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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이 오늘 자고 가신데요.

산책을 기다리는 개가 되지 않기 위해

by 도냥이

본가에 들렀다가 엄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큰누나 이야기로 흘러갔다. 엄마 말로는, 누나는 예전부터 시부모님의 방문을 꽤 부담스러워했다고 한다. 며느리가 시댁 부모님을 어려워하는 건 흔한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시부모님이 오시면 잠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룻밤 묵고 갈 때도 있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이 누나에게는 꽤 큰 스트레스였다고 한다.


그 불편함은 단순한 눈치 보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시부모님이 오시는 날이면, 그날 자고 가실지 아닐지를 몰라 누나는 하루 종일 긴장 상태로 지냈다고 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마음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고, 늘 방어적인 자세로 하루를 보내는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며느리'로서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 여겼지만, 마음속엔 답답함이 샇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는 문득 이런 상황이 '주도적인 삶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시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것이 결국, 자신의 행복을 외부 요인에 맡기고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이게 맞는 삶인가? 누군가의 결정 하나에 내 하루가 휘둘리는 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인생일까?


이후 누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 주도권을 되찾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눈치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시부모님께는 먼저 "오늘 자고 가세요"라고 말하고, 빈 방에는 미리 이불까지 펴두었다고 한다. 문제를 회피하거나 눈치 보기보다는, 그 상황 안으로 들어가 정면돌파한 것이다. 마치 영화 <달마야 놀자>에서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담기 위해, 아예 항아리를 물속에 담가버리던 장면처럼 말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나 역시 외부 요인에 마음이 흔들려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행동을 어떻게 볼지,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는 날 어떻게 평가할지 고민하다가 스스로를 움츠러들게 만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회사에서 '험지'로 불리는 곳에 배치될까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론 새로운 일을 배우고 싶어 하는 모순된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렇게 나는 늘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이며, 스스로 삶의 주도권을 내려놓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건 마치 산책을 가고 싶어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개의 모습과도 같았다. 누군가가 리드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태도. 주도권을 쥔 사람은 결국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누나는 그걸 해낸 것이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선택하는 태도를 바꾼 것만으로도 삶이 훨씬 편안해졌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나도 조금씩 마음을 바꿔보기로 했다. 나는 평소에 뭔가를 강하게 주장하거나 앞에 나서는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의 결정만을 기다리며 스스로를 가두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누군가 나에게 어떤 제안을 하면, 가능한 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고. 물론 모든 일을 다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선택 앞에서 지나치게 흔들리고, 그것 때문에 마음을 낭비하는 일은 줄이고 싶었다.


얼마 전 회사에서 서너 달간 외부 교육을 갈 사람을 찾는 일이 있었다. 조건은 썩 좋지 않았다. 두 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고, 두 시간 늦게 퇴근해야 했으며, 다녀온 사람들도 하나같이 힘들다고 말하던 교육이었다. 그런데 나는 별 고민 없이 "가겠다"라고 말했다. 내게 중요한 건 그 교육의 난이도가 아니라, 내 태도였다. 예전 같았으면 '가기 싫은 데 가야 하나', '내가 안 가면 누가 갈까', '이걸 가면 나를 어떻게 볼까'등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음을 정하니 생각이 간결해졌고, 결정 후엔 이상할 만큼 마음이 편했다.


결국 팀장님의 판단으로 나는 교육에 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칭찬을 들었다. "남들이 꺼리는 일도 기꺼이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그런 평가가 나의 본질을 대변하진 않는다. 내게 정말 중요한 건, 스스로 결정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 결정이 내 마음을 더 편안하게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삶은 여전히 쉽지 않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시선이나 외부의 조건 앞에서 흔들릴 날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 지금 나는 산책을 기다리는 개처럼 누군가의 결정만을 바라보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나의 감정과 시간을 선택하고 있는가. 아직 완전히 바뀌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전전긍긍하며 망설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그만큼 나는 조금 더 내 삶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사진출처 : chat gpt 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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