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 수업을 하게 되면서, 2020년만큼 학생들과 전화 통화를 많이 한 해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알람봇인지 선생님인지 정체성이 헷갈리는 순간을 느끼면서, 조회에 늦거나 수업 수강이 늦는 학생들에게 꼬박꼬박 전화를 걸고, 혹여나 받지 않으면 결석처리가 될까 봐 학부모님들께도 전화를 거는 일이 꽤 자주 있었다.
같은 번호로 전화를 자주 걸게 되면, 컬러링 음악이 저절로 외워지기도 했다. 음, 익숙한 노래. 그러나 연결되는 동안 그 음악을 마음 편히 즐기기는 어려웠다. 전화를 거는 내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고, 한편으로는 무언가 죄송스럽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화를 받은 부모님들은 항상 본인들이 죄송하다고 말씀하셨지만.(좋은 분들이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죄송해하면서 통화를 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 OO이 담임입니다. 통화 가능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네 괜찮습니다.”
“죄송한데 지금 OO이가 조회에 들어오지 않고 전화를 여러 번 해도 안 받아서요...”
“아 그런가요, 제가 빨리 연락해보겠습니다.”
“네, OO이가 조회 들어오고 1교시부터 수강할 수 있도록 지도 부탁드립니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익숙한 대화 패턴...)
그렇게 자주 통화를 하면서 새삼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 학교에 등록된 보호자 번호는 죄다 학생의 어머니 번호라는 것이었다.
특히 맞벌이 가정인 경우에도, 비상연락망으로 전화를 걸면 주로 직장을 다니시는 어머님이 받으셔서, 약간 다급한 목소리로 어쩌죠, 저도 지금 집이 아니라서요, 연락 계속해보겠습니다, 와 같은 답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에 전화를 받지 못하셔서 결국 문자를 남길 때도 있었는데, 일을 하시면서도 매번 학교 연락을 받고 아이의 수업을 챙기기 위해 집이나 다른 자녀들에게 또 연락을 해야 하는 마음은 어떨까 싶어서, 어머님만의 책임이 아닌데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는 그 마음이 어떨까 싶어서, 어쩔 수 없이 연락을 드리게 될 때마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어머님이 전화를 받지 않으시면 종종 입학 시 작성하는 종이를 뒤져서 아버님 번호를 찾아 전화를 드려보는 것으로 아무도 모르게 어머님들의 고충(?)을 알리는 소심한 반항 아닌 반항을 하기도 해 보았으나, 바쁠 때는 그럴 정신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올해 받게 될 비상연락망에도 아마 대부분 어머님들의 번호가 대표로 적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왜 학부모 번호는
대부분이 어머니 번호일까?
작년에는 한 분만이 아버님 번호였다. 재작년에도 한 분 빼고 모두 어머님 번호였던 것이 기억이 났다.
한두 분이라도 아버님 번호가 있다는 것에 박수를 쳐야 할까? 주로 아버지가 직장에서 일을 하시기 때문에, 어머니들이 비상시 학교 연락을 더 잘 받을 수 있어서(?) 그렇게 제출하신 것일까? 그렇다면, 왜 대부분 어머니들이 집에 있게 되는 것일까? 게다가, 맞벌이인 경우에도 대부분이 어머니 번호로 되어 있는 것은, 왜일까?
학부모는 곧 어머니인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자녀의 교육에는 양육자 공동의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30명 가까운 학생들(요즘 치고는 학생 수가 꽤 되는 학교이다.)의 보호자 번호가 99% 어머니 번호로 되어 있다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나만 이상하게 느끼는 건가? 우연일까? 문제가 아닌데 문제로 삼는 것일까? 나중에 아이를 낳게 될지 아닐지 모르겠으나, 그렇다면 정작 나는 학교에 자녀 보호자 번호를, 배우자의 번호로 적어낼 수 있을까? 주저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안 될 것은 또 뭔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뭐 어떻게 생각해 봐도, 나는 보호자 번호가 99% 어머님 번호로 되어 있는 게 ‘당연하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혹시나 지금도 자녀의 교육에 혼자 책임감을 더 많이 느끼고 있는 어머님들이 있다면, 학교 연락을 혼자서만 다 받고 계신 어머님들이 있다면,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고 말씀드리는 교사가 될 것이다. 당연하지 않았으면 하기에, 질문들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