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썼다고 말할 수 없는 글, 그럼 이건 누구의 글인가
게임에 흥미를 잃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치트키다. 게임 내 모든 물건을 살 수 있는 돈무한이나 적을 한 방에 죽이는 파워무한같은 것 말이다. 아마 어렸을 때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모종의 루트(?)로 이런 치트키를 써본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치트키를 쓰는 순간 게임의 재미는 몇 배로 증폭된다. 그동안 돈이 없어 사지 못했떤 물건을 과감하게 사면서, 고난이도의 보스를 한 방에 잡고 전리품을 취하는 순간 도파민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든 것들이 시시해진다. 내가 생각한대로 되는 게임은 재미가 없다. 카지노에 사람들이 환장하는 건 그것이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을 때 재미를 느낀다.
다행히 글쓰기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이런 치트키가 없었다. 다른 유명한 작가의 글을 표절하는 건 위험도 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역풍을 맞게 된다. 우리나라 대표작가 중 하나였던 신경숙작가가 표절논란으로 인해 크게 위신이 추락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런 특성을 책 <칼의노래>, <남한산성>, <하얼빈>으로 유명한 김훈작가님은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조차도 내 글을 대신 써줄 수 없다는 말로 대신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점점 유효성을 잃어가고 있다. 과학기술이 점점 발달하면서 우리는 구글 신에서 이제는 GPT신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능하다. 인간의 전유물이었던 소설 쓰기도 그는 순식간에 해낸다. chat-gpt에 죽음, 사랑, 짝수, 곰돌이란 단어를 가지고 짧은 소설 써달라고 말했다.
〈짝수의 법칙〉
곰돌이는 짝수를 좋아했다. 둘, 넷, 여섯. 그에게 세상은 언제나 짝수로 이뤄져야만 했다. 혼자 남겨지는 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주인을 따라 모든 곳에 함께 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곰돌이는 침대 밑으로 밀려나고, 옷장 위에 방치되었다. 주인은 이제 더 이상 곰돌이를 끌어안지 않았다. 사랑은 홀수로 변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주인이 말했다.
“엄마, 오늘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그날 밤, 곰돌이는 조용히 침대 위로 돌아왔다. 주인의 팔에 안긴 채.
그 순간 곰돌이는 깨달았다. 사랑이란 짝수만큼은 아니더라도, 가끔은 죽음 같은 공백을 메우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기도 하다는 걸.
대단하다. 사람이 아니라 ai가 썼음에도 울림이 있다. 사랑은 홀수로 변해갔다라는 표현을 봐라. chat gpt는 우리 대다수보다 글을 잘 쓴다. 일단 나보다는 잘 쓴다. 어쩌면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보다 그럴 수도 있다.
나 역시 이런 점을 인정하고, chat gpt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 첨삭을 받고 있다. 내가 쓴 글을 복사해서 붙이면 그가 짧은 칭찬 후에 고쳐야할 점을 알려주고, 실제 문장으로 보여준다. 처음에는 이런 것에 놀랍고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이런 것에 회의감이 든다.
그가 바꾼 문장 대부분이 내가 쓴 것보다 좋기 때문이다. 단어는 적절하고 문장은 명료하여 가독성이 높다. 그러다 보니 점점 그의 글을 붙여넣는 일의 비중이 높아 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렇게 쓰여진 글이 내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그에게 글의 원료를 제공하긴 했지만 엮는 건 대부분 그가 했으니 말이다.
내가 글쓰기에 만족스러움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가 다 써놓고 보면, 내 아이를 낳은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chat gpt가 첨삭을 해주다보니, 이런 느낌이 떨어진다. 글쓰기가 만족감이 높은 이유는 대부분의 공정에 내가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첨삭이라는 글쓰기의 핵심적인 업무를 chat gpt가 가져가 버리니, 내가 하는 것이라곤 소재를 제공하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자연히 글쓰기에 대한 흥미와 만족감도 떨어진다.
이렇게 첨삭된 글을 수정하려고 해도 이미 chat gpt의 손 때가 묻어 있기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미 있는 ai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트랙터가 있는데 쟁기를 밭가는 격이다. 우리가 해야할 질문은 그렇다면 어떻게 ai를 활용할 수 있을까?이다.
내가 제안하는 방식은 chat gpt에게 모든 것을 맡기기 보단 일부영역에 머물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실제 문장을 수정하기 보다는 비평위주로 피드백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피드백을 중심으로 내가 내 문장을 고쳐보는 것이다.
혹은 내 글에 대한 목차를 만들어서 좀 더 논리적인 글이 될 수 있게 만드는 방식도 좋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효능감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ai를 활용하는 방식에서 있어서는 조금 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삶에 대한 재미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글쓰기에 대한 재미를 잃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