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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란 무엇을 포기할지를 선택하는 일이다.

by 도냥이

결혼하면 뭐가 좋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묻는 사람도 다양하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친누나부터 솔로인 친구, 회사 동료도 있다. 이런 질문을 왜 할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처음에는 나와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처음 보는 아이에게 할 말이 없어서 궁금하지도 않은 몇 살인지 부모님이 뭐하는지 묻는 것처럼 말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이제 곧 경험할 수도 있는 세계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함인 것 같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정보를 미리 얻어 조금이라도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확실성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여하튼, 그래서 묻는 사람에게 나는 이렇게 답하곤 한다. "안정감이 생겨요." 물론 안정감이라는 말로 뭉뚱그렸지만 이 안에는 다양한 뜻이 있다. 여기에는 종족번식을 위해 더 이상 짝을 찾아 다른 수컷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언제 결혼할 거냐는 관심의 탈을 쓴 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그리고 피상적인 관계 천지인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일상의 무게를 같이 경험해 나갈 동반자가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좀 더 정확한 의미 파악을 위해, 네이버 국어사전에 '안정감'이라는 단어를 쳐보니 아래와 같은 뜻이 나온다. "바뀌어 달라지지 아니하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 느낌." 이렇듯 안정감이라는 말은 듣기엔 편안하지만, 그 속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함정도 함께 있다. 그것은 상대방 역시 내 뜻대로 바꿀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옳으니 당신은 이대로 따라야만 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머지않아 소모적인 말과 감정싸움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자기가 올바르게 살면 상대방이 감화되겠다는 생각도 논리로는 말이 되지만 현실로는 어렵다. 공자님도 자기 부인을 감화시키지 못했고 부처님도 자기 아버지를 깨닫게 하지 못했다. 이런 인간대표들도 못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래서 결혼하게 되면 어떤 일을 할 때 독단적으로 혼자 결정할 수가 없다. 물론 경중의 차이는 있다. 마트에서 삼겹살을 살지 목살을 살지 고민하는 정도는 혼자서 할 수 있다. 혹은 한돈을 살지 캐나다산 보리 먹은 돼지를 살지라던가.(사실 이마저도 물어봐야 할 때도 종종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겠다거나 이사를 결심하는 이런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배우자와 상의해야 하는 것이 필수다.


만약 이를 어긴다면 배우자에게 신뢰를 잃게 되고 조만간 가정법원에 방문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주변에서 아내나 남편 몰래 주식을 하거나 코인을 했다가 나중에 들켜서 이혼까지 운운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듣거나 볼 수 있다.


그래서 결혼을 한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접어두고 상대와 대화와 타협하는 긴 협상의 과정이다. 결혼 전 각자가 서로의 인생을 살면서 딱딱하게 굳은 특성들이 있다. 이런 특성들은 결혼생활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그전까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연애 관계에서는 보통 밝은 모습만 보여주고 어두운 모습일 때는 각자의 공간에서 지내기 때문에 이런 게 드러날 여지가 많이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렇다. 여행을 갈 때 식당이나 숙소도 그날 정하는 편이다. 당연히 예산 계획도 세우지 않는다. 즉흥적인 성향이 강하다. 요즘 말로 대왕 P형이다. 내가 곤욕스러운 질문 중 하나는 다른 사람나중에 사람들이 얼마 들었냐고 물어볼 때 곤욕스럽기 그지없다. 거기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무 생각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대략적인 금액인 얼추 백만원정도 들었을걸?이라고 말하지만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갔는데, 아직도 얼마가 들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럼에도 아내와 여행을 갈 때는 음식점과 숙소 그리고 볼만한 곳을 찾아 둔다. 나 혼자서는 괜찮았던 일이 상대방과 함께하니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 혼자라면 숙소는 그날그날 정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무계획은 고생이고, 고생은 낭비였다.


이런 일은 즉흥성이 강하고 생각하면 바로 해야 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욱더 결혼이 힘들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은 내가 스스로 맞다고 판단해서 빠르게 결정하고 시도하면 됐는데, 이제는 배우자에게 그 일을 알리고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결혼생활을 순탄하게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결혼할 때 고려해야 할 게 있다면 그건 외모나 학력, 재산보다는 스스로 무엇을 내려놓을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까지 내려놔야 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만 결혼하면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의미에서 결혼은 내가 원하는 삶을 접고 우리의 삶을 시작하는 일이다. 마음껏 나답게 살고 싶다면, 결혼은 하지 않거나 잠시 미뤄도 좋다.


그림출처 : chat gpt 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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