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향을 피우거나 즐겨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오감 중
특히 후각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때 그녀에게서 나던
풋풋하고 우아한 모링가 향에
내 가슴은 눈치 없이 반응한다.
숙소에서 향을 자주 피운다.
라이터로 향에 불을 붙인 다음
후~ 하고 불어서
향을 타고 들어가는 잔불만 남기면
연기가 S자로 피어오른다.
향이 방을 가득 메우는 만큼
여기 이 공간은 아스라이 멀어져 간다.
어떤 향은
개운한 숲으로 데려다주고,
어떤 향은
청량한 바다로 데려다주고,
어떤 향은
그때 그 시절의 발리로 나를 데려다준다.
예전에 tvN에서 방영한 <나인>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신비한 힘을 가진 향을 피우면
잠시 동안 2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는 설정의 드라마다.
전에는 향이라는 판타지적 설정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향을 피우고 가만히 있어보니
향은 그 향을 맡는 사람의 상상력만큼
판타지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소중한 이곳, 이 시간에
언젠가 다시 오기 위해
향과 홀더를 사서 캐리어에 챙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