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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Nov 19. 2024

한국, 한글,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원서로 읽다니!


2024년 노벨문학상이 발표되었다. 우리나라다! 한국의 한강 작가라니!     


책의 세상에서 노벨문학상보다 더 큰 마케팅홍보는 없을 것이다. 그해 수상 작가가 발표되면 서점들은 잘 보이는 맨 앞쪽 서가에 자리를 마련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해당 작가의 모든 작품을 끌어모으느라 바쁘다. 그리고 우선 나부터 한 작품이라도 더 읽어야 해서 더 바쁘다. 직접 읽고 뭘 알고 느낀 게 있어야 한 마디라도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문학으로 노벨상을 받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해서 이번엔 특히 더더욱 그럴 것이다. 출판사조차 재고를 미리 확보하지 못했다는 뉴스도 보인다. 책을 찾다 보면 알려지지 않은 지난 작품들이 훨씬 더 많다는 의외의 사실도 알게 된다. 역시 ‘어느 날 갑자기’는 없다. 오랜 시간 묵묵히 쌓여온 결과가 이제 드러나는 것뿐이다.     


우리가 문학으로는 노벨상 수상이 더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모두가 짐작했던 이유는 언어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 우리글을, 그 맛과 멋을 고스란히 담을만한, 한글보다 더 큰 언어는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드디어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원서 그대로 오롯이 읽을 수 있다니! 이 얼마 만에 느껴보는 자랑스러움인가! 뭐니 뭐니 해도 문학은 자고로 원서로 읽어야 제맛이다. 영어권이 아닌 제3의 언어로 쓰인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인기를 얻은 작품을 꼽으라고 한다면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작품의 두 가지 번역본을 읽으면서 번역에 따라 뉘앙스가 많이 달라진다는 걸 직접 느끼기도 했다. 게다가 이미 그리스어를 영어로 번역한 작품을 한국어로 다시 중역한 경우도 많았다. 역사와 문화를 알지 못하면 오역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수상이 의미가 더 큰 것일지도 모르겠다. 좋은 번역이 없었다면 우리나라 작품이 제대로 읽히기나 했겠는가. 번역가가 함께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 고마운 일이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오래도록 청소년 베스트 평대 서가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뉘어 있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여러 화자의 시점으로 꽤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그러나 절제되고 정제된 어조로 담담히 담은 소설이다. 5·18을 직접 겪은 실존 인물들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활자임에도 불구하고 지면을 뚫고 그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한강의 작품은 읽기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독자들도 있다. 그마저도 공감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쓰는 사람은 한 줄 한 줄 얼마나 뼈가 저렸을까. 직접 겪은 사람은 감히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소설도 사실에서 비롯되는 법이니까. 어쩌면 소설의 역할, 문학의 역할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직접 겪지는 않았지만, 읽기를 통해서 우리가 그 슬픔과 고통을 함께 경험한 듯이 그 인물의 입장이 되어 느끼고 공감하고, 기억하고 기리는 행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가장 먼저 ‘써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마음이 가장 크게 들었다.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꼭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까닭은 그것이 아마도 작가의 소명이라고 여겼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온 우주의 알고리즘이 연이어 이 소식만을 보여준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 텍스트 힙이라며 종이책과 이어지는 새로운 유행도 보인다. 그런 와중에도 불구하고 지나치지 말아야 할 안타까운 소식도 몇 있다. 대전에 29년 된 향토서점인 계룡문고가 경영난으로 폐업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꽤 인기 있는 동네책방도 영업을 종료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까지 전해 들었다. 소리소문 없이 지역의 작은 도서관들도 없애고 있다며 반대서명운동도 전해져 온다.       


시들다 못해 말라가는 출판계의 어려움 속에 터져 나온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분명 오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다. 인쇄소들은 한강 작가의 책을 찍어내느라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고, 대형서점들은 입고되는 족족 연이어 품절 대란에 오픈런 돌풍까지 일으키고 있다니 심폐소생술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반면에 내가 다니고 있는 글벗의 동네책방은 먼 변방의 일인 듯 의외로 조용하다고 한다. 책방지기가 말했다. 이슈의 한 중심에 있는데도 왜 변두리에 있는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고. 나도 그렇고 함께 독서모임을 하는 책벗들도 한강 작가님의 작품 ‘아무거나 3종 세트’를 주문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책이 입고되지 않아서 팔 수가 없는 실정이다. 물론 우리는 급할 것 없으니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새 옷이 입혀져 나올 개정판이 더 궁금하다고도 말했다. 책이 생선이나 과일 채소처럼 신선도가 떨어지는 생물도 아니고 지금 당장 아니더라도 어디 가지 않는데. 상 받기 전부터 이미 오래도록 베스트셀러였는데. 지금 당장 읽어야 할 다른 책도 눈앞에 한가득하기도 하고. 부디 이 돌풍이 들끓는 냄비처럼 금세 식어버리지 않기를. 이 단비가, 한강의 물줄기가 큰 호수 말고 작은 웅덩이와 옹달샘까지도 두루두루 널리 골고루 적시고 채워 주기를. 큰 상을 받아서 유명한 책뿐만 아니라 아직 드러나지 않은 좋은 작품들도 함께 천천히 오래 읽히기를 담담히 바래본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는 우리 꼭 함께 읽자고, 벌써 내년에 읽을 책 목록을 수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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