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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Jun 11. 2021

설악산 일장추몽 1, 2020년 추석

토왕성 폭포


 추석이 시작되자 긴 연휴가 찾아왔다.

이 추석을 어떻게 할까? 여행을 다닐 것인지, 고향에 가 어머니와 형제들을 만나 가을 전어를 먹을 것인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그 고민은 의외의 곳에서 결정됐다. 거제도 삼성중공업 코랄 프로젝트 테크닙에서 근무하는 프랑스 친구가 10여 명을 이끌고 설악산으로 온다는 소식에 주저 않고 설악산으로 향한 것이다. 그들은 일반 루트가 아닌 한적한 펜션을 예약해 추석이 끝나는 날까지 머문다고 했기에 그중 하루 날을 잡아 찾아가거나 산행 중 어딘가에서 약속을 잡기로 했다. 10여 명이나 대동한 팀이라면 설악의 봉우리 어딘가에서 만나는 것이 극적이라는 판단이었다. 평택으로 올라오기 전에 테크닙에서 일할 계약이 깨진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만날 생각에 신났다. 


 계속되는 야간작업에 피곤하던 육신이 잠에서 깬 것은 정오가 다되어서였다. 부랴부랴 짐을 꾸려 송도의 데카트론으로 향했다. 야영을 하고 싶어 텐트와 침낭을 사야 할 데카트론 스포츠 용품점은 거의  폐점 분위기여서 살만한 상품이 그다지 없었다. 올 겨울산행 준비도 할 겸, 쇼핑을 단단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 장비는 사지 못했다. 프랑스 데카트론 매점에 비해 비치된 제품들이 적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전문적인 제품들은 거의 없어서 수준이 미비했다. 같이 짬을 내어 시간을 내준  형이 한 말이 금방 이해됐다.


'요즘 한국 사람들은 이 정도 수준에 만족 못해! 수준이 엄청 높아졌거든!' 


 그러나, 가격 차이가 너무 났다. 한국 제품들은 뭘로 만들었는지, 알록달록 화려하고 비쌌지만 데카트론 제품은 값싸면서도 눈탱이 맞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쉬움을 달래며 마지막 날 속초 해수욕장에서 야영과 낚시를 즐길 3인용 텐트만 산 뒤, 소공원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가까웠다. 오늘은 그냥 토왕성 폭포만 간다 하더라도 3박 4일간의 루트를 짰다. 그동안 설악산에 실망한 게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한국 최고의 명산이자 1만 2천 봉우리의 아름다움을 누려보려 했지만 올 때마다 그 진가를 알지 못했으므로, 이번엔 야영을 제대로 하면서 점점 저질이 되어가는 체력 회복을 위해 천천히, 구석구석 다니고 싶었다. 가을 단풍이 무르익어 황금연휴에 설악산을 찾을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급적 사람이 없을 시간대를 이용하고 싶었다. 


 입산 통제가 이뤄지는 구간이 많았다. 지도 앱을 통해 확인한 주요 루트만 제외하면 모든 구간이 빨간 선으로 초록색 정상 등산로와 구분했다. 또한 비법정 탐방로라고 해서 빨간 점선으로 분류한 구간과 계곡 따라 이어진 하얀 선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분명 정상적인 등산로가 아닐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단순한 계획만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겐 통제된 구간에 대한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무심코 등산을 할게 뻔했다. 한 번도 등산로가 통제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제약 없이 다녔던 산행에 입구에서 통제된다는 말을 들으면 돌아버릴 것 같았다. 거기에, 입산한 사람들이 야영과 취사를 못하게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길 경우, 벌금을 부과한다는 말도 산도적을 자처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을 대체 뭘로 봤으면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지,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국립공원 운영자금을 만들어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어쨌건 이번 프로젝트엔 공단 직원들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으면 했다.


소공원 안 상점이 잘 정돈되어 깔끔해 보였다. 오래전엔 크고 작은 상점들이 숲 속 여기저기 상가처럼 즐비했었다고 했다.
토왕성 폭포 전망대에서 바라본 토왕성 폭포는 구름에 가렸다. 설악산의 화려함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라고 생각했다. 폭포 줄기가 구름 아래 살짝 걸렸다.


 주차비 5000원은 지불하고 소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티켓을 샀다. 불교 조계종 신흥사와 민간업체가 케이블카와 주차장까지 관리했다. 신앙인들이 돈 맛을 들여 도박에 열심이더니 산행 가는데 삥을 뜯었다. 몇몇 정치인과 권력자들, 부패한 종교가 뜯는 삥을 차라리 공원관리공단에서 운영하고 직원들 복지와 교육에 투자하면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독교나 불교나 혐오스러운 부패는 꼭 정치인 권력과 결탁했다. 아름다운 산천에 자랑할만한 시설을 보며 마음이 넉넉해지는 뒷면에 이런 부조리가 바로잡혔으면 했다. 불교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 싫어하는 이유가 됐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권력과 자본의 결탁을 상기하는 나도 참 한심했다. 소공원 계곡엔 나무와 계곡에서 풍기는 서늘한 상큼함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아 소름 끼치는 현기증이 일었다. 경험해본 적 없는 신선함에 피부가 놀라는 것 같았다. 내일 새벽 3시, 등산이 시작되면 곧장 산행을 시작할 생각에 의지가 솟아 가볍게 토왕성 폭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사실, 주차장부터 소공원 입구까지 벌써부터 넘쳐나는 인파로 바쁜 걸음을 옮기는 게 불가능했다. 연휴가 4박 5일이나 되었기 때문에 소공원 주변 호텔들이 특수를 누려 들어오는 입구에서부터 차량 행렬이 긴 줄을 이었다. 호텔 입구에도 주차할 공간도 없이 빽빽하게 모인 차량들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토왕폭 전망대를 향하는 계곡 길가엔 이슬람 복장을 한 사람들도 많았다. 단순한 관광을 온 것이 아닌 노동자들이 분명해 보였는데도 꾸며 입으니 한층 멋이 났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그들 속 남자들은 무슬림 복장을 하지 않았지만 군살 없이 건장한 근육질 몸에 밀착된 옷을 입고 청바지를 입어 한껏 멋을 부렸다. 그들은 확연하게 우즈베키스탄 쪽에서 온 무슬림과 인도나 스리랑카 쪽에서 온 사람들과도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평택 반도체 현장에는 외노자들이 없었다.


 처음에, 평택이나 이천 등의 반도체 현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없는 이유가 한국인 노동자들의 권리쯤으로 생각했다. 외노자들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 조선족의 어투나 중국어를 듣지 않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반도체 현장에서의 느긋한 업무와 비교적 인간적인 대우가 조선소의 숨 막히는 노동 수준과 환경에 비하면 천국 같다는 위안을 삼으며 나름 적응해 가는 중이었다. 그럼에도 한국의 조직적인 하청의 재하청 문화는 인간에 대한 소중한 가치보다 돈 놓고 돈 먹는 먹이사슬 형태에서 변하지 않았고 다만 환경이 조선소보다 낫다 뿐이지 시스템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근 1년을 바라보는 반도체 현장에서 외노자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보안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허탈했다. 그리고 그 보안 문제로 인해 한국의 반도체 건설 능력과 기술력이 최고의 가치를 갖는 이유가 되자 금방 이해가 됐다. 왜냐하면 한국의 모든 현장은 이미 외노자들이 장악한 지 오래였다. 기업들이 돈을 버는데 돈이 최고의 가치이지 한국인이라는 동질성은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일몰 시간이 다가와 비룡폭포를 오르는 계곡 위를 건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 생활 20년 동안 이방인으로써 프랑스 사회 속 외국인을 바라보았을 때와 달리, 우리나라에서 외노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아주 컸다. 우선 질 나쁜 외국인들이 아시아인을 조롱하고 차별하던 그들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첫 번째였고 다음으론 한국인들의 갑질에 악의를 가지고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뒤따랐다. 실제로 조선소에서 보았던 외노자들은 질이 나빠 보이는 건달 같은 친구들이 대부분처럼 보였고 한국이나 아시아에 호감을 가지거나 호의적인 무슬림들을 거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도대체 어떤 목적과 배경으로 무슬림들이 한국으로 왔는지 의아했다. 알제리 본토에 친구들이 많아도 프랑스에서 만난 대부분의 무슬림들은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혐오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는 내 시각은 아주 불편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그들의 차별을 염려하는 내게 한국인들의 갑질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조선소에서 만난 친구들은 기죽어 살았고 바닷가 선원들은 건들건들해도 어마무시한 고생을 할 생각에 더 마음이 편치 못했다. 한국 사람들처럼 일하는 외노자들은 어디에도 없었고 한국 사람들처럼 일하지 않는다고 무시당하고 모욕당할 외노자들의 안부가 염려스러웠다. 그만큼 한국인들이 노동현장에서 가하는 갑질은 상상을 초월했다. 비닐하우스에서 재우고 성추행하고 노동력 착취와 구타가 눈에 선했다. 뉴스에 나오는 일은 모두의 일이 분명했다. 인간이 얼마나 악랄해질 수 있는지 주변에 널렸다. 그러나 다 부질없는 염려였다.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남 걱정하는 오지랖이라니!


이 조그만 비룡 폭포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게 한심했는데 특히 외국인들이 많은 이곳이 오르는 게 허가된 최종 목적지였다. 


 지도를 보며 찾아가는 길은, 지도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다니고 있었다. 너무나 단순한 길에 사람들이 줄지어 다녔기 때문에 마치 다른 길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권금성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못 가서 계곡의 다리를 건너 토왕성 폭포를 향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이윽고 지도 어플에는 빨간 점선으로 그어진 '비법정탐방로'가 눈에 들어왔다. 가지 말라는 건지 위험하다는 건지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또 다른 하얀색 길이 나타났다. 그 선은 노적봉과 접선봉 중간 즈음에 있었고 '비법정탐방로'를 지나쳐 탐방로 아래 계곡 어딘가에서 멈추었다. 얼핏, 계곡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기자기한 계곡을 따라 육담폭포를 지나 오르는 길이 금방이라도 닿을 것처럼 짧아보였는데 막상 와보니 꽤 멀었다. 땀을 흘릴 생각이 없었는데 땀이 흘렀다. 설악산을 네댓 번 와봐도 토왕성은 처음이었고 울산바위를 두 번 가본 기억이 있었다. 중학교 때인지 수학여행 왔던 흔들바위의 웅장함이 그냥 짱돌처럼 여겨져 시시했던 기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어쩌면 토왕폭을 직접 보고 예전처럼 실망하지 않을까 염려가 컸다. 사실, 설악산을 찾은 이유는 가을 단풍과 비박이었지 산세의 웅장함이나 소소한 아름다움을 보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늦게 도착하였고 틈을 이용해서 토왕폭을 보려는 것이었다. 지도 어플이 지정한 곳에 도착하자 조그만 비룡폭포가 나타났다. 그 폭포를 보고 실소가 났다. 저 폭포를 보러 이리도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올라왔을 리가 없었다. 주변엔 나무 계단이 어딘가로 향해있었지만 출입금지 테이프가 입구를 막고 있었다. 


'옳거니! 저 길이 토왕폭 전망대 가는 길이겠구나!'


 테이프로 막아 놓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가볍고 지나쳐 올라갔다. 거의 직선처럼 구불구불 올라가는 계단이 제법 힘들었다. 금방 올라가겠지 싶은 계단은 계속 뻗다가 지칠 때쯤 되자 정상에 다 달았다. 시원한 바람이 땀으로 흠뻑 젖은 목덜미를 서늘하게 감싸는 정상 전망대는 여러 사람을 수용할 정도로 꽤 넓었다. 그곳에 혼자 있다는 즐거움과 함께 오로지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와 함께 고통 뒤에 오는 행복을 만끽했다. 풍경이 너무나 선명해서 구름이 끼어 있을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토왕폭이 있어 보이는 곳엔 구름이 자욱했다. 오호 통제라! 오는 날이 장날이구나!


토왕폭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엔 토왕폭 아래 물줄기가 살짝 보였다. 면사포에 감춘 네 모습, 안달케 하는구나!


 최근에 같은 나이 대의 친구들이 만든 산악회에 가입을 하고 북한산에서 릿지를 처음 경험하고선 이런 산행도 있나 신기한 경험이었고 그 후로 혼자서 여러 번 릿지 산행을 해서 재미를 들이면서도 산에 많이 다닌 사람들 따라다니면 모르는 길 곳곳의 이야기를 오손도손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그 친구들이 하는 얘기들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많지 않았다. '비탐'이니 '별 따는 소년' 같은 말은,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는데 모두 바위나 장소를 칭하는 것이란 걸 알게 됐다. 그들을 통해 산의 구릉과 바위, 계곡에도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왔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 친구들 중에 같이 일하는 친구도 백담사를 거쳐 오세암으로 향하는 어딘가에서 친구와 함께 비박을 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오세암과 용아장성은 얘기만 들었지 다녀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가 올려놓은 블로그의 사진들은 유구한 역사와 전설을 담아 봉정암에 이르러 끝나는 동선이 무슨 일이 있어도 용아장성을 타야 한다고 유혹했다. 내일 대청봉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아 불쑥 약속을 했다. 이번에는 오세암과 용아장성을 알현할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하얀 면사포에 가린 토왕폭을 앞에 두고 구경도 못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소공원으로 돌아왔다. 밤이 되자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한적한 소공원에서 차박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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