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지 못하는 아픔

그리고 다시 시작된 육아휴직

by 다정한 마음결

첫째가 태어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합쳐 6개월을 쉬었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나타난,
나를 닮은 어여쁜 아이가 주는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남편과 나는 부모가 되는 기쁨을 만끽하였고, 때론 서툴기도 했지만 그저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아이의 조그마한 몸짓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그때는 복직에 대한 걱정보다는 휴직 시간을 즐겼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아이를 재우고 여유 시간이 생기면 마음 편히 드라마를 보기도 하였고, 조동방(조리원동기카톡방)에서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며 웃기도 하였고, 아이가 울면 잘 재우지 못하고 땀만 뻘뻘 나서 엄마께 도움을 요청드리기도 하였고, 할머니 품에서 잘 잠드는 아이를 보면 아휴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우리는 어린 초짜 부모였다.

초짜 부모만이 누릴 수 있는 희로애락을 많이 느꼈다.




아이가 6개월이 되고, 막 이유식을 시작할 때 즈음 복직했다.

당시 출산휴가만 쓰는 분위기의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3개월 덧붙여 쓰는 것만으로도 이미 눈치가 보였었다.

휴직 6개월 후 복직하여 일을 할 때에는 세상이 다 원망스러웠다.


내 아이를 내 손으로 못 키우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고, 일을 주는 상사도 밉고, 전문직을 선택한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하였다. 내가 이렇게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회사는 왜 나에게 이렇게 많은 일을 주는 거지?라는 마음이었다. 당시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주로 하던 시기여서, 나는 안방에서 일도 하고 회의도 하고, 엄마는 거실에서 딸아이를 보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환경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다. 얇은 문 사이로, 아이의 목소리가 다 들리는데도 내 아이를 내가 만져보지도 못하고 안아보지도 못하고 일을 해야 하는 하루하루가 굉장히 힘든 나날들이었다.


어느 날 내가 재판을 갔다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가 나를 쳐다보던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때 아이는 돌도 지나지 않아서 아직 말도 잘 못하는 아이였는데도,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바로 고개를 돌리고 할머니랑 놀았다. 마치 내가 투명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그때 무너졌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아이가 나에게 "엄마 왜 이렇게 어린 나를 두고 일하러 가는 거야. 나는 엄마가 미워"하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분명 나는 아이를 1분 1초라도 더 보고자 땀을 뻘뻘 흘리며 집으로 달려왔는데, 아이는 나를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그 후로도 아이는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몇 번이나 나를 본체만체 대하였고, 나는 매일매일 무너졌다.


나는 재판 가는 택시 안에서, 택시 아저씨에게도 내 상황을 털어놓으며 울었었다.

"내 아이를 내가 마음껏 보지 못하고, 내 손으로 키우지 못해서 너무 슬프고, 속상해요. 이렇게 지내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라고.

그냥 나는 누구든 붙잡고 나의 속상함을 이야기할 만큼 절박했고,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렇게 일과 육아의 경계도 없는 삶, 이도저도 아닌 삶 속에서 8개월을 버티고 방황하다 결국 나는 다시 육아휴직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그건 큰 결심이었다. 출산휴가만 쓰는 분위기의 직장에서 육아휴직을 재차 쓴다는 것은 그냥 퇴사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짧은 기간 안에 재차 휴직을 쓰는 건 더더욱이 그러하였다. 엄마가 되고 나서는 이미 그 회사에서 부적응자였기에 다시 내가 돌아올 곳은 아니겠다고 생각했다.


출산하고 아이 몸무게 정도만 빠져서, 10킬로 가까이 찐 몸으로 복직했었는데, 다시 휴직에 들어갈 즈음 그 10킬로는 다 빠져있었다. 역시 최고의 다이어트는 맘고생이던가.

그렇게 어느 가을 나의 두 번째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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