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재즈처럼. 마음에 귀 기울이며 변주하는 삶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나의 최대 고민.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겹쳐진다. "어딘가 소속되지 않은 채로 돈을 벌 수 있을까" 고민하며, 내 나름의 답을 실험해보고 싶어서 2017년에 1년 동안 자발적인 백수로 지낸 것이었고, 그 시간들이 토대가 되어 2020년에 회사에서 독립해 지금은 예전보다도 시간을 자유롭게 쓰며 내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
회사 밖으로 나와 '묶여있지 않은 시간'이 늘어났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나의 시간들을 쓰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다양한 기회가 열려 바쁘게 지내고 있다. 내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가에 더 예민해지며 시간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을 계속 품고 있어서 그런지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 비슷한 생각을 표현한 문장들과 자주 마주친다. 오늘은 나의 하루하루를 이루는 '시간'에 관한 글.
며칠 전 우연히 본 테드 영상에서 공감 가면서도 나에게 작게 아하! 모먼트를 준 문장이 있었다. 자유시간을 제어하는 법이란 제목의 영상이었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해서 원하는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 나가게 되면, 시간은 저절로 절약되는 것입니다.
테드의 스피커인 로라 밴더캠은 '고장 난 온수기'를 예로 든다.
누군가 집에 온수기가 고장 나서 바닥에 물난리가 났고, 고장 난 것을 고치고 전문 청소 업체 등을 불러 수습하기까지 총 7시간이 걸렸다. 일주일 중에 7시간은 많은 시간이다. 만약 온수기가 고장 나기 전에 7시간을 누군가 멘토링 하거나 무언가를 배우는데 쓸 수 있냐고 물었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안된다고, 바쁘다고 했을 것이란 이야기였다.
시간의 양은 한정되어 있지만, 시간은 탄력적이다. 그래서 로라 밴더캠은 우리의 우선순위를 고장 난 온수기와 동등하게 취급하라고 이야기한다. 사실은 내가 사용하는 매 시간은 나의 선택이라는 것! 시간이 없다는 말은 결국 나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과대평가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마음은 과소평가한다. 그래서 시간은 점점 사라진다. "빨리빨리"에 사로잡혀 엄청난 속도로 많은 일이 진행되지만, 성공, 확장, 효율성, 이익 극대화, 자본 회수, 기술 독점이라는 숫자와 목표에 가려져 사람을 기계처럼 대하고, 그 과정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의 가치가 소외된다.
"빨리빨리"로 시간을 절약하지만, 그 절약한 시간을 쓰지 않는다면. 그 시간이 진정으로 의미 있게 쓰이지 않는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지난달에 좋아서 2번을 연달아 봤던 픽사의 신작 애니메이션 <소울>은 인생을 재즈에 비유한다. 영화를 제작한 피트 닥터 감독은 재즈는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한층 더 중요하게 쓰인다고 설명한다.
"당신이 인생의 연주자로서 삶을 주도적으로 펼쳐나가죠. 이게 재즈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데, 재즈 즉흥 연주자는 음악을 섬세하게 재단해 나가요.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개인적으로 그리고 내게 의미 있는 방향으로요. 이게 바로 우리가 찾아내고 생각한 ‘인생’이에요 인생을 당신만의 독특한 것으로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드는 거죠."
- <소울> 피트 닥터 감독
<소울>에는 중학교에서 밴드부를 지도하면서 최고의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영혼들이 있는 세계와 현실 세계를 오가는 동안 예기치 못했던 상황들 앞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주하며 삶을 만들어나간다. 갑작스러운 변화 앞에 우리는 때에 따라 마치 재즈 뮤지션처럼, 즉흥적으로 방향을 바꾸며 각자에게 맞는 길을 찾아간다. 이는 영화 속에서 "Jazzing(재즈하다)"라는 동사로 표현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부터는 아주 작게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장 감동받았던 부분은 마음속에 가지고 태어나는 '불꽃'이 '삶의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 나 역시 너무 목적을 쫓고 있던 건 아닐까? 내가 태어난 이유, 삶의 이유를 너무 고민한 나머지 정작 나의 곁을 지키고 있는 작고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던 건 아닐까. 피트 감독의 말로 되돌아가본다.
원하는 삶을 만들어나가는 비결은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내게 의미 있는 방향으로 재즈를 즉흥 연주하듯이 내가 내 인생의 연주자로서 삶을 주도적으로 펼쳐나가는 것.
주인공이 피아노를 치며 회상하는 장면에서 엉엉 눈물이 났다. 영화에서의 '불꽃'은 그냥 살아가는 삶 자체에 대한 희망, 기대감 같은 것이었다. 삶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도 좋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빌 게이츠가 될 수는 없는 거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적인 순간들을, 나의 눈빛을 반짝이게 하는 순간들을 놓치지 말아야지. 내 마음속의 '불꽃'을 인지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더 많이 아끼고 사랑하고 표현해야지. 이 노래는 다시 들어도 눈물이 난다. ㅠㅠ
며칠 전에 밑미 <나만의 플레이리스트 만들기> 리추얼을 함께 진행하고 있는 은형님의 글에 영화 <라라 랜드>의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재즈가 시끄럽다는 미아의 말에 주인공 셉의 대사.
It’s conflict and it’s comrpomise.
It’s new every time. It’s brand new every night.
충돌이 있고, 또 타협이 있죠.
매번 새롭고 매일 밤 새 것이 탄생해요.
- 영화 <라라 랜드> 대사 중
은형님은 이 대사가 곧 자신이 재즈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대사를 보고 재즈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적용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을 본 뒤에도, 영화 <소울>을 본 뒤에도 내가 브랜딩 파트너로 함께 일하고 있는 팀포지티브제로(TPZ)가 떠올랐다. 성수동에서 포지티브제로라운지 재즈바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팀의 지향점이 영화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가치관과도 맞닿아 있고 :)
나는 팀포지티브제로의 김시온 대표님이 운영했던 복합 문화공간 '플레이스 사이'의 고객이자 파트너였다. 2016년에는 플레이스사이에서 공연을 함께 만들기도 했고, 2017년에는 지금은 '카페 포제'가 된 팝업 카페에서 잠깐 일을 도왔다.
플레이스사이는 기획에 따라 공간이 다르게 연출됐다. 크리에이터들의 아지트이자 길드로 출발한 사이는 이제 없어졌지만, 다양한 공간을 통해 가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소비자에게 연결하는 리테일 콘텐츠 프로바이더 팀포지티브제로(TPZ)가 생겼다. 로스트 성수, 카페 포제, 보이어, 아러바우트, 타케리아 스탠 등이 모두 TPZ가 운영하는 공간이자 브랜드다. 사이에서 일을 할 때면 재즈나 <라라 랜드>의 OST가 흘러나왔는데, 여전히 사무실에서는 재즈가 흐른다.
팀포지티브제로는 생산성이 없다는 의미의 zero에 ‘긍정적인’ 의미의 pozitive를 붙여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말한다. 커피, 음악, 와인, 패션, 예술 등. 삶의 효율성과는 직결되지 않아도 우리의 삶과 순간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들을 조명한다. 공간을 통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디자인한다.
크리에이터들을 연결하며 함께 일하는 방식은 여전하고, 요즘은 올해 중 오픈할 새로운 공간과 다른 형태로의 '길드'를 고민하고 있다. 예전 인연이 계속되어 작년 8월부터 TPZ의 브랜딩 파트너로 지속적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내부에 모여 있는 구성원들에게서 진정성을 느끼고 영감을 받는다. 배울 점 많고 좋은 동료들이 모여있어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도 상황에 맞게 '변주'하며 의미 있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재즈타임인서울.
팬데믹 시대 이전에는 매주 공연을 열던 성수동의 숨겨진 재즈바 '포지티브제로라운지'의 공연장을 온라인으로 옮겨와 매주 금요일 저녁 9시 유튜브에서 버추얼 재즈바 'JAZZ TIME IN SEOUL'을 연다.
온라인으로 팬들의 신청곡을 받아 연주하며, 실시간으로 공연할 때 뮤지션들이 대화창의 댓글을 읽어주는 등 언택트지만 팬들과 최대한 소통하며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 크리스마스에 테스트로 시작해 지금까지 매주 진행되고 있다.
방구석 1열에서 보는 느낌! 재즈타임인서울을 열어두면 나의 공간 안이 재즈바로 바뀌는 듯한 기분이 든다 :) 그리고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연대감이 생긴다. (참고로 영상 속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치고 있는 송인섭님은 재즈 뮤지션이자 MOT 밴드 멤버이자 포지티브제로라운지 뮤직 디렉터이다. TPZ 내에는 인섭님처럼 멋지고 재밌는 구성원들이 많다.)
이번 주에 미팅 중에 시온 대표님이 이런 말을 했다. 크리에이티브는 생산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효율적'이라는 단어와는 다르다고.
공감한다. 즐거움과 크리에이티브는 꼭 효율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모두 일하려고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하려고 사는 건데. 내 시간을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일에 쏟으면 좋지 않을까. 내가 일에서도 인생에서도 나만의 재미와 멋을 기준으로 삼는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 성공은 돈을 얼마나 벌고, 얼마나 큰 명예를 얻었는지로 평가되지 않는다.
(...)
나에게 성공적인 인생이란 가장 즐겁고 행복한 버전의 나를 찾고, 그 모습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내가 가진 재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내가 머물럿던 곳이 나로 하여금 조금 더 즐겁고 아름다운 곳이 된다면, 그게 진짜 멋진 성공이라 믿는다.
- <퇴사는 여행>에 썼던 문장
한편으로는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모이고 서로를 찾게 되는 것이 신기하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강조하는 곳은 많으니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를 말하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소중히 다루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내가 바라는 삶을 만들어가는 방법은 거꾸로 생각하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을 아껴서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나가면 시간은 저절로 따라온다.
얼마 전에 롤리님이 진행하는 클럽하우스 방 "작은 브랜드 이야기"에서 스피커로 초대된 적이 있었다. 요즘에는 큰 브랜드의 대규모 캠페인보다도 오히려 작은 브랜드를 운영하는 분들의 이야기에서 더 큰 진정성과 영감을 얻는다. 그때도 나는 좋아하는 마음이 어느 순간 나의 궤적이자 능력이 되었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렇다.
과거에 찍은 여러 개의 점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강조하게 된다. 숫자, 성장, 결과에 집착해 지금 좋아하는 마음을 놓치지 말라고. 그 마음이 미래의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지 모른다고. 나는 요즘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보았던 과거의 내가 너무 고맙다고. 좋아하는 마음에 따라 행동해 본 사람과 행동하지 않는 사람. 둘 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단순히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나는 좋아하는 마음에 집중해 행동해본 덕분에, 2017년에 쉼표를 찍은 덕분에 지금 내가 원하는 삶에 더 가까워졌다. <퇴사는 여행>에도 적었지만 좋아하는 동화책 <모모>의 문장을 실감하는 순간이 늘어난다. "느리게 가는 게 더 빠른 거야."
일주일에는 168시간이 있다. 이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 쓰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이 작은 질문이 내 마음속의 불꽃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오늘 글은 작년 말부터 너무 재밌게 보고 여기저기 추천하고 다닌 책 <도쿄 R부동산 이렇게 일합니다>에 나오는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
인간의 행복은 재산이나 직책의 절대치와는 무관하다. 자신이 어제보다 진화했음을 느끼고, 미래에 대해 희망을 품고, 동료와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충만과 행복을 느낀다.
(...)
인생은 커리어보다 '여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항상 업그레이드하지 않아도 되고, 때로는 사치하고 때로는 절약하며, 호기심을 갖고 감동과 자극, 만남을 추구하면서 무언가를 발견하면 되지 않을까?
- <도쿄 R부동산 이렇게 일합니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