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단단 Oct 28. 2021

'적당히 해'라는 말이 기분 나쁜 진짜 이유

'적당'을 생각하다.

쌤, 답지 봐도 돼요?


수학 공부를 할 때 답지를 보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얘기만 철석같이 믿고 중고등학생 때 답지 안 보고 공부하느라 야자시간 3시간 동안 달랑 문제 한 개만 풀었던 적도 있다. 어떻게 답지를 보며 공부해야 할 지 몰라 선생님에게 답지를 봐도 되냐고 물어봤다. 선생님이 이렇게 답해줬다.


"답지는 적당히 봐야지!"


선생님은 분명 정확한 답변을 했고, 맞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답답했다. 나는 답지를 봐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적당히가 무슨 말이란 말인가.


'적당'이라는 말은 마술과도 같은 말이다. 어디에나 쓰일 수 있는 말이고, 언제나 답이 되는 말이다. 세상 모든 문제는 양 극단에 답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세상 모든 정답은 적당이라는 범주 안에 있게 된다. 그래서 '적당'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좋다'라는 의미의 지위를 얻는다. '적당했어, 적절했어!'라는 말은 굉장한 칭찬의 표현이 된다. '날이 적당하다', '적절한 예시를 들었다', '옷 사이즈가 딱 알맞다' 이 모든 '적당'의 사촌들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을 바꿔도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날이 좋다', '좋은 예시를 들었다', '옷 사이즈가 딱 좋다'


하지만 나는 적당이라는 말에 어떤 불만족감을 느낀다. 이 말은 앞서 말했듯 사회적으로 '좋은 말'의 지위를 부여받은 단어이기 때문에 뭐라고 반박하기도 애매하다.


야, 적당히 해


하지만  말은 분명히 기분이 나쁘다.  말을 들으면 내가 무언가 오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순간,  안에   있던 모든 자신감을 당혹감으로 바꿔버린다. 게다가  말이 기분 나쁜  다른 진짜 이유는 도대체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는지  순간 전혀 모르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잃은 영혼이 되어 당혹감은  배가 되고,  순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적당'이라는 말은 '그 정도'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끼리 쓰는 업계 용어, 전문 용어와 같다. 적당이라는 말이 쓰이는 주제에 대해 모두가 컨센서스를 갖고 있을 때 이 말은 효과가 있다. 적당이라는 말은 어린아이, 뉴비,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이다. 어쩌면 상황에 따라 폭력적인 말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 때 수학 과외를 하게 되면서 똑같이 나에게 묻는 학생들에게 '답지는 적당히 봐야 한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수학 문제의 답지를 보는 최상의 방법


기본적으로 답지는 당연히 보지 않는 게 좋다. 답지를 보지 않고 직접 이런저런 풀이법을 생각해보고 고민하는 과정이 전부 학습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풀리는 한 문제를 가지고 너무 오랫동안 고민에 빠져있다면 분명히 잘못하고 있는 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수학 공부를 하다가 어려운 문제가 나타나서 시간이 좀 걸리겠다 싶으면 고민 시간을 딱 정하는 거다. 5분, 혹은 10분. 이 두 개의 옵션 중에 문제 난이도에 맞게 시간을 정한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치열하게 생각해본다. 안 풀리면 답지를 흘끗 본다. 여기가 중요하다. 꼼꼼히 보는 게 아니라 흘끔 보고 풀이법의 힌트를 얻는다. 여전히 느낌이 안 오면 푸는 방법이 캐치될 때까지만 몇 줄 읽어 내려가 본다. 느낌이 오는 순간에 답지를 덮고 다시 문제를 풀어본다. 그렇게 문제를 다시 풀다가 또 막힌다면 답지를 이어서 더 읽어본다. 다시 느낌이 오는 순간에 답지를 덮는다. 이렇게 반복하며 문제 하나를 푸는 것이다.


이 앞의 한 문단이 내가 생각하는 '적당'의 의미다. 이렇게 보면 수학 문제 하나에 30분이 걸릴 수도 있지만, 같은 공부 시간 대비 최고 효율의 수학 능력을 얻을 수 있다.




나는 회사에서도 후배에게 무언가 지시를 할 때 '적당'이라는 말을 쓰게 되면 그 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말해준다. 나는 적당이라는 말을 쓸 때는 그 말에 대한 컨센서스가 있는 상대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당이라는 단어의 경계는 이 지점에 있다.


이 경계를 아는 사람에겐 적당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폭력적인 단어가 아니라 소통의 실마리와 같은 단어가 될 수 있다. 같은 컨센서스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최고로 효율적인 의사소통의 단어가 될 것이고, 컨센서스가 다른 사람 간에는 서로가 생각하지 못했던 큰 전제의 차이를 좁혀 주는 시작점의 단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을 위해 기대를 낮추라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