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는 참된 나의 준말로 진짜 나, 나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인간이 내가 누구인지,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참나를 찾으려 한다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나는 참나를 '나이고 싶은 나' '되고 싶은 나'로 정의한다.
아침에 일어나 공책에 오늘 할 일을 쓰고 운동을 하고 알맞은 양의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몸에 해롭고 돈만 낭비되는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스마트폰 게임과 유튜브에 시간을 쓰지 않고 하루를 살아 내는 일은 '되고 싶은 나'에 해당한다. 이렇게 살고 있다면 그 순간은 참나이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술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도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려면 지갑을 들고 마트로 가서 매대에서 술을 집어 들어야 한다. 행위를 하는 모든 과정의 나도 '나'이다.누군가 뇌를 조종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첫 잔을 넘기는 순간까지 좋다. 몇 시간 후 술이 깨고 나면 깊은 후회로 빠져 든다. 후회가 생기는 일인 줄 알면서도 매대에서 술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은 참나가 아닌 '가짜나'이다. 담배가 해로운 줄 알지만 편의점으로 가는 나는 가짜나이다. 매일 영어 공부를 하기로 다짐하고 일주일이 지난 후부터 자연스럽게 하지 않고 있는 나도 가짜나이다.
숨이 차오르는 달리기는 힘들다. 신발을 신고 나가는 일부터 어렵다. 그 선을 넘고 도파민이 뿜어져 나오도록
뛰고 있는 순간 참나가 된다. 참나로 살기는 어렵고 가짜나로 살기는 쉽다. 참나로 살고 나면 만족감이 오지만
가짜나로 살고 나면 후회가 온다. 그래도 가짜나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참나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을 수행이라고 한다.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한다. 야식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 내가 냉장고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이유를 찾고자 의지가 약한 나를 나무라서는 안된다. '관성'에서 답을 찾음이 옳다. 마약 밀수범을 잡던 경찰이 마약 중독자가 된 이유를 나약함에서 찾아서는 곤란하다.
가짜나로 이끄는 관성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저녁을 먹지 않고 허기를 참다 잠자리에 눕는 순간의 나를 원하지만, 자꾸만 냉장고 앞을 서성이는 나를 어떻게 제어할지가 참나로 살아내는 열쇠다. 먼저 내가 원하는 참나, 되고 싶은 나, 나이고 싶은 나를 정의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충만한 삶이 있을 수 없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수단도 결정하지 못한다. 내가 뿌듯한 순간을 종이에 써 본다. 그 행위를 하는 내가 바로 참나다. 참나를 정의했다면 가짜나가 되지 않기 위해 한 순간도 의식을 놓지 말아야 한다. 쉴 때도 내가 지금 쉬고 있음을 알고 왜 쉬는지 얼마나 쉴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까지 피곤하게 살아야 하나 싶지만, 의식 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는 일은 미래에 반드시 후회를 가져 오기 때문에 피곤하게 사는 순간이 바로 참나임을 알아야 한다.
참나를 정의하고 참나의 행위를 공책에 쓴다. 되고 싶지 않은 가짜나의 행위도 적어 둔다. 공책은 눈에 보이는 곳에 둔다. 하루 스물 네 시간이 어떻게 쓰이는지 안다. 일도 운동도 휴식도 의도된 상태로 행한다. 잠들기 전
공책을 보며 참나로 산 나를 칭찬하고 만족한다. 만족감이 관성이 되도록 반복한다. 어느 순간 가짜나로 이끌던 악마는 귓전에서 사라지고 참나로 살기 위해 내일이 기다려진다. 참나의 관성에 이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