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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Aug 24. 2021

시간 여행자

나는 향을 피우거나 즐겨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오감 중

특히 후각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때 그녀에게서 나던

풋풋하고 우아한 모링가 향에

내 가슴은 눈치 없이 반응한다.


숙소에서 향을 자주 피운다.

라이터로 향에 불을 붙인 다음

후~ 하고 불어서

향을 타고 들어가는 잔불만 남기면

연기가 S자로 피어오른다.

향이 방을 가득 메우는 만큼

여기 이 공간은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어떤 향은

개운한 숲으로 데려다주고,

어떤 향은

청량한 바다로 데려다주고,

어떤 향은

그때 그 시절의 발리로 나를 데려다준다.


예전에 tvN에서 방영한 <나인>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신비한 힘을 가진 향을 피우면

잠시 동안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설정의 드라마다.


전에는 향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향을 피우고 가만히 있어보니

향은 그 향을 맡는 사람의 상상력만큼

판타지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이곳, 이 시간에

언젠가 다시 오기 위해

향과 홀더를 사서 캐리어에 챙겨 본다.

향과 홀더, 선물 받은 라이터까지 챙겨서 시간 여행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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