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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롱 Dec 03. 2023

모래톱의 낮과 밤


후투티, 2023, 박초롱

 비석처럼 솟은 건물들 사이로 박새가 날아든다. 빌딩 숲에서 위기의 나팔과 구애의 신호를 보낸다. 새들은 바람도 시원하게 가를 수 없는 도심을 노래로 가득 채운다. 도시를 관통하는 실개천에는 숨바꼭질의 귀재인 붉은 오목눈이 무리가 갈대와 덤불 사이를 누빈다. 무리 짓지 않고 하천을 홀로 유영하는 새는 주로 왜가리 아니면 쇠백로이다. 이들은 고독의 무게를 더한 날갯짓으로 수면에 바짝 붙어 이동한다. 느릿느릿 날아가는 쇠백로를 따라나섰다.


 펼쳐져 있던 실개천은 금강에 이르러 한 줄기로 합쳐진다. 구름이 몇 차례 그림자를 몰고 지나가자, 벌어진 하늘 틈 사이로 세 갈래 햇살이 떨어졌다. 그때, 태양을 머금은 오렌지빛의 후투티가 길가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후투티는 좁은 길을 점령하고 땅속의 벌레를 찾아다녔다. 후투티를 보면 1907년 멸종한 불혹주머니찌르레기(이하 후이아)가 생각난다. 암컷 후이아의 가늘고 굽은 부리를 빼닮은 점이라든가, 마오리족의 머리장식인 마레레코 marereko가 떠오르는 점이 그렇다. 마오리족은 후이아의 꽁지깃을 머리에 경건하게 꽂았고, 유럽인은 그 후이아를 탐욕으로 몰살시켰다. 관상용 학살의 대상이 된 후이아를 닮은 후투티는 아름답기에 불안하다. 하늘보다 땅을 사랑하는 후투티는 흙을 쪼며 뛰어다녔다. 무아지경의 후투티를 쫓다 보니 눈앞에 오래된 잡목림이 우거져 있었다.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우듬지 위에 지푸라기 같은 덤불이 쌓여 마치 거대한 코끼리 유골에 천막을 덮어놓은 것처럼 보였다. 생사로 얽힌 길이 잡초에 삼켜지며 끝나자, 깎아진 들판 밑으로 새하얀 모래톱이 펼쳐졌다. 키보다 높은 억새들이 울타리를 쳐 가려놓은 풍경이었다. 잔잔한 물결이 만든 모래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강 건너편에는 소나무 군락으로 덮인 야산이 강물에 시원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한 정경 속에서 갑자기 인공적인 소리가 잡혔다. 거의 들리지 않는 라디오를 발치에 놓은 낚시꾼이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물결의 빛을 세고 있는 듯한 그는, 물고기들이 자신의 고독에 침범하지 못하도록 라디오를 틀어놓은 것 같았다. 문지기 같은 낚시꾼을 지나쳐 모래톱으로 향했다. 고운 입자에 발걸음이 녹아내려 미풍 없는 풍경에 침묵을 더했다. 


 한참을 걷자 물빛에 반짝이는 조약돌이 강과 모래의 경계를 메우며 드러났다. 부드러운 강물은 조약돌을 각양각색으로 세공한다. 어디선가 삑 하는 미약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 듣는 새소리였다. 경고음의 주기가 짧아지면서 조약돌이 움직였다. 하얀 이마에 까만 정수리, 황색 눈테와 검은 목띠, 따뜻한 회색 등 아래 흰 배, 동그란 몸에 비해 얇고 길게 뻗은 다리. 멸종 위기종 2급인 흰목물떼새였다. 어딘가 불안한 모습에 멀어지려 했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소리는 가까워졌다. 가만히 멈춰 서서 새가 진정하기를 기다렸지만 한 마리가 더 나타났다. 이제 막 산란을 마친 부부가 적을 쫓아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다. 막다른 모래톱에서의 퇴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뿐이다. 나가는 길에도 따라붙던 경고음이 어느새 내 앞을 앞질렀다. 흰목물떼새 부부는 신비한 모래벌판의 초입이자 자갈밭이 시작되는 곳에 알을 낳았던 것이다. 나를 물가로 이끈 것은 알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한 유인 작전이었다. 알을 품은 채 경계 밖에 할 수 없는 모성애에 미안함을 느끼며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모래톱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듯, 해가 소나무 산자락에 가닿자마자 어스름이 몰려왔다. 작은 불빛 하나 없는 강가에서, 정적의 베일에 싸인 공포와 죄책감이 이방인을 몰아낸다. 밤이 있어야 할 곳은 금세 어두워지고, 저 멀리 도심에서는 빛이 번져나간다. 호기심의 안개가 걷히자 창백한 아파트가 등대처럼 돌아가야 할 좌표를 알려주었다. 낚시꾼의 라디오 소리를 어둠을 밟으며 되감는다. 

흰목물떼새, 2023,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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