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냥이 Mar 12. 2024

술에 물 탄 듯 글에 물 탄 듯

침착맨을 좋아한다. 그의 선을 넘을 듯 넘지 않는 뻔뻔함과 무례함을 사랑한다. 이런 그를 부엌에서 아이패드로 실실 쪼개며 보는 나를 아내는 오타쿠 보듯 본다. 이런 그녀의 눈길에 ‘침착맨 정도면 메이 전데’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이런 내 생각에 새삼 놀란다. 이것이 세상에 모든 오타쿠들의 생각인 건가. 이 정도면 메이저지 하는 그런 것. 그래도 침착맨은 메이저다. 한국인이면 침착맨 사랑합시다.


여하튼, 그의 유튜브에서 가끔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서 초대석을 할 때가 있다. 별건 아니고 그가 초청받는 사람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것이다. 나오는 인물은 나이 성별 직업 불문하고 다양하다. 얼마 전에는 나영석 PD가 나온 편이 화제가 됐다.


사회적 인식으론 음지라 볼 수 있는 인방계에 <1박 2일>, <지구오락실> 등을 연출한 양지의 수장이 온 것이다. 나온 이유도 멋졌다. 


스트리머를 준비하고 있던 나영석 PD가 대형 스트리머인 침착맨의 노하우를 훔쳐(?) 보고자 왔다고 한다. 나영석 PD 무서운 사람이다. 저 정도 위치에 있으면 자세를 낮춰서 다른 사람에게 배우는 게 쉽지가 않을 텐데 

역시 롱런하는 사람은 이유가 있나 보다.


이런 유명 PD 앞에서 침착맨은 뻔뻔하게 영상을 너무 힘들게 만들면 오히려 시청자들이 힘들어한다는 논리를 편다. 일견 이해가 안 된다. 영상을 더 편집하면 할수록 재미의 농도가 짙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다. 오랜 시간 동안 예능 PD를 해온 나영석도 이런 말에 나와 같은 의문을 표했다. 이런 그에게 침착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무 영상을 힘들게 만들면 사람들도 자꾸만 영상을 봐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껴요. 우리 방송은 언제 어디를 보든 상관이 없어요”     


예를 들어 영상을 밀도 높게 만들면 설거지할 때 놓쳐도 어쩔 수 없지가 아닌 아깝다란 마음이 들면서 끼고 있는 고무장갑을 벗고 다시 전으로 돌려야 하나란 고민이 든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준다. 안 보면 손해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착맨 방송은 놓쳐도 전혀 상관없는 농도가 낮은 방송이라 시청자들이 언제 키든 어디서부터 보든 상관이 없다. 


이 말에 나영석 PD도 그들을 보던 나도 무릎을 탁 쳤다. 감탄하는 얼굴로 나영석 PD는 대학에서 이 내용을 강의해야 한다는 말까지 한다. 난 이 내용을 듣고 대니얼 카너먼 <생각의 관한 생각>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손해보다 추가 이익에 너그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영상의 농도를 옅게 만들면 재미있는 부분을 못 봐서 손해라는 감정보다 추가 이익을 못 봤다는 감정이 더 강해진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은 좀 더 감정적으로 관대해진다.


우리가 손실을 이익보다 두 배정도 크게 느끼는 손실회피 편향이 있다는 점도 고려해 보면, 그의 말은 굉장히 타당성이 있다.


이런 점을 내 글쓰기에 적용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브런치글을 좀 더 편하게 써봐야지. 밥상을 다 차려서 한 상거하게 먹는 정찬이 아닌 편하게 집어먹을 수 있는 스낵처럼. 


물론 전에도 편하게 쓰긴 했다. 근데 마음은 좀 무거웠다.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다 보니 다른 압축된 글들을 많이 본 탓이다. 이런 글들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눈이 올라간 탓이다.     


추가로 내 성향 자체가 뭐 하나를 오랫동안 만지작거리는 걸 잘못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소설가는 이런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이런 면에서 나는 이런 유의 소설가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결정을 하고 나니 불안감이 찾아온다. 옛날에 재주가 많으면 굶어 죽는다고 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쉽게 잘리지 않는 직장이 있고 우리 같은 선진국에서 굶어 죽기야 하겠는가. 최대한 기질대로 살아야겠다. 이러다 운 좋으면 뭐라도 하나 터지겠지. 매일 뭐라도 쓰는 것 이게 내 로또다.


Image by Republica from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