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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업계포상 Dec 06. 2018

다이어리를 쓰지 못한다.

그냥 그렇다고

 나는 다이어리를 쓰지 못한다.

 쓸게 있는 날에는 그 칸이 너무도 좁아 마음을 펼쳐낼 수 없고,

 쓸게 없는 날에는 그 작은 칸조차 채우지 못해 하얀 칸에 짓눌려 버려서.



 작년 이맘때쯤, 세 권의 다이어리가 생겼다. 회사 연말 선물과 지인의 선물 그리고 다니던 카페의 다이어리. 각각 한 해동안 적어갈 요일별, 주별, 달별 테마와 자유롭게 쓸수있는 백지 등이 내장되어있었다.


 그래서 그 다이어리들이 어떻게 됐을까?
 그 답은 제목에 나와있다. 그래 나는 그 세 권의 다이어리를 모두 써냈다.(?) 삼 년에 걸쳐? 아니 고작 세 달만에.

 내 하루는 도무지 네모난 칸에 만족할 줄을 몰랐다. 옆칸이고 아랫칸이고 범람하기 일쑤였고, 하루에 세페이지, 길게는 열페이지까지 써냈다.
 
요약해서 쓰면 될텐데...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해법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하루는 '무엇을 했다.', '무엇을 느꼈다.', '어떤 기분이었다.' 로 표현하기엔 너무 많은 감상과 스쳐간 인연, 겹친 순간들이 잘 구워진  크로와상처럼 파삭거려서 도무지 꼬옥 눌러 압착시킬 수 없었다. (그 풍요로운 버터향을 기억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 파삭파삭한 녀석을 있는 힘껏 짜부러트릴 수 없음을)


 하지만 말했듯이, 난 결코 다이어리를 채워본 적 없었다. 매일매일 쓰는것은 내게 고통이었고, 적어낼게 없음에도 다이어리를 채우기 위해 펜을 드는 행위는 거짓처럼 느껴져서 참지 못했다. 학창시절의 내가 족히 이십년은 반복했던 가짜의 삶을 이제와 또 반복할 수는 없지. 이제야 겨우 타인의 삶이 아닌 내 삶을 아장거리는 내게 그것은 어떤 역겨움이었다. 쓰고 싶은 날의 글이 잘 구운 크로와상이라면, 의무적으로 쓴 글은 공장 빵이었다. 물론 누군가에겐 필요하고, 누군가에겐 맛있는 빵이지만, 나다움이라거나 개성따위는 진즉에 질식당한 반복의 결과물 말이다.

 결국 채우지 못한 칸들에 똑같이 질식당한 나는, 세 권째의 다이어리를 끝으로 다이어리를 사지도, 받지도않았다. 그 다이어리들은 내 손에 들어와, 다이어리로 태어나 노트로 죽었기 때문에.




 그녀는 다이어리를  쓴다.

 내가 버거워하는 칸들을 부푼 마음으로 맞이한다.

쓸게 많은 날은 신나게 칸들을 메워가며,

쓸게 없는 날은 그럴수 있지. 대차게도 마주한다.

내게는 어려운 일들이 꼭 그녀에겐 쉬웠다.


그녀에겐 그 작은 칸이 기쁨이었다. 메우기 위해 고민하고, 꾸미는 순간은 제빵사가 반죽을 치대는 그것이었다.

그녀는 그 작은 빵의 재료는 대게 일정이다가, 때로는 일상이다가, 간혹은 상념이기도 했다. 데코레이션으로는 스티커가 붙기도 하고, 캘리그라피가 적히기도 했다.


그녀는 말했다. 다이어리는 그녀의 일상이 특히 소중하게 담긴다고. 그렇게 1년. 과연, 그녀의 다이어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녀의 다이어리가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같은 노력을 투자할 각오가 없는 부러움은 언제나 허상이었다.


하여 올해의 나는 여전히 다이어리를 사지 않았다. 매일매일 써나갈 자신이 없는 나의 유약함을, 네모 상자 안에 규정되지 않는 하루를 살고 있는 것이라 위로하며.




 그저 '나는 그렇다.'라는 자조적인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죠?
 당신은 다이어리를 쓰시나요?
 왜 쓰(지 않)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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