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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Jan 23. 2020

소설<Missing>4화. 은인(1)

“탕! 탕! 탕!”


파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마약상이 그의 정체를 너무 일찍 알아챘다. 남자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총알을 피하기 위해 왼편 기둥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곤 품에서 권총을 꺼내어 대응 사격한 후 시계를 바라보았다. 절망적이었다. 지원이 오려면 1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그들은 총을 쏘며 점점 남자의 숨통을 조여왔다. 


“탕! 탕! 철컥. 철컥.”


설상가상으로 총알까지 다 떨어졌다. 방아쇠를 계속 당겼지만, 총에선 빈 소리만 났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딱, 여기까지 인가 보다.  


“펑!”


누군가 수류탄을 던진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약상을 향해 쏘는 총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뒤를 돌아보자 갑자기 화면이 캄캄해졌고, ‘Coming Soon’이란 글자가 나타났다. 


“아주 뻥을 제대로 치는구먼.”


종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영화관 매표소 한 편에 있는 대형 스크린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가 뻥이에요?”


함께 있던 미주가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더럽게 극적이잖아. 진짜 인생은 저렇지 않거든. 위급한 상황에서 누군가 결정적으로 손을 내밀어 준다는 거. 그거 정말 신문에 나올 법한 일이야. 굉장한 희박한 일이라고. 일생에 극적인 운이라는 게 있다면 세 번 정도 있을까?”


“그 세 번 중 한 번인가 보죠.”


무표정한 그녀의 말에 그는 답답하단 표정으로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기, 형사님.”


인위적인 미소와 친절함으로 가득한 남자였다. 종훈은 자신이 영화관에 온 목적을 되새기며 딱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매니저님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JOY 시네마 매니저 감동욱입니다. 무슨 일로 절 찾으신 건가요?”


종훈은 명함을 주며 입을 열었다. 


“지금 수사 중인 사건이 있는데 이 주변 CCTV를 확인하고 싶어서요. 지금 일단 1월 15일, 하루만 보여주시면 됩니다.”

“무슨 사건인지 알 수 있을까요?”


매니저라는 사람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목소리를 낮춰 물었고 종훈은 피곤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실종 사건입니다. 죄송하지만 자세한 사항은 알려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는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네.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CCTV 확인용 컴퓨터 앞에 앉은 종훈은 능숙하게 그날의 영상 파일을 열었고 미주는 옆에서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가 영화티켓에 적혀있던 시간대로 영상을 돌리니,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미주인 듯했다. 


“빙고. 너 맞지?”

“아마도요.”


미주는 남자 둘과 함께 있었다. 남자 한 명은 후드티에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고 다른 한 명과 미주는 검은색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화면 속 여자는 긴 머리카락과 체형으로 미루어 봤을 때 미주라고 추측을 한 것이지 100% 확신은 아니었다.  


“혹시 저 두 남자 기억나?”


종훈이 묻자 미주는 고개를 저었다. 

화면 속 후드티를 입은 남자는 능숙하게 발권기의 버튼을 눌렀고, 다른 남자는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미주도 두리번대더니 남자의 옷소매를 한 손으로 꼭 잡았다. 그리고 몇 분 뒤 세 사람은 영화관 입구로 들어갔다. 

종훈은 출구 쪽 CCTV를 빠르게 감았다. 2시간 30분 뒤, 사람들 틈에서 영화를 보고 나온 셋이 등장했고 순식간에 사이에 사라졌다. 


“어디 갔어요?”

“그러게 어디 갔지?”


종훈은 곳곳의 CCTV를 살펴봤지만, 세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지? 사각지대인가?”

“CCTV에 찍히지 않는 게 불가능한가요?”

“어. 이 근방에만 CCTV가 4대나 설치되어 있어서 CCTV가 비추지 않는 곳을 피해 다니기는 어려운데 여기에 찍히지 않았다는 건...”


종훈은 당황스러워하며 말끝을 흐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CCTV가 어디에 있는지, 사각지대가 어딘지 잘 알고 있는 거지. 결코 우연일 수 없어.”




종훈과 미주는 매니저의 안내를 받으며 다시 매표소 쪽으로 나왔다. 종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느낌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CCTV 속 불안해하던 미주의 모습이 자꾸 마음속에 걸렸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든 걸까? 함께 있던 두 남자는 누구이고,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어쩌면 그 두 남자는 지금 미주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찾았으면 벌써 찾았겠지. 아마 찾지 않거나 한국에 없는 거나 죽은 걸 거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미주가 화장실 표지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매니저한테 가서 영화 예매 기록을 물어보고 올게. 핸드폰 번호든, 신용카드든 뭔가 남아 있을 거야.”


화장실에서 손을 닦던 미주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직도 손끝이 덜덜 떨렸다. 그 두 남자. 분명 그녀와 아는 사이었다. 그렇지 않고선 몸이 이렇게까지 반응할 리 없었다. 자신과 그들 사이에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본 순간 마음 한편으로는 조금 반갑기도 했다.

화장실에서 나온 그녀는 종훈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주변이 아까와 달랐다. 


‘화장실 출구가 두 개였나?’


일단 표지판을 보고 따라가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그녀를 지나쳐갔다. 엄마 앞에서 까부는 아이, 손을 꼭 잡고 가는 연인, 인상 좋은 노부부 등. 그때, 누군가 미주의 손을 툭툭 쳤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귀여운 꼬마 여자아이가 있었다. 


“언니는 혼자 왔어?”


순진무구한 얼굴로 아이가 물었다. 


“아니, 친구랑 같이 왔어.”

“난 엄마랑 같이 왔어. 일렉맨 볼 거야. 엄마가 이것도 사줬다~”


아이는 손에 든 캐릭터가 그려진 물병을 보여주며 자랑했고, 미주는 미소를 지었다. 


“어머! 은정아, 여기서 뭐해? 아,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가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어디선가 아이의 엄마가 뛰어오더니 머리를 살짝 숙이며 미주에게 사과를 하고는 출구 쪽으로 사라졌다. 순간, 미주는 그곳이 무척 눈에 익다는 느낌을 받았다. 몇 번 왔던 것 같다. 아니, 분명 왔었다. 미주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발걸음을 옮겼고, 때마침 영화관 출구가 열리며 수십 명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그녀의 양옆을 애워싸며 지나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가슴이 갑갑해지면서 숨이 턱 막혔다. 머리도 깨질 듯이 아팠다. 

미주는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아 온몸을 웅크렸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무서웠다. 그냥 무서웠다. 왜 그런지 이유도 몰랐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사람들은 무심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고 있었지만 선뜻 다가오지 않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미주의 양 어깨를 잡았다. 떨림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괜찮아요?”

“아....”


미주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듯하다가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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