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붓다도 죽었고, 예수도 죽었다.

by 도냥이

최근 읽은 《편안함의 습격》이라는 책에서 강렬한 문장을 만났다.

“산길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500미터 앞에는 낭떠러지가 있습니다. 이 절벽이 바로 '죽음'이며, 우리는 모두 그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국 절벽에서 떨어질 운명입니다. 붓다도 죽었고, 예수도 죽었습니다. 당신도 죽고, 나도 죽을 것입니다.”


문장을 읽는 순간, 머릿속에 생생한 장면이 떠올랐다. 짙은 안개가 깔린 산길,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깊은 절벽. ‘500미터’라는 거리는 묘하게 현실감을 주었다. 아직은 걸어갈 여유가 있지만, 결코 멀지 않은 거리. 그리고 그 끝에선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말—붓다도, 예수도, 그리고 나도—그것이 내 마음을 깊이 찔렀다.


사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내게 낯설지 않다. 길을 걷다 문득 떠오르곤 한다. 특히 최근엔 더욱 그랬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혹시나 차량이 멈추지 않으면 어쩌지, SUV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이 머릿속을 스친다. 뉴스에서 본 급발진 사고 영상들이 뇌리에 박혀 있는 탓이리라. 상상은 종종 현실보다 잔인하게 구체적이다. 어느 날, 그렇게 끝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나를 덮친다.


그런 불안은 단지 나의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전립선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장인어른의 형님장례식장에 다녀왔다. 누군가의 죽음이 신문 기사 속 문장이 아니라, 내 일상과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올 때, 그 충격은 생각보다 크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고 믿지만, 그것이 ‘내 곁의 사람’에게 닥쳐왔을 때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자주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언젠가는 사라질 삶이라면, 지금 내가 하는 고민들은 얼마나 본질적인 것일까. 직장에서 실적이 나오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던 날들, 까다로운 상사와의 갈등으로 속을 끓였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이 절벽 앞에서는 얼마나 사소한 일일까.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끝이 정해진 길’에서 불필요하게 소진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허무함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감사가 고개를 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갑자기 다르게 보인다.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조용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책을 펼칠 수 있는 여유, 입 안을 채우는 아이스카페라테의 시원한 감촉, 심지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마저도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죽음을 생각할 때야 비로소, 삶이 얼마나 다정하게 나를 감싸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나는 이제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하기보다,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한다. 언젠가는 끝날 여정이라면, 그 길 위에서 하루하루를 더 충실하게 살아내고 싶다. 어쩌면 죽음은, 우리가 삶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경계해 주는 마지막 이정표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천천히, 그러나 진심으로 걸어간다. 그 500미터의 길 위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을 버리는 것까지가 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