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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Jan 15. 2020

소설<Missing> 1화. 다시 돌아온 아이(1)

소설<Missing> 프롤로그 보기 https://brunch.co.kr/@upsidedown/16


일주일 전만 해도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져 눈발이 휘날렸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은 무척 포근했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엔 토실토실한 어린 잎이 조금 올라와 있었고, 마당엔 길고양이가 발라당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이층집. 반 쯤 열린 현관문 사이로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와 여자들의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해주와 엄마였다. 둘은 아침을 차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아빠는 애꿎은 리모컨 버튼을 계속 누르며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그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은 없어보였다. 


“아빠, 상 좀 펴 줘.”


해주가 부엌에서 거실을 향해 얼굴을 삐죽 내밀었고 남자는 아무말 없이 에어컨 옆에 비스듬히 세워놓은 교자상을 가져와 펼쳤다. 해주는 상을 닦았고, 엄마는 된장찌개와 반찬, 그리고 밥을 가져왔다.  

아침을 차렸을 뿐인데, 거실은 따스함으로 가득찼다. 오랜만에 거실에서 온가족이 먹는 아침이었다. 

미대에 다니는 해주는 학교에서 개인 프로젝트로 만든 거대한 달팽이 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댔다. 특별할 것 없는 내용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그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그래서 태진 선배랑 동대문에서 재료 살만한 걸 고르고 있었거든. 그런데 대박! 글쎄, 거기 사장님이 이따만한 석고상을 30%나 할인해주겠다는 거야.”

“얼마 짜린데 30%나 할인을 해준대?”


엄마는 컵에 해주 아빠에게 줄 물을 따르며 기계적으로 말했다. 


“45만원. 완전 대박이지? 거기서 선배가 어찌나 고민을 하던지 글쎄, 1시간 동안 그 주위에 서서 살까말까 살까말까 망설이는데, 속 터지는 줄 알았다니까. 솔직히 이해는 해. 그런데 같이 온 사람을 그렇게 기다리게 만들다니...”


순간, 장조림을 집어든 해주는 이상할 만큼 주위가 고요하다는 걸 느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에 밥 한 숟가락을 넣고는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은 해주의 머리 너머를 향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이 반쯤 열린 현관이었다. 


“탁!”


유령이라도 본 듯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엄마가 물컵을 상 위로 떨어뜨렸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어떤 말을 꺼내려 했지만,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해주는 그들의 시선이 머물러있는 곳을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았다. 


“누.. 누구.. 세요...?”


그곳엔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듯한, 앳된 얼굴의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낡고 커다란 검은 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안엔 잠옷처럼 생긴 하얀색 롱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발은 피 범벅에 무척 더러웠으며, 옷 또한 지저분했다. 길게 풀어헤친 머리는 땀과 먼지로 군데군데 엉켜있었고 그녀의 눈빛, 허공을 응시하는 그 눈빛은 무척이나 공허했다. 그녀는 한 손에 미아방지 목걸이를 꼬옥 쥐고 있었다. 어린아이 용인 듯 목걸이 줄이 굵고 짧았다. 

온가족이 여자를 쳐다보고 있던 그 때, 엄마가 겨우 입에서 한 마디를 뱉었다. 


“미... 미주.... 니...”


해주의 눈이 커졌다. 미주... 이 여자가 미주라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쫓아 미주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리고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살려... 살려줘...”


미주는 그대로 ‘픽’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손이 얼굴에 닿았다. 행여 힘이라도 주었다가 생채기라도 날까, 위아래로 쓸어내리는 손길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온몸의 감각이 따뜻한 손길을 쫓아다닌다. 기분이 좋다. 

미주는 손의 주인을 찾기 위해 눈을 스르르 떴다. 꿈이었을까? 고개를 좌우로 돌렸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옅은 하늘색 천장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어디지?’


서서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창문이 있는 오른편 벽엔 동화책이 꽂힌 책장이, 바로 옆엔 장난감과 동물 인형이 가득찬 바구니가 있었다. 마주보이는 벽엔 어린이용 옷장과 책상이 있었다. 또, 침대 오른쪽엔 의자가, 왼쪽엔 링거가 달려 있는 스텐드가 있었다. 미주는 링거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연결된 반투명 호수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호수는 자신의 손목에 꽂혀 있었다. 


“미주야…”


방 앞을 지나던 해주가 놀란 눈으로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고개를 문쪽으로 돌려 큰소리로 외쳤다. 


“엄마! 미주 일어났어!”


해주는 미주의 눈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나 기억 나? 나, 네 언니 해주야...”


미주는 대답없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나 모르겠어?”


“…”


“약이 너무 센가? 애가 좀 몽롱한 것 같기도 하고.” 


해주는 아무말 없는 그녀를 향해 다시 말을 걸었다. 


“미주야, 너 병원에만 일주일 동안 입원했었어. 의사 선생님은 다 정상이랬는데, 하도 안 깨어나서 집으로 데려왔어. 엄마가 너 병원에 있어서 더 못 일어나는 것 같다고...”


“미주야...!”


해주의 외침을 들었는지 1층에서 밥을 하던 엄마가 한 손에 국자를 들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녀는 넘어질 듯 뛰어와 미주를 꼬옥 안았다.


“미주야, 엄마가 널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니가 언제 돌아올지 몰라서 이사도 못가고, 방도 안 치웠어. 엄마가 너무 미안하고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우리 딸.”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내려와 미주의 어깨를 적셨다. 멍했던 미주의 눈에 촛점이 돌아왔다. 그녀는 놀란 듯 엄마를 순간적으로 밀쳐낸 후 해주와 엄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몇 초간 달싹거리다가 말을 뱉었다. 


“미주가 누구에요?”


엄마와 해주는 일순간 얼음이 됐다. 해주가 놀란 얼굴을 애써 감추며 물었다. 


“니가 미주지. 김미주. 왜 그래?”

“제가요?”


엄마는 놀란 눈으로 해주를 바라보았다.  


“의사 선생님께 빨리 오라고 전화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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