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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Aug 04. 2023

다시 연결된 우리

핏줄의 힘

밤이면 멀리 보이는 섬에서 별빛들이 반짝거렸다. 반딧불이를 한데 모아둔 것 같았다. 고모가 사신다는 작은 섬의 불빛이었다. 캄캄한 밤하늘 아래서 춤추는 듯한 빛이 예뻤다. 엄마는 내가 있는 섬도 밖에서 보면 불빛이 별빛처럼 아름답다고 하셨다. 나는 낮에도 밤에도 아름다운 청산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섬은 여객선이 드나드는 항구와 작은 포구 근처에 마을을 이루었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농사만 짓는 마을도 있었다. 내가 살았던 마을은 교회, 학교, 관공서와 상업지구가 집중된 섬의 중심지였다. 우리 집은 농협, 경찰서, 민방위대가 있는 장터에 있었다. 집 앞이 넓은 장터였고 바로 뒤는 바다였다.      


장날에 장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장터 한가운데 있는 우리 집은 먼 곳에서 무엇을 팔거나 사러 오는 친척들이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이었다. 엄마는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미숫가루와 설탕물을. 겨울에는 따뜻한 고구마와 동치미 등을 대접하셨다. 가을에는 정부에서 벼와 소주와 술의 재료로 사용되는 고구마를 수매했다. 멀리에 계신 외가의 친척들은 농작물을 이고 지고 장터로 오셨다. 친척들은 표식이 있는 곳에 가져온 작물을 줄지어 세워놓고 등급을 매기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 담소를 나누셨다. 집안 어른들은 안녕하신지. 올해 농사가 어떠했는지.      


고구마는 말려진 상태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고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다시 가지고 돌아가야 했다. 나에게는 이모, 이모부, 숙모, 오촌 당숙, 할머니 되는 분들이셨고 처음 뵙는 분도 계셨다. 엄마는 무거운 작물을 가지고 오시느라 수고하신 친정 친척들께 점심을 해드렸다. 농촌에서는 구하기 힘든 생선을 점심에 대접하기 위해 미리 사서 말리며 준비하셨다. 결혼 전에는 같은 마을에 사는 언니, 오빠들이었기에 얼마나 반가운 손님이셨겠는가. 친척들은 엄마가 장터에 살고 있으니 잠깐이라도 쉴 수 있어 고마워하셨고 또 자랑스러워하셨다. 장터에 살지 않았다면 미소가 멋진 오토바이 외삼촌도, 이가 다 빠진 할머니도, 이종사촌과 마음 좋으신 이모부의 얼굴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와 외갓집 얘기를 나눌 때 말이 통하는 것도 그때 친척 어르신들을 만난 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다들 육지에 있는 상급학교에 진학했다. 육지에서 학교를 다니던 이종사촌들은 방학이나 명절에 고향에 오면 우리 집을 꼭 들러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갔다. 이렇게라도 사촌들을 만날 수 있던 것은 집이 장터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서울로 이사 오고 가까운 친척도 서로 얼굴을 볼 일이 없어 가물가물해졌다. 최근에는 친척 어르신들의 부고를 듣고 조문을 다니며 오래전에 우리가 만났던 날들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아빠는 막내로 위로 첫째가 누나 1명, 형이 셋이었다. 첫째 큰아버지는 육지에 사시다가 늦게 고향으로 오셨다. 다른 큰아버지들도 육지에 사시니 거의 뵐 수 없었다. 고모는 청산도 본 섬에서 거리가 떨어진 ‘모도’라는 섬으로 시집을 가셔서 본섬에 오실 때면 늘 우리 집에 들러서 막내 동생을 보고 가셨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새엄마 밑에서 자란 아빠를 고모는 불쌍히 여기셨다고 한다. 고모가 첫째이다 보니 아빠는 큰 조카와도 나이 차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는 고모네 큰 오빠에게 하게체를 쓰면서 말씀하셨고 오빠도 아빠, 엄마께 늘 깍듯하게 대하셨다. 본섬과 거리가 있었기에 고모네 집은 가본 적이 없었다. 가족도 형제가 몇 인 지도 알지 못했다.      


올해 초 오래 묵었던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어 사촌 형제들에게 연락할 일이 있었다. 그간 한 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거나 존재 자체도 몰랐던 형제들과도 연락해야 할 일이었다.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일이어서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빠에게 원망스러운 마음이 있었다. 사촌들 중에서 최근까지 가깝게 지냈거나 어렸을 때 한두 번이라도 인사를 나눴던 형제에게 먼저 사정을 알렸다. 걱정을 끼치고 번거롭게 해 드린 점을 죄송스러워하며 간곡한 어조로 긴 문자로 연락을 드렸다. 고모나 큰 댁의 대표 격인 오빠, 언니들과 통화를 하며 불안하지 않게 말씀을 전했다. 시간의 제한이 있어서 염려가 되었으나 모두가 합심해 필요한 서류를 주셔서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잘 마무리되었다. 


일이 잘 해결된 것을 전하며 사촌형제들에게 우리가 서로 연결된 형제임을 알게 해 준 이 사건이 오히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님들과 부모님의 형제들이 얼마나 따스하고 정이 있는 분이었는지 사촌 형제들을 보며 새삼 느꼈다고 했다. 약 3개월여간을 신경 쓰며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일을 처리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형제들의 아름다운 마음을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모의 딸들 중 고모를 꼭 닮은 언니가 있어 다정한 고모를 만난 듯 더욱 반가웠다. 가까운 형제임에도 존재를 모르고 지낸 시간들. 늦은 만남이지만 명절과 연말연시라도 꼭 안부 인사를 전하는 아빠, 엄마의 딸이어야겠다. 이게 삶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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