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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r 09. 2021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믿음



A는 평소에 말수가 적고 표정을 알기 힘든 편이었다.


묻는 말에는 아주 천천히, 게다가 짧게 답을 했고, 무슨 말을 하면 주로 “네.” 또는 “아뇨.”하는 한마디로 끝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글쓰기 과제 같은 것을 하면 꽤나 길게 문장을 쓸 때도 있어서 이렇게 과묵한 아이가 속으로는 이런 생각들도 하고 있었구나, 하고 놀라기도 했다.


A는 잠이 많은 학생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하고, 원격 수업을 듣다가 잠이 드는 일도 있어서 우리 반 학생들 중에서도 꽤 자주 통화를 했다. 통화를 하면 방금 잠에서 깬 듯이 힘없고, 낮고,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천천히 “여어보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A의 지각 문제는 좋아졌다가도 다시 반복되었다. 지각한 날에 앞으로 아침에 조금만 일찍 일어나자, 잠들지 말자, 시간 잘 맞춰서 수업 듣자, 당부해도 다음 날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일이 종종 있어서, 몇 번은 아예 학교로 불러서 수업을 듣게 하기도 했다.


예전의 나라면 학생이 완벽히 바뀌지 않는 모습을 보며 내가 지도를 못하는 건가 자괴감에 빠졌을 텐데, 그나마,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결국 변화의 열쇠는 학생이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그보다는 조금씩 나아지는 부분에 집중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몇 번이고 전화를 해도 잘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몇 번 이야기하고 나니까 한 번에 전화를 받는다는 것, 적어도 내가 지도할 때 앞에서 내 말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지각의 주기가 점점 길어질 때가 있다는 것, 말이라도 앞으로 지각하지 않겠다고, 자신이 더 노력하겠다고 한다는 것.


어쨌거나 지각을 할 때,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A 자신이고 본인은 또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 내가 쉽게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지각할 때마다 정해진 페널티를 수행해야 하고, 내게 매번 한 소리 들으니, 마음 한 편에서는 나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짜로 뭘 느끼고 있는 걸까. 워낙 앞에서의 감정 표현이 적은 아이라서 마음을 쉽게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마지막에 우리 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란 항목에서 어떤 문장이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읽는 순간 머리 위로 몇 개의 물음표와 느낌표가 떠올랐다.


“우리 반에서 제일 지각을 많이 해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부족한 점을 고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지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과묵하던 A가 쓴 문장이었다.




흔히 학생들을 빙산에 비유하거나, 덤불 속에 숨은 존재로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보이는 면은 아-주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에 다 해당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더욱 한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관찰하게 되는 학생들의 경우, 내가 모르는 모습들이 정말 더 많을 것이다.


정말이지, 사실 A가 그런 말을 내게 할 줄 몰랐다. 아니, 짧게 ‘감사했습니다.’라고만 써도 그게 어딘가 했을 것인데, 무려 정성스러운 세 문장이라니. 내가 너무 쉽게 감동하는 선생님인 걸까. 속으로 나를 지긋지긋하게 여기지 않을까 짐작했던 적이 있다는 것이 살짝 부끄럽고 미안해지기도 했다.




학생들의 마음을 함부로 짐작하면 안 되겠구나.


무언가를 알 수 없는 상태일 때, 가끔은 자신의 믿음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곤 한다. 분명 이럴 거야, 아니 저럴 거야, 그렇게 믿는 것이 나의 현실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만약 학생들을 악한 존재라고 믿어버린다면, 매일 학생들을 마주치며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 학교, 나의 일터는 정말 지옥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선한 존재라고 믿을 거란 말은 아니다. 학생은 천사도 악마도 아닌 인간이니까.


그래, 무엇을 믿을 것인지 잘 선택하자. 믿음은 현실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A야, 고맙다. 잘 지내라.

선생님도 잘 지낼게.




마지막까지 쿨했던 A...올해 아마 잘하고 있을테니, 스스로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포기만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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