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년 연애하고 결혼해서 느낀 것.
통계청에서 2024년도 6월 27일에 발표한 '우리나라 청년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만 19~34세 청년 인구 5명 중 4명가량은 미혼 상태다. 이런 통계를 보고 '이렇게나 결혼을 안 한다고?'란 생각이 들었지만 일주일 사이에 얼굴을 보거나 전화를 한 사람을 생각해 보니 얼추 맞았다. 서른 초반인 내가 일주일 사이 연락한 네 명의 친구 중 나 혼자만 유부남이었다.
이런 미혼인들의 도시에서 나 같은 외눈박이들은 모임에 나가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게 되기 마련이다. "결혼하면 뭐가 좋아요?" 이런 질문 뒤에 있는 미혼자들의 의심과 기대가 반쯤 섞인 눈빛을 받다 보면 뭔가 그럴싸한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치 TED에서 강연자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인지 내 대답은 "똑같아요"나 "별거 없어요"같은 물어본 사람을 다분히 실망시킬 확률이 높은 답변보다는 "너무 좋아요"나 "하지 마세요"라는 양 극단의 대답으로 갈리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마음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그때 참았어야 하는데.."같은 자조 섞인 유부남들의 밈들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난 결혼찬성파에 속해서 이런 모임에 가면 사람들 앞에서 "그냥 좋아요"라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지나간다. 좋긴 좋은 어쩐 점들이 좋은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결혼하면 어떤 점들이 좋은지에 대해 한 번 구체적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브런치에 결혼하면 좋은 점에 대해 적고 본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서 내가 느끼는 결혼에 대한 장점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은 결혼이 선택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은 성인이 되려면 거쳐야 하는 관문 같은 느낌이 있다. 이걸 안 하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사회적으로 뭔가를 이루지 못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부가적으로 부모님들의 결혼 언제하냐는 잔소리도 따라온다.
이런 것들에 의식 안밖으로 드는 에너지가 만만치 않다. 실질적으로도 소개팅을 위해서는 몸도 관리해야 하고 옷도 주기적으로 사야 한다. 마치 야구 불펜투수같다. 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몸을 풀고 있어야만한다.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되면 이런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된다. 그리고 남은 내 시간과 에너지를 내가 정말 추구하고 싶은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배우자와 이런 추구하는 활동이 같다면 이런 시너지는 더욱더 배가 된다. 우리 부부 같은 경우에는 지금도 쉬는 주말이면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한다.
두 번째는 의사결정의 질이 올라간다. 결혼을 한다는 건 나 혼자만의 의사결정으로 모든 걸 이끌어 나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비트코인에 전재산을 넣고 싶어도 상대방의 동의가 없다면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산을 가고 싶어도 상대가 바다를 가고 싶어 하면 내 의견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게 결혼이다.
이런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 단점 같이 보이지만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논의할 상대가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니 이런 과정을 통해 내 판단을 한 번 더 검토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배우자조차 설득할 수 없다면 사실상 그 주장은 안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또한 얘기를 하는 과정 중에서도 새로운 대안이 나오기도 한다. 칩스 앤 댄히스의 <후회 없음>이라는 의사 결정에 관한 책에서도 조건이 하나 더 늘어나면, 의사결정의 질이 대폭 늘어난다고 밝히기도 한다.
마지막은 안정감이 생긴다. 진짜 내편이 생긴 느낌이다. 내 일상을 소소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다는 점은 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그날 있었던 일을 공유하면서 웃고서 소소하게 즐기는 삶이란 해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행복감 중 하나다. 아무리 전용기를 타고 다녀도 그 옆에 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걸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침착맨 작가가 축가로 했던 말 중에 아무도 달아주지 않는 내 게시글에 서로의 댓글을 달아주는 관계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실제로 아내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블로그가 있는데 거기에는 거의 나만 좋아요를 달곤 한다.
나 역시 이런 결혼 추천에 가까운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결혼 전에 비관론자에 더 가까웠다. 결혼하면 무조건 싸울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왠걸 하고 나니 생각보다 훨씬 더 좋다. 이런 걸 보면 결혼이라는 선택은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영역에 속하는 것 같다. 이런 내 의견에 진화론을 주창한 인류의 천재 중 한 명이었던 다윈도 결혼을 위해 장단점을 적고 각자 지워나가면서 결혼을 할지 말지 판단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엄밀한 과정을 거친 그도 실제 결혼생활이 어떨지에 대해서 충분히 예상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결혼생활은 성공이었다. 아내 엠마 웨지우드와의 열 명의 아이를 둔 그는 결혼이 주는 행복감을 충분하게 누렸다.
예전에는 결혼이 거의 필수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선택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 있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결혼에 대해 장점과 단점을 헤아려보려고 하는데 이것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주식시장이나 기상 같은 복잡계에 더 가깝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이런 측면에서 결혼이라는 선택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험해 나가는 영역에 속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