서 깨달았으므로 누구보다 잘 설득할 수 있었다. 진리는 모든 산길은 아름답고 걷는 당신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곧 주변이 탁 트인 풍경이 나타났다.


문수봉에서 바라본 학일 저수지와 김미화 마을 뒷산 구봉산 줄기


걷는 것 이외에 기대하지 않았던 덕분에 풍경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단지 사진을 찍은 이유는 내가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는 뿐! 산길은 단조롭고 상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일단 산행을 시작하면 최하 10km의 루트를 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졌기에, 주변 지도를 따져보아도 적당한 시간에 끝낼만한 루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루트 짜르기를 시도했다. 루트 짜르기는 일반적인 등산로가 아닌 길을 잘라 없는 길을 간다는 뜻이다. 어차피 산길은 일직선으로 나 있고, 모르는 길을 다닐 땐, 루트를 살펴보고 적당한 길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예기치 않은 상황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야간 산행일 뿐, 야간산행은 그대로 짜릿한 흥분을 전해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중간에 길을 잘라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길에 들어섰다. 과연,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길이란 거미줄이 가득하고 사람들이 최근 발길이 뜸한 곳이었다. 분명 지도 앱에선 등산로로 지정된 길이었는데 다니다 보니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길은 수풀로 우거져 제대로 걷고 있는 길인가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다. 그렇게 나는 야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너희들이 야생 풀과 가시덩굴을 만났을 때, 절대로 그곳을 통과할 생각을 하지 마라! 먼 길을 돌아 안전한 길을 가는 것이 가시덩굴을 헤쳐나가는 것보다 현명하다!"


 외인부대의 조교가 했던 말이었다. 프랑스의 야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야생과 길이 달랐다. 정말 가시덩굴은 너무 빽빽하고 틈이 없어 지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다는 상상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가시덩굴은 가시가 많지 않은 단지, 수풀로 뒤덮인 보이지 않는 길이었을 뿐,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복병은 있었다. 옻나무였다.


등산로를 벗어난 한적한 산에, 사람이 다니지 안아 야생인 가시덩굴을 만났다. 어떻게 지나가야 할까! 돌아가기엔 야간산행을 각오해야 하는데!



얼마나 내려왔을까!


 주변으로 가득 자란 풀과 가시 가득한 나무들, 머리 크기까지 매복한 거미줄까지 가시는 걸음걸음 성가셨다. 보통의 체력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갈되기 마련이라, 언제 어떻게 지쳐 다리가 풀리고 더 이상 움직이기 힘든 순간이 오는지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한다. 이때의 팁,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 어차피 등산로는 주변에 있고, 빈틈없어 보이는 수풀 속에 언제나 감춰진 길은 있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마주했던 산길의 야생과 비교하기에도 낯선 길이라 더욱 어색하고 어려워 보이는 길은 저 멀리 길이 보이기는 한데, 가까워 보이는 만큼 앞을 가로막은 거미줄과 키 높이까지 자란 풀 숲, 그리고 보기에도 흉측한 옻나무가 가늘 길마다 흉측한 모습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이리가고, 저리 가도, 5미터 앞을 볼 수 없고 10미터 앞을 가늠할 수 없는 길, 쉬운 길을 뚫고 가다 보니 조그만 개울을 만났다. 개울은 숲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곳이었다. 막상 개울을 만나자, 건너려고 하니 울창한 풀 숲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게 웬 횡재냐며 운동화를 신고 있음을 깨달았던지라, 행여, 개울물에 발이라도 빠트릴라 조심조심 걸어내려가려 했는데 굴러 떨어졌고, 그때까지 조심해왔던 옻나무에 몸이 걸려 개울물이 바로 옆에서 개울개울 흐르고 있었던기라!


오호통재라! X땠다!


 옛날에, 그니까, 30년도 넘은 옛날에(쿨럭쿨럭) 갱상도 지리산 아랫마을 곡점에 사는 친구가 내게 신천지를 선보이겠다고 열심히 가을 수확을 끝낸 내게 막걸리를 엄청 먹이더니 즈거 아부지랑 마을에서 닭을 사 와 고왔더랬다. 막걸리에 취하고 지리산 언저리 밤나무 밭에 떨어진 밤을 줍는다고 발에 찔리고 손에 찔렸음에도 세상에 그런 행복이 없더라! 친구는 막걸리에 취한 나를 깨워 어디론가 휘적휘적 데리고 가더니 개울가에서 뱀에 물려가며 고기를 잡았고 무슨 나무를 뽑더니 양팔에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와 끓이고 있던 닭고기에 마구 쏟아 넣었다. 나는 친구와 친구 아부지의 미소에 홀려, 죽는 줄도 모르고 그 맛있는 닭백숙을 바닥까지 달그락달그락 긁어먹었다.


 다음날, 나는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옻이 올랐다. 하필 다음날 대구에서 처음으로 운전면허 시험이 있던 날이어서 이날을 더더욱 잊을 수가 없다. 친구의 그 유쾌하고 통쾌하던 얼굴이 악마의 미소로 보이고 친구 아부지가 마이 먹어라고 부추기던 그 모습을 악마 부자라고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우리 아부지에게 친구와 친구 아부지의 만행을 낱낱이 고자질했으나,


"보약 뭇네!"


하면서 주먹대장만큼 커져 보기 흉측했던 내 꼬추의 붓기를 가라 앉힌다고 찬물 담은 바가지에 고추 넣고 혼자 인생무상을 경험했더랬다.


그 어렸을 때의 기억은 30년도 훨씬 넘었던 때였다.


 내가 만약 제대로 된 옷을 입었고 등산화를 신었더라면 이런 가시덩굴과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은 애들 장난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착용한 모든 등산 용품들은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마음 편하게 여유를 부릴 만큼 마음을 편하게 했기 때문에, 하루를 야생에서 자도 문제가 없었고 야생의 호랑이를 만나도 친구로 만들 만큼 마음도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깅 운동화를 신고 있었고 내일 버려도 아깝지 않을 바지와 허름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문수 마애석불, 어느 불심 깊은 신자가 벼릉빡에 낚서 질을 했다. 고려 때라나......


 조그만 개울 물을 건너고 기듯이 올라가며 등산로와 가까운 에펠탑 전봇대를 만났다. 까짓 거 길 없는 길, 내가 만들면 길인 거지! 등산로를 접수한 나는 의기양양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안도의 한숨을 행여 들킬까 봐 조용히 들이켰다. 그리고 나는 또 , 갱상남도 사천시 서포면 나분리 야산 야트막하게 자리하던 성당의 나이롱 천주교 신자로써, 잊을 수 없는 김대건 신부가 포교활동을 하러 다닌 조선시대의 길은 은아 성지로 들어섰다.


 홀로 외롭고 적막한 길, 산길에 쌓인 단품이 비단길을 만들어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에 가벼운 발걸음. 그러나 이미 목표 10킬로를 넘겼고 길의 변화는 없어 야생의 이음 길이 있는 굴다리에 다 달아 운동을 끝냈다. 피곤함에 구봉산을 가지 못했던 아쉼움을 달래며 하루 목표를 수행한 짜릿함!


오늘은 중간에 깨지 않고 푹 자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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