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사진에 진심이고, 나는 기억에 진심이다.
아내는 사진에 진심이다. 말 그대로, '진심'이다. 단순히 예쁘게 나오는 셀카를 즐긴다거나, 남들처럼 풍경을 찍어 SNS에 올리는 수준이 아니다. 아내는 사진 기능사 자격증까지 땄다. 주말마다 집에서 학원이 있는 홍대까지 오가며 실기 연습을 하고, 필기시험을 준비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피로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들고 수업을 들으러 가는 모습엔 묘한 생기가 감돌았다. 그녀에게 사진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신만의 감각과 시선을 세상에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다행히도, 데이트할 때마다 몇 백장씩 사진을 찍어대는 '물량파'는 아니다. 그랬다면 사진 찍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꽤나 고역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늘 산책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적당히 걷다가 커피를 마시는 평범한 커플이었다. 하지만 가끔, 유난히 하늘이 맑거나, 나무 사이로 햇살이 예쁘게 스며드는 날이면 그녀는 자연스레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냈다. 그런 순간이 다가오면, 나는 약간 긴장했다. 이제 곧 내가 시험대에 오를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진을 찍어 보여주면, 그녀는 대번에 표정을 찡그린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마치 악마는 프라를 입는다의 악마 같은 상사에게 쪼이는 앤 해서웨이가 된 것 같다. "이건 아니지..."라는 말이 얼굴에 그대로 적혀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익숙한 반응이다. 단 한 번도, 단번에 OK 싸인이 떨어진 적은 없었다.
그녀는 카메라를 다시 들여다보며 한참을 사진을 노려본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직접 나선다. "이 구도 아니고... 이렇게, 여기서 이렇게 찍어야 해." 어느새 그녀는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여 자기가 원하는 구도를 만들어 놓고는, 이대로만 찍으라고 당부한다.
나도 그리 반항적인 성격은 아니라서, 순순히 그 지시대로 사진을 찍는다. 다시 보여주면, "음... 이 정도면 합격."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끝까지 만족한 표정은 아니지만, 넘어가 주는 느낌이다. 신기하게도 내가 원하는 대로 찍은 사진은 그녀를 좀처럼 만족시키지 못한다. 아니, 만족은커녕 "대체 왜 이렇게 찍었어?"라는 말이 날아온다. 마치 내가 뭔가 중요한 약속이라도 이긴 듯한 표정이다.
사진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가 우리 둘은 다르다. 나는 그녀의 생생한 표정에 집중한다. 웃을 때의 눈 모양, 살짝 기울어진 고개,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의 결을 담고 싶다. 반면 그녀는 전체적인 구도나 비율처럼 '완성도'에 집중한다. 배경과 인물의 위치, 광원 방향, 색의 대비, 여백의 의미. 그녀의 기준은 훨씬 정교하고 계산되어 있다. 나로선 그런 기준이 피곤하고 복잡하게만 느껴질 때도 있다. 결국 그녀가 원하는 사진을 찍어주긴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엔 늘 작은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이 표정이 좋은데, 이건 왜 안 되는 걸까?'
사실, 그동안 이런 반응이나 선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나는 사람의 감정이 묻어나는 사진이 좋고, 그녀는 결과물이 잘 빠진 사진을 좋아하는 거라 여겼다. 그런데 얼마 전 읽은 책 <기억한다는 착각>에서, 나의 이런 취향과 행동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힌트를 얻었다.
책에서 저자는 딸의 생일파티 영상을 촬영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그날 영상을 남기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영상 촬영에만 몰두하다 보니 나중에 회상했을 때 정작 생일파티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고 한다. 시각에만 집중한 나머지, 청각이나 당시의 감정에는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여행을 다닐 때도 연출된 인물사진이나 풍경사진을 찍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대신 웃는 사람, 놀라는 사람, 혹은 이례적인 표지판 같은 것들을 찍어 둔다. 이렇게 소수의, 선별된 사진은 여행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고, 나중에 떠올릴 대도 기억을 더 잘 불러온다고 한다.
나는 이 내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내가 그런 사진을 찍었구나.' 의도한 건 아니지만, 나도 그런 방식으로 사진을 남기고 있었던 것이다. 셔터를 누를 때, 나는 풍경보다 사람의 감정에 눈이 갔다. 풍경은 카메라가 담지만, 표정은 사람이 기억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아내에게 꾸지람을 들을 날은 많을 것이다. 사진을 다시 찍으라고 말하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도릴 아내의 모습이 선하다. 아마 책에서 본 이 이야기를 들려줘도, 그녀는 여전히 완성도 없는 사진이라며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표정과 감정들 역시, 내가 그 순간을 더 오래, 더 따뜻하게 기억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조각이 된다. 완벽한 사진은 아니어도, 완전한 기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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