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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하융 Sep 14. 2023

독립적으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방법

프리랜서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꼭 체크해야 하는 것

벌써 독립한 지 3년째다. 회사를 나와 지금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2020년 회사 독립 후 월 1,000만 원을 벌기 시작했고, 2021년에 개인 사업자를 내고 여러 가지 일을 펼치기 시작했다. 2023년에는 1년짜리 프로젝트를 따게 되며 프리랜서 동료들을 팀으로 꾸려 일하고 있다. 매달 내가 페이 하는 프리랜서는 20명이 넘는다. 매달 2천만 원 이상의 금액을 동료 프리랜서들과 나누고 있다. 내가 억대 매출을 만들게 될 줄이야. 회사생활을 졸업할 때 잘 생각하지 못했다.


규모가 커지고 장기 프로젝트가 늘어나며 법인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2023년 8월에는 법인을 설립했다. 개인사업자는 개인사업자대로 유지하고, 법인을 내고 독립적으로 일하지만 함께 일하는 방법을 계속해서 내 방식대로 실험하고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내가 생각하는 법인에 관한 이야기들은 주변인들에게 해주면 무척 재밌어하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하고! 오늘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나를 지키기 위해 꼭 체크해야 하는 것'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프리랜서가 자신을 지켜야 하는 이유 - 이 글을 쓰게 된 건...

이 체크리스트를 만들게 된 배경은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로부터 출발한다. 몇 달 전, 프로젝트를 잘해보고 싶었던 진심과는 무관하게 나의 말과 행동은 이상하게 왜곡이 되고, 작업을 다 하고도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선금을 돌려내지 않으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말에 이 사람들에게는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 돈을 돌려주고 계약을 파기했다. 이 프로젝트 작업에 내가 섭외해 참여한 사람들은 나를 제외하고 9명이었고, 결국 9명의 작업자들을 전부 내 사비로 페이해 1,200만 원을 손해 봤다. 손해를 보던 날... 우습게도 돈을 잃었지만 드디어 내 에너지를 갉아먹던 사람들에게서 떨어질 수 있다는 기쁨과 해방감이 더 컸다.


돈은 잃었지만 내가 지키고 싶었던 기준과 존엄을 지켜냈고, 한편 내가 페이 한 작업자들은 모두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기에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다. 오히려 이 경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느끼게 된 건 이 과정에서 그들의 행동과 말에 내가 꽤나 상처받았다는 것. 내가 믿고 지키고자 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고 더 건강하게 강해져야겠다는 것. 나는 이미 업계에서 일한 지도 꽤 되었고, 지속적인 파트너들도 많아 1,000만 원을 손해 봐도 괜찮을 정도의 재정 상태, 능력, 네트워크가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사람들 때문에 내가 나를 증명해야 하는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나답게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 일이니까.) 만약 이런 메일을 받은 게 이제 막 일을 시작한 프리랜서였다면? 나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고 마음도 중심을 잡고 있는 상태였는데도 힘들었는데, 이제 막 도전하는 프리랜서였다면? 이 상황이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회사가 개인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말을 하는 건 협박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이 사람들은 알까..? 최근 며칠 사이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갑질하는 사람들과 소송으로 협박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아 씁쓸했다.


이 경험을 어떻게 나답게 타개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를 끌어내리기 위해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다. 누구처럼 할퀴려고 달려들고 하나하나 꼬투리 잡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가 겪은 일을 다른 프리랜서 동료들은 겪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돈을 돌려준 것은 그들이 옳아서가 아니라 내 시간과 에너지를 더 좋은 곳에 쓰며 빛의 크기를 늘리는데 더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와 동료들이 만든 소중한 콘텐츠가 이곳에 쓰이지 않아서 다행스럽다. 이 일을 겪고, 나처럼 부당한 일을 겪은, 겪고 있는 프리랜서들이 적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나를 지키기 위해 체크해야 하는 것들.



프리랜서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체크해야 하는 것


1. 사전 방지가 최고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도 - 전문가에게 물어봅시다

이 경험 직후 내가 한 것은 법인을 세우고 법무 검토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 하려고 한 일이었는데, 내가 작성한 모든 계약서를 법무 검토를 받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님에게 작업을 하고서도 금액을 전혀 받지 못한 지난 경험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매우 안타까워하시며 다음에는 꼭 알려달라고 하셨다.


법은 수학문제와도 같아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계약서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미리 잘 준비해 두는 것이 좋다. 계속해서 법무 검토를 받기에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가장 처음으로 쓰는 표준 계약서라도 의견을 받을 수 있다면 이건 그 가격 이상의 좋은 투자다. 세무사는 개인사업자 때부터 쓰고 있는데, 세금 역시 내가 잘 모르는 분야라서 전문가에게 맡기고 정말 바보 같은 질문도 세무사에게 질문할 때가 많다. 세금도, 법도 잘 모르는 분야는 전문가의 힘을 빌리기! 모르는 것은 물어보기.


2. 나와 가치관이 맞는 프로젝트인가

며칠 전 동료 크리에이터가 고민하는 걸 봤다. 돈은 많이 주는데 자신이 믿는 가치와 반하는 일이 들어왔고 그래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잘했다며 치켜세워주었다. 소신을 타협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받는 것을 반대하는 편이다. 타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타협하지 않고도 더 좋은 방향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제나 열어두었으면 좋겠다. 타협하는 순간 계속해서 타협하게 되고... 그렇게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점점 가게 되면 나중에 돌아오는 길은 더 힘들다.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돈 보다도 내 영혼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내가 나를 지키고 나로 존재하면서도 잘 되는 방법도 있다는 걸 계속해서 보여주고 싶다. 아예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도 열려 있으면 좋겠다. 개인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마음만 먹고 찾아보면 정말 천차만별로 360도로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니까. 답이 보이진 않을 때는 프레임 밖에서 더 창의적으로도 생각해보기.


3. 클라이언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3년 동안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다양한 클라이언트들을 만났다. 클라이언트마다 원하는 것도, 성향도 다르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나와 협업하고 싶은 이유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KPI가 있는지를 명확하게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게 아닌 경우 서로 생각하고 있는 기준이 달라 처음부터 엇나갈 수 있다. 어떤 클라이언트는 판매나 팔로우 수치를 이야기하고, 어떤 클라이언트는 경험이나 함께 협업하는 경험 자체에 집중한다. 예전에 함께 작업해 본 사람의 경우 스타일을 파악하고 있어 더 쉽게 일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지만, 사전 정보가 없는 경우에는 티미팅을 하며 스타일을 파악해 보는 것이 좋다. 이때 느껴지는 직감을 더 예민하게 관찰할 것! 직감은 그냥 느낌이 아니라 어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성보다도 더 정확할 때가 많다.


4. 현실 가능성이 있는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

클라이언트가 바라는 것을 파악했다면 다음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냉정하게 판단해 보는 게 필요하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일을 덥석 받아버리면 서로 힘들어질 수 있다. 돈을 버는 것보다 더 괴로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내가 자신감 있게 "저 정말 잘할 수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프로젝트인지 판단해 볼 것. 때로는 클라이언트가 현실적으로 실현이 어려운 타임라인과 요구를 할 수 있는데, 대게는 작업 환경이 어떤지 모르는 채로 자신의 니즈를 먼저 이야기해서 그럴 때가 많다. 작업 프로세스를 설명해 주고, 이런 이유로 조율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의견에 열려 있는 클라이언트라면 함께 여러 가지 일들을 맞춰 나갈 수 있다. 열린 마음으로 입장에 열려 있는 지도 체크할 것.


5. 타임라인과 해야 할 일이 명확한가?

일단 무언가 함께 하고 싶다고 만났다가 미팅만 몇 번을 하고 진행이 되지 못한 프로젝트가 있다. 이유는 제품이 안 나와서. 대표님과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여전히 잘 지내고 있지만! 제품이 없는 상태에서는 디자인, 마케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전까지 기획을 마쳐도 제품이 나온 이후에는 무조건 세부적인 내용을 다시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 바로 실무로 들어가 실행해도 괜찮은 상태인지를 파악한다. 계속해서 일정이 늘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계약 전에 타임라인이 늘어나는 경우 리소스가 추가로 투입되기 때문에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먼저 공유해야 한다. 물론 협의에 따라 어느 정도는 조율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서로 좋은 마음으로 조율하다가 끝없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주의할 것!


6. 일하는 방식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인가?

요즘 해외 클라이언트와 일하고 있다. 이들은 독일 사람들이고, 디자이너는 프랑스에 살고, 하와이, 한국 등 지구 곳곳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사람들과 일해서 편한 점은...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형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나 실시간으로 연락이 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것. 때로는 업무보다 개인적인 경험이 우선순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것. 서로 약속한 일정까지 해야 할 일만 잘 해낸다면 그 안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모두에게 전제로 깔려 있어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 편하다.


아직 프리랜서와 협업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생소하기도 하다. 그래서 함께 일한다고 해서 내가 그 회사의 직원처럼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잘 이해시키는 과정도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기 위한 일 자체이지 업무의 방식은 아니라는 걸, 이 부분은 필요에 따라 맞춰갈 수 있다는 걸 사전에 먼저 이해시킬 수 있다면,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일하는 방식을 존중해 주는 클라이언트도 많지만, 그렇지 않다고 느껴지는 경우에는 입장을 잘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분들도 생각보다 무척 많다 :) 그리고 성과로 보여주면 된다. 이렇게 해도 좋은 작업들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때로는 '도망쳐!'의 힌트를 내뿜는 사람들도 있다. (은근히 성별 나이 등으로 사람을 대한다거나 등등) 그럴 땐... 도망치기를 선택하자. 감정 노동을 아껴서 더 좋은 곳에 에너지 쓰기!


7. 예산이 적더라도 받고 싶은 이유가 있는가?

일정과 함께 체크해야 하는 건 작업을 만들어내기 위한 예산이 있는가이다.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경우 예산이 천차만별인데, 적은 금액일지라도 하고 싶은 프로젝트들이 있다. 내 개인적인 관심사와 너무 밀접하거나 내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만나게 될 사람들이 내가 애정하는 사람들인 경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내가 성장할 수 있거나 멋진 포트폴리오로 남게 되거나 내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경우. 좋아하는 브랜드인 경우. 더 큰 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경우. 예산이 적어도 일을 진행하는 편이다. 그렇게 연결된 새로운 기회 또한 많다.


8. 나에게 크리에이티브 컨트롤이 있는가?

마지막으로 최근에 더욱 하게 된 생각이다. 가장 즐겁게 최고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이란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크리에이티브 컨트롤이 각 영역의 작업자들에게 있을 때 제일 좋은 에너지와 성과가 발휘된다.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방식과는 회사를 다닐 때도 잘 맞지 않았는데, 나와서도 마찬가지다. 나를 믿고 일을 맡겨주는 클라이언트에게 나도 열과 성을 다해 요구하지 않았던 일들까지도 나서서 더 만들게 된다. 믿어준 그 마음이 고마워서.


작업하는 클라이언트들이 다양해지며, 이 컨트롤이 어디에 있는가가 많은 것을 바꾼다는 것을 느낀다. 작업의 속도도 방향성도 결과물도. 나뿐만 아니라 내 동료 작업자들도 언제 더 신이 나서 일하는지가 보인다. 영역 안에서 확실한 위임과 권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협업할 때 몇 배로 신이 나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 창의적인 영역에 있는 사람일 수록 후자의 환경에서 더 좋은 작업을 발휘한다.


그걸 알아서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협업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창작자들의 가장 좋은 에너지가 작업에 담겨 브랜드와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전문가들에게 이런 환경을 함께 만들어주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즉흥적으로 정해지지 않았던,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나올 때. 진심으로 희열을 느낀다! (최근에 진행한 화보 촬영장에서 이 마법 같은 순간을 겪었다.)



혼자서 일하지만 정말로 혼자서 하는 일은 없다. 내가 힘든 일을 겪었을 때 계속해서 떠올랐던 생각은... 무례하다고 느껴지는 말들 앞에 '저도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모두가 다 사람이에요.


건강한 협업이 무엇인지 몇 년간 여러 방식으로 겪어 잘 알고 있다. 지금은 그 환경을 내가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며 나뿐만 아니라 동료들에게도 어떤 기준과 가치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때로는 단호하게 할 말을 하고, 선을 지킨다. 그저 조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누르고 싶어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앞에서 나는 더 굽히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싫겠지만, 그리하여 더 공부하고 성장하자고 느끼게 된다. 제가 강약약강을 혐오하거든요.


동료들의 작업을 위한 울타리를 만들어주고 싶다. 때로는 당연하다고 요구되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 그 울타리가 있을 때 더 안전하게 자율성이 발휘된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함께 동의한 기획과 방향을 바탕으로 각자의 영역 안에서 자유롭게 일하되 그 결과물이 서로 연결되어 몇 배로 강력한 시너지를 낼 때. 시원함, 통쾌함, 전율을 느낀다.


감사하게도 최근 함께 작업하고 있는 프로젝트들을 통해 연속적으로 느끼고 있는 기분이다. 결과도 좋고 작업 과정도 즐겁다. 그래서 더욱더 보여주고 싶다. 때론 무례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믿는 가치를 지키며 더 잘되는 방식으로, '이렇게 일하는 것도 가능해요'라는 걸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내가 잘 되는 게 최고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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