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멍이 들 수 있었다.
때는 목요일이었다. 갑작스런 지사의 폐업으로 인해 본사로 용달을 보낼 일이 있었다. 이틀 내내 박스와 씨름을 하고, 삼일 째 되는 날에야 파란 포터의 등딱지를 그득 채워 떠나보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용달 아저씨는 손수 짐 옮기는 걸 도와주셨고, 목적지까지 잘 배달하겠노라 다짐하셨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날의 파란 포터는 멍이 아니라 하늘의 색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였다. 본사도, 지사도 임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포터는 이미 경부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도. 본사는 무책임하게 폐업한 지사에게 책임과 돈을 물었고, 지사는 계약조건까지 들먹이며 본사로 화살을 돌렸다. 그들은 지사에 파견을 나온 본사 직원인 나를 사이에 두고 냉전을 벌였다. 마침 용달을 부른 당사자이기도 한 나는 그 사이에 콱! 끼어버렸다.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막내직원이었다. 본사에 전화를 할 때마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고민해야 했고, 지사에 전화 할 때마다 서릿발도 떨고 갈 냉대에 앓아야했다. 하지만 시퍼런 통화가 몇 통이나 오갔음에도 결국 임금은 지불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다, 그날부터 전화가 불통이 난 것은. ‘왜 돈이 입금되지 않느냐!’ 물어대는 목소리는 짜증스럽다가 화가 차올랐고, 급기야 시들어갔다. 거무죽죽한 색은 타들어갔다고도 말할 수 있었으나, 탄내조차 피워 올리지 못한 채 조용히 죽어가는 마음은 시들어갔다는 말이 더 옳았다. 나는 그 전화를 피하고 싶었다. 그의 독촉에서 멀어지고, 외면하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두 통에 한 통은 걸러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이 옥죄었다. 그 전화는 피하면 안 되는 전화였다. 용달 아저씨는 아무 잘못 없었다. 아저씨는 언제나처럼 짐을 실어 날랐는데,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것이다. 잘못은 사측에 있었다.
아저씨는 몇 번이고 전화를 하고, 또 전화를 했지만 이내 그것마저 지쳐버리셨다. 금요일 저녁까지 울리던 벨소리는, 주말에는 날 괴롭히지 않았다. 나는 멋대로 생각했다. ‘아, 돈이 들어왔구나. 다만 너무 마음고생을 해서 내게 어떤 연락도 해주기 싫으신 거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했다. 금요일 저녁까지 본사와 지사를 넘나들며 눈치를 살피던 내 마음 한 구석도 이미 시커맸으니까. 아니, 그때까지만 해도 빨갛게 물들어가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 덜 시든 피가 새빨갛게.
마침내 일이 터진 것은 월요일 아침이었다. 출근과 동시에 전화가 왔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받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중국인에게서 걸려온 보이스피싱이길 바랐다. 그래서 한 통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연이어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앓던 이가 마음에 박혀 시큰거렸다.
“여보세요?”
그 네 글자가 그 날은 참 무거웠다. 발신처는 용달 업체였다. 지칠 대로 지친 용달 아저씨가 마침내 업체에게 전화를 하신 것이다. 그저 용달을 매칭해주는 업체 사람의 목소리는 적절한 언짢음, 귀찮음 등이 묻어있었다. 그 멀찍한 제삼자의 거리감, 희미한 감정 덕에 오히려 선명해졌다. 용달 아저씨의 멍든 마음이, 서늘한 식어버림이. 나는 재빨리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받아주시기를 바라며.
“여보세요?”
나의 ‘여보세요’따위보다 몇 배는 무거운 ‘여보세요’였다. 오행산에 깔린 손오공보다 솔직하게 말했다. 임금지불이 늦어진 이러저러한 사정과, 돈을 주기로 한 지사의 대표님의 번호까지 쥐어주었다. 과연 본사라 해도 말단인 내가 지사의 대표님 번호를 주고받아도 되는 지는 여전히 두려웠으나, 이때쯤의 나는 옳은 일은 옳다고, 이미 다른 모든 걸 포기한 뒤였다. 이렇게 잘릴 직장이라면, 오래 있는 것도 무의미하겠지. 그리고 제발 이번에는 입금이 되길 바랐다.
그래, 이때쯤부터다. 용달 아저씨는 이미 내게 화낼 마음이 없으셨다. 그는 내 어린 얼굴을 보았다. 몇 통의 전화를 이리 저리 연결하는 나를 보며, 아저씨도 아셨다. 나는 말단 직원이며, 별 권한이 없다는 것을. 그는 지사 대표라는 양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그저 기도했다. 하지만 전화는 다시 내게 걸려왔다. 빨간색도 보라색도 아닌 멍든 마음은 안고서. 지사 대표는 임금을 지불해주지 않았다. 본사로 알아보시라는 말과 함께 다시 내게 전화를 이어줬다. 용달 아저씨가 노발대발 고소를 한다고 외쳐도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아저씨는 다시 내게 전화를 걸었다. 십 원짜리 하나 건지지 못한 채로. 오히려 더 쓰셨지, 쓰시지 않으셔도 될 통화비와 태워버린 애간장으로. 아저씨는 내게 하소연했다. 용달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대금을 받아 유류비와 식사비를 쓰고 나면 고작 얼마가 남는지, 그 몇 푼 아껴보고자 어떻게 사는지. 하나하나 맞는 말이었고, 아픈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무엇인가? 거듭 사과를 드리며 보이지도 않는 고개를 숙이는 것, 그리고 본사와 최대한 빨리 연락을 취하는 것뿐이었다. 용달 아저씨는 포기가 점철된 목소리로 ‘네, 알아봐주세요.’ 하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하지만 그마저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 오전 열시에 넣어둔 연락이 오후 두시 반이 되어서야 답신이 왔다. “무슨 일이야?”묻는 음색만으로도 충분히 바빠 보여 다그치지도 못한 상사의 연락이.
나는 그저 사실만 전했다. 아직 대금이 치러지지 않았는데,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그게 안 되면 차라리 내가 지불하고 나중에 영수증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상사는 바쁜 것인지, 껄끄러운 것인지, 실장에게로 전화를 연결해 주었다. 나는 앵무새처럼 상황을 반복 설명했다. 실장과의 통화는 과연 껄끄러운 일이었으나 그만큼 빨리 처리되었다. 보고된 사안은 바로 경리과로 넘어갔다. 다만 결제가 떨어지기 전에는 입금이 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멍든 마음으로 아저씨께 전화 드렸다. 아저씨의 시든 목소리에 조금은 이슬이 맺혔다. 새벽의 희망인지, 눈물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분의 목소리만큼은 한결 가벼워지고, 편해지셨다. 물론 그만큼 나는 더 무거워졌다. 여전히 입금은 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다섯 시 오십 분. 퇴근을 한 시간도 남겨두지 않은 그때서야 전화가 왔다. 본사도 아니고 지사도 아닌 용달 아저씨에게서. 돈이 들어왔다고. 드디어, 정말 드디어!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런데 용달 아저씨는 오히려 내게 말했다. 고맙다고. 힘써줘서 고맙다고. 말을 참 예쁘게 한다고, 얼굴도 예쁘고 마음도 예쁘다고, 내가 직접 봤지 않느냐고. 참으로 고맙다고. 나는 그 말이 참 시렸다. 아니, 눈이 먼저 시렸다. 잘못은 회사가 했는데, 그 사이에서 등이 터져가던 개인이 내게 고마워했다. 보이지 않아도 전해지는 그 작은 어깨를 주억거리며 인사했다. 나는 나보다도 작았던 그 품에 안긴 기분이었다. 그래서 죄송스러웠다. 이리도 순한 목소리로 고맙다, 예쁘다 말하는 사람의 속에 그렇게 불을 지피고, 까맣게 태워버려서. 소리도, 냄새도 없이 시들어가게 해서 참 죄송했다.
나는 이제 고작 사회초년생이다. 내가 엄지발가락만 겨우 담가본 사회는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돈을 이유로, 미안한 얼굴도 없이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그 사회 속에도 사람이 있어, 이렇게 오늘 하루의 감사를 느낀다. 바쁜 하루를 보내는 용달 아저씨가 이 글을 읽으실지 알 수 없지만 덕분에 참 죄송스러웠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