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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단단 Aug 29. 2022

강한 울림을 주는 무해한 기록쟁이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와 영화<자산어보>

때는 1801년, 강진으로 유배 간 동생 정약용이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을 저술하고 있을 때 같은 시기, 흑산도에 유배 간 정약전은 생뚱맞게 물고기 도감을 쓰기 시작한다. 명문 사대부요, 지식인인 정약전이 그것도 물고기의 ‘물’ 자도 알지 못하는 정약전이 물고기를 하나하나 관찰해가며 기록한다. 아니, 정약용처럼 큰 뜻을 품은 책을 써야지... 물고기 도감은 너무... 작은 이야기 아닌가. 옆에서 이를 돕는 상놈 창대마저 이렇게 말한다.

‘고런 책은 만들어서 뭣 할라고라~’


영화 <자산어보>의 이야기다. 자산어보가 뭔가 하니, 흑산도의 물고기 도감 책이란다. 흑백 영화는 왠지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는데 심지어 물고기 책 쓰는 이야기라니.. 넷플릭스에서 스크롤 마저 내리려다 딱히 볼 다른 영화도 없고 해서 보게 되었다. 상놈 창대처럼 '이런 사소한 이야기가 뭐 재밌다고 영화로 만든댜~'하며 본 것 치고는 거북목이 되도록 빠져서 봤다.


명문 사대부께서 천한 물고기 책은 써서 뭣 할라고라~


최근에 이런 정약전 같은 사람을 책을 통해 또 만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다. 이 분은 아예 대놓고 이렇게 책 제목을 지었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실제로 그는 TV 다큐멘터리 출신의 영화감독답게 대부분 잔잔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든다. 뭇 상업 영화와 다른 그만의 색깔이 있다. 감정을 일부러 폭발시키지 않고, 강력한 메시지를 표면에 드러내지 않는다. 근데 그 잔잔함 속에 빠져들게 된다. 누가 악역이지? 누가 옳은 거지? 왜 저런 선택을 한 거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신념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다. 그는 책에서 일본 사회의 언론 탄압과 싸구려 저널리즘을 높은 강도로 동시에 비판한다.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일본 정부나 신사 참배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성폭력자가 ‘그냥 애정 표현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본인은 마초 같은 남성성이라는 것을 토 나오게 싫어한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그는 아주 선명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강하게 주장하지 않는 방식을 선택한다.


나는 사람들이 ‘국가’나 ‘국익’이라는 ‘큰 이야기’로 회수되어가는 상황 속에서 영화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큰 이야기’에 맞서 그 이야기를 상대화할 다양한 ‘작은 이야기’를 계속 내놓는 것이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습니다> p25 


그는 강하게 휘몰아쳐 내려가는 강이 아니라, 물을 의식할 수 있는 웅덩이를 만들고자 한다. 잠시 멈춰서 의식을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 볼 수 있는, 진정한 앎이 생겨나는 웅덩이 말이다.


그래서 그는 주장하기를 선택하지 않고 기록하기를 선택하는 것처럼 보인다. TV 다큐멘터리 감독에서 영화감독이 되었음에도 말이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이야기, 가정이 깨진 어린이들의 이야기, 자식을 방치해 죽게 만든 엄마의 이야기, 아기 인신매매를 하는 미혼모와 브로커의 이야기를 영화로 기록한다. 그렇게 그는 영화로 사람들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나는 고레에다가 제시한 주장이 아니라 웅덩이 속에 가만히 들어간다. 그 웅덩이에서 유영하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과 입장들에 나 자신을 가만히 이입해보게 된다.


작은 이야기를 계속하겠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자산어보>에서 본 정약전은 그 누구보다 평등한 세상에 대한 꿈이 큰 사람이었다. 임금과 백성, 양반과 노비가 왜 달라야만 하는가! 그는 그 행동을 흑산도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들의 생업인 어류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지금의 해양 생물 학자들이 봐도 놀랄만한 방대하고도 구체적으로 쓰인 이 책을 조선의 임금과 양반들이 봤더라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목민심서 같은 신랄하고도 적확한 큰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 끝의 어느 섬에서 사는 백성들의 물고기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분은 어떠했을까. 아마, 백성과 노비의 삶이 담긴 방대한 저서 자체가 공자왈 맹자왈보다 더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타자에 대한 상상이 부족한 그 영화 속 아전들은 갸우뚱조차 하지 않았을 테지만..ㅠ)


주장이 아니라 기록 자체로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시도하는 이들을 만난, 무해하고도 시원한 가을밤이다.


의식이 확장되어가는 흑산도의 상놈, 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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