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꼬아이와 함께 한 일곱 달

감사하고도 불안한 나날들

by 다정한 마음결

추석 연휴와 함께 나의 두 번째 육아휴직이 시작되었다.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던 시간이었기에, 아이와 함께 보내는 하루하루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고 행복했다.

돌이 막 지난 딸은 정말, 정말 예뻤다.
귀여운 목소리로 짧은 단어를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고, 아장아장 걷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마음껏 탐험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부모로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었고, 나에겐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었다.


그 시기, 아이가 자주 했던 말이 있다.
“오꼬아이~”

뒤뚱뒤뚱 걷다가 오토바이만 보면, “오! 꼬! 아! 이~” 하며 장난스럽게 외쳤다.
나는 “오토바이잖아~” 하며 정정해 줬지만, 아이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 “오꼬아이~~”
그 말투, 웃음, 작은 몸짓 하나하나까지 전부가 사랑스러웠다.

지금도 나는 그 '오꼬아이'라는 단어와 그 목소리를 잊지 못한다.


그 일곱 달 동안, 우리는 많은 걸 함께 했다.

딸과 2주간 제주살이도 해봤고, 처음으로 세 식구가 함께 해외여행도 떠났다.

그해 겨울,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괌에서 보내기로 했다. 그때 아이는 18개월 즈음이었다.

누군가는 어린아이와 떠나는 해외여행을 ‘그저 부모 만족’이라 말하지만, 그때 나는 우리 아이도 분명히 행복했다고 확신한다.

딸아이는 어디를 가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리번두리번거렸고, 석양이 내리는 바다에서 파도가 밀려오고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어찌나 신나 하던지.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엄마 아빠를 닮아 흥이 많은 우리 아이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엉덩이춤을 씰룩씰룩 췄다. 유쾌한 나의 남편은 크리스마스 맞이 줌바댄스에 현지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신나게 리듬을 탔고, 그 옆에서 아이도 함께 작은 손과 발로 리듬을 탔다. 그야말로 흥이 넘치는 귀여운 부녀지간이었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뀐 따뜻한 공기, 휴양지 특유의 유쾌하고 활기찬 분위기, 그리고 이국적인 크리스마스.
지금도 그 장면 하나하나가 눈앞에 생생하다.


그리고 그렇게 수많은 평범한 하루들이 흘러갔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이었지만, 아이가 자라는 순간을 내 눈으로 하나하나 담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나의 ‘일’은 어떻게 되는 걸까?
나의 ‘커리어’는 어디로 가는 걸까?

가끔 평일 낮, 아이를 데리고 공동육아방이나 키즈카페에 가면 대부분이 조부모님들이었다.
그중 한 분은 나에게 말을 걸며 “우리 딸은 바쁘게 일하느라 자랑스러운 딸”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속으로 ‘저도 변호사인데요…’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 나는 마치 뒤처지는 것만 같았다.

분명 수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육아휴직인데… 가끔은 그 감정이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아이의 어린이집 입소 확정 문자를 받았다. 나는 다시 한번 결정을 내렸다.

원래는 4개월만 육아휴직을 쓰고 1월에 복직할 예정이었지만, 3개월을 더 연장해 4월에 복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를 내 손으로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고 복직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상사에게 복직 연기를 말씀드리던 날, 여러 감정이 밀려들었다.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의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3월, 아이의 첫 어린이집 적응기가 시작됐다.

18개월까지는 가정보육을 하고, 19개월에 처음 어린이집에 보낸 것이다. 요즘 워킹맘 사회 추세를 고려하면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만의 속도에 발맞추기로 했다.

첫 주는 엄마와 함께 1시간, 둘째 주는 엄마 없이 1시간, 셋째 주는 2시간, 넷째 주는 점심까지 먹고 하원.

조금씩, 서서히 우리는 떨어져 있는 시간에 익숙해져 갔다.
아이는 담임선생님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어느새 어린이집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충만하게 보낸 7개월.
참으로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과 고민이 교차하던 시간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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