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그림책 '너를 보면'
사랑하는 아들아, 널 보면 알겠구나.
지금의 이 순간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사랑하는 아들을 보며 노란 컵, 커다란 상자, 물웅덩이, 파란 그릇, 일회용 반창고, 우주선 잠옷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낍니다. 또 지금의 이 순간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절전모드를 시작합니다.”
밥솥이 말했다. 전원은 켜져 있는데 보온도 취사도 선택하지 않으면 이런 소리가 나온다. 부엌 한구석에 털썩 앉아 있던 나는 웃음이 나왔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거 같았다. 나도 그 순간 절전모드 중이었다. 오후 4시 6분, 나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간대였다.
남편은 토요일에도 출근을 한다. 보통은 여섯 시 전에 집에 오지만, 오늘은 퇴근하고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는 날이라 늦는다고 했다. 아이들의 취침 시간까지 혼자 달려야 한다. 전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절전모드로 바꾸는 밥솥처럼, 나도 체력을 아끼기 위해 잠시 절전모드에 들어갔다.
“엄마, 이것 좀 보세요! 제가 만들었어요!”
“우와!”
“엄마, 상자 안에 사과를 넣었어요.”
“정말?”
아이 둘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온전한 휴식을 누리는 건 쉽지 않다. 아이들은 혼자서 잘 놀다가도 엄마에게 말을 걸어온다. 내가 선택한 절전모드는 최대한 짧게 답하는 것이다. 짧게 감탄하거나 되물으며 말하는 에너지를 아꼈다.
“엄마, 버쯔! 큰 버쯔 온다!”
“버스네!”
“엄마, 까치! 까치!”
“까치다!”
22개월 된 둘째 아이는 창밖에 뭐가 지나갈 때마다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찾는다. 평소에는 얼른 달려가서 같이 창밖을 보며 종알종알 이야기하지만, 절전모드에서는 멀찍이 앉아서 아이가 한 말을 짧게 되받는다.
“엄마, 지금 힘들어요?”
내 말이 짧아지면, 눈치 빠른 첫째 아이가 이렇게 묻는다. 피곤하다고 답하면 조금 쉬라고도 말해준다. 그런데 아이가 말하는 ‘조금’은 정말 짧은 시간이다. 아이는 몇 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이제 다 쉬었냐고 묻는다.
십 년 후 우리 집 풍경을 상상해 본다. 첫째 아이는 열여섯 살, 둘째 아이는 열세 살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아이들이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까? 묻는 순간 답이 보인다. 딸인 나도 그 무렵부터 엄마보다 친구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도 아들 나름이라고 하지만, 보통의 사춘기 남자아이라면 수다쟁이를 기대하긴 힘들다. ‘그때는 아들들이 내 물음에 단답형으로 답하겠지?’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잠깐 동안의 휴식을 마치고,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엄마의 등장을 반기는 눈빛, 또다시 바쁘게 움직이는 입술, 작은 입에서 흘러나오는 낭랑한 목소리가 아까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듣고 정성껏 대답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 되어 부엌으로 왔다.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렀다.
“절전모드가 종료되었습니다.”
오늘따라 밥솥과 마음이 잘 통한다. 밥솥은 밥을 짓고, 나는 미소를 짓는다.
아이는 내게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이었다. 그 눈빛, 그 움직임, 그 표정, 그 웃음, 아이의 모든 것이 내가 이전엔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소설이자 시 같았다. 아이와의 대화는, 이때의 우리가 아니면 이뤄내지 못할 고운 풍경 같았고.
-이연진, '취향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