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글 모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혜원 Jul 03. 2023

우는 아이

은하수가 흐르는 밤

    

크지 않은 평상에 사람들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다.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저녁을 먹고 난 후 장터 사람들은 장터에 놓인 평상으로 모여든다. 장터 지붕을 자신의 집 지붕 삼아 만든 자그마한 하꼬방(판잣집)에서 세 아이를 낳고 기르는 아저씨. 낮에 주점에 손님이 없을 때는 평상에 앉아 매니큐어를 바르곤 하던 양양 언니, 주점을 하면서 돼지를 잡기도 하던 아저씨, 초등학교에 부임해 오시면서 가족 모두를 데리고 친구 집에 세를 얻으신 박 선생님, 아들만 셋인 스포츠머리를 한 아저씨, 평상 위에 모여서 얘기를 나누던 사람들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인데 서로 잘 어울려 얘기를 주고받곤 했다. 어른들이 얘기를 나눌 때면 평상 주위에서 성능 좋은 안테나를 세우고 한쪽 귀는 어른들을 향해 한쪽 귀는 함께 노는 아이들을 향해 열어 놓았다. 

   

섬은 삼치잡이가 성한 늦여름에서 가을까지는 외부에서 들어온 배들이 많았다. 삼치는 그물과 낚시를 이용해 잡았다. 그물로 삼치를 잡는 나가시배와 낚시로 잡는 쪽지바리가 그것이다. 입항하는 배와 함께 선원들이 많아지면 색시들도 육지에서 들어왔다.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에는 해녀가 300명, 색시도 200여 명이 되었다고 하니 삼치잡이가 얼마나 성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잡힌 삼치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을 하고 섬사람들은 고등어, 준치, 방어 등을 주로 먹었다. 해녀들이 잡은 전복, 보라성게, 해삼 등도 수출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섬에서 돈을 많이 만지는 사람들은 삼치잡이 배의 선주들과 해녀를 고용해서 일하는 선주들이었다. 일본으로 수출을 돕는 중매인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섬에서 돈이 있는 사람들은 늘 위세가 당당했고 그들끼리 어울렸다. 늘 거친 말과 과장된 행동들이 어린 나에게도 그것이 느껴졌다. 그들은 주로 부둣가 가까이에 살았다. 

 

 장터는 평범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아빠는 건재상을 하셨기 때문에 도시를 빈번히 다니셔서 밖의 정보에 밝았다. 농협에 근무하신 아저씨는 섬의 농촌 상태를, 특별한 직업이 없는 하꼬방 아저씨는 섬의 거의 모든 정보를 풀었다. 주점의 아저씨는 어부들의 고기잡이 상황을 잘 알고 계셨다. 박 선생님은 섬의 사정들을 들으며 젊잖게 낮은 톤으로 말씀을 나누셨다. 늘 어린 학생들을 대하신 분이어서 목소리도 다감하셨다. 평상에 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좋았고 힘들었던 상황들을 나누며 같이 기뻐하고 서로를 위로했다. 반딧불이가 날아들면 반딧불이 이야기를 하고 은하수가 반짝이는 하늘을 보며 아름다움을 나누는 시적이고 평온한 나날이었다. 

 

저녁 시간에 공부하지 않고 조금 늦게까지 놀 수 있었던 그 시간, 반딧불이를 쫓아다니던 그 밤의 시간이 김양과 장터에 사는 한 아저씨의 관계로 인해 드문드문해졌다. 아저씨 한 분이 가정을 두고 김양과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박 선생님이 육지로 전근을 가시고 장터에 새 주점이 생기면서. 저녁 시간 평온하게 웃으며 하루 있었던 일을 나누던 시간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아내와 아저씨의 싸움이 잦아졌다. 아저씨의 아내는 평소에 말씀이 많지 않으시던 점잖은 분이었다. 어느 날부터 아줌마는 웃음이 없어지고 아저씨의 건장한 몸은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엄마의 울음에 까까머리 아이가 눈물을 훔치며 우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의 형이 아버지한테 대드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날 그 아이의 형이 아버지를 이기기를 바랐다. 훌쩍이는 그 아이가 너무 가엽고 안쓰러웠다. 여름밤 평화로웠던 시간은 사라지고 평상에 사람들은 모이지 않았다. 

 

얼굴이 잘 생겼던 큰 댁 오빠의 친구가 색시와 결혼해서 정육점을 시작할 때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과는 달랐다. 오빠 친구는 한쪽 손이 불편해서 늘 한 손은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다. 결혼하고 정육점을 하면서부터 그 손에 목장갑을 끼고 일을 했으며 아이도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 나는 그 오빠를 보면서 함께 결혼한 색시가 고맙게도 느껴졌다. 손이 불편해 마음도 불편했을 한 사람을 손을 밖으로 보이며 살 수 있게 해 준 용기를 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양은 한 가정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장터의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밤을 깨뜨렸다. 색시 언니들을 보는 내 마음이 전과 달라지고 있었다. 매니큐어를 발라주겠다고. 입술 옆에 애교점을 찍어주겠다고. 부르는 양양 언니의 부름에 반응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친절이 불편했고 그 친절에 응하는 것이 누군가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의도를 생각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김양은 딸을 낳았고 아저씨는 육지로 이사를 했다. 다들 한 번씩은 고향을 다녀가곤 하는데 내가 사는 동안에 그 아저씨 가족이 고향에 다녀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나는 가끔 그 아줌마와 옆에서 울던 아이가 궁금했다. 언젠가 엄마께 여쭸더니 김양은 딸만 두고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자녀는 엄마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고스란히 느낀다는데. 성장하면서 생겼을 그 아이의 상처를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겨울에는 검정 가죽 잠바를 입었던 아이. 그 아이의 우는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은하수가 흐르던 그 밤 아래 너와 나의 삶이 다르지 않다며 서로를 위무하고 다독이던 그 어른들의 시간이 그립다.




이미지 출처: © paigewtothew, 출처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잠 못 드는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