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꾸꺼 Jan 23. 2020

소설<Missing>5화. 은인(2)

주변은 시끄러웠고, 정신은 몽롱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도통 판단이 되지 않았다. 미주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뜨며 흐려진 시야를 되돌리려 노력했다. 종훈과 모르는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나 형사라니까. 왜 못 믿고 그래? 여기 명함 있잖아. 명함!”


종훈은 답답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향해 말했다. 


“명함은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당신이 형사라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을 보여달라고요.”

“뭐? 당신? 아, 뒷골 당겨. 신분증은 서에 있다고 했잖아. 사정이 생겨서 놓고 왔다고! 제발 좀 가라!”


남자는 단호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여자분이 깨어나서 당신을 증명하면 그때 갈게요. 행여나 납치범이나 성범죄자일 수도 있잖아요.”

“성범죄자...? 너 말 다했어?!”


종훈이 남자에게 버럭 화를 내려는 순간 미주의 가녀린 팔이 그를 잡았다. 


“저 일어났어요. 형사님.”


남자는 깨어난 미주를 보자마자 가까이 다가갔다. 


“아까 영화관에서 쓰러져서 제가 응급차를 불렀어요. 여긴 병원이고요. 몸은 어때요?”


하얀 얼굴에 짙은 눈썹과 긴 목선, 예쁘장하게 생겼으면서도 어딘가 남자다움이 물씬 풍기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20대 중반쯤 됐을까.


“아... 머리가 좀 아프네요...”


미주는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인상을 썼다. 


“의사 선생님께선 괜찮다곤 하시는데, 혹시 공황장애 같은 거 있으신가요?”

“네? 공황... 뭐요?”


그녀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때 종훈이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 캐묻고 이제 돌아가시지. 내 신원 확인은 됐지 않나?”

“죄송합니다. 걱정이 되어서.”


남자는 꾸벅 머리를 숙였다. 


“아니에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할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아무튼 괜찮으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자리를 피하려는 남성을 향해 미주는 서둘러 말을 했다. 


“잠시만요! 감사의 뜻으로 식사 대접이라도 할게요. 연락처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정말 괜찮습니다. 뭘 바라고 도와드린 게 아닙니다.”

“그럼 이름이라도.”


남자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이준태예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준태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곤 둘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미주는 아쉬운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요즘엔 이런 상황을 두고 뭐라고 하는 줄 알아?” 


종훈의 물음에 미주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까였다고 해. 아주 완전 퍼펙트하게. 식사 대접하게 연락처를 달라고? 아주 잘생긴 남자를 보니까 정신을 못 차리네. 다행히 남자가 대쪽 같아서 깍듯이 거절했어.”

“제가 무슨 거절을 당해요?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고마워서 그랬어요.”


미주의 귀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물론 고맙기도 하고, 남자애 얼굴도 잘 생겼으니까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그렇게 한번 만나고, 두 번 만나고, 세 번 만나다 보면.. 얼레리 꼴레리?”


종훈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미주를 쳐다봤고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아니라니까요!”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아니라고요.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얼레리 꼴레리~ 얼레리 꼴레리~”

“유치하게 왜 이래요!”


그녀는 종훈을 있는 힘껏 밀었고 종훈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40분 뒤, 미주의 가족들이 응급실로 들이닥쳤다. 그녀가 갑작스럽게 쓰러졌다는 이야기에 많이 놀란 것 같았다. 미주 엄마는 이 형사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딸이 쓰러진 것이 모두 그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엄마의 눈총에 못 이겨 병원을 먼저 떠났고, 미주 엄마는 정말 집에 돌아가도 되냐는 질문을 의사 선생님에게 수차례 한 다음에야 해주와 함께 미주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차 안은 미주의 아빠가 히터로 데워둔 탓에 온기가 가득했다. 그는 운전하며 백미러로 딸의 얼굴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상태를 체크했고, 엄마는 아예 몸을 돌려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어? 너 뺨에 상처가...”


옆에 앉아 있던 해주는 미주 얼굴에 손을 가져가자 순간적으로 미주는 움찔하며 그녀의 손을 쳐냈다. 예상치 못한 동생의 행동에 해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안. 갑자기 만지려고 해서 놀랐어... 이거 아까 넘어지면서 긁힌 상처야. 별 거 아냐.”

“별 거 아니라니 다행이네.”


미주와 해주 사이에 어색함이 흘렀고, 곧 엄마가 속상한 표정으로 아빠에게 말했다. 


“여보, 아무래도 내일 미주를 정 박사한테 데리고 가야겠어요. 안색도 안 좋고 정신적인 문제 때문에 쓰러진 것일 수 있다니까 더 자세히 검사를 받아야겠어요. 그리고 형사는 다른 사람으로 바꿔요. 경찰서에서 정직 처분받았다고 했잖아요. 찝찝해요. 분명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주는 고개를 저으며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 저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형사님 때문에 쓰러진 거 아니에요. 아까 갑자기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가서 놀라서 그래요. 아예 성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곳 제가 가봤던 곳 같았어요. 저, 제 기억 꼭 찾고 싶어요.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꼭 알고 싶어요.”


입을 앙다문 딸의 얼굴을 본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단 내일 병원에 가서 전담 의사를 옆에 붙이던지 하자.”

“형사님도 병원에 같이 갈 거예요.”

“그래도 형사는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건 어때? 아무래도 그 사람, 정직당했다는 게 마음에 안 들어.”

“나쁜 사람 같진 않은데...”


그녀가 중얼거리자 미주의 아빠가 말을 이었다. 


“그 사람 꽤 실력 있는 형사야. 예전에 유명했던 상주동 대도 사건 때도 범인 검거에 큰 기여를 했고 어린 나이임에도 좋은 성과를 많이 냈어. 당신은 그 형사 걱정 마. 내가 보증해. 정직 처분받은 것도 그럴만한 상황이 있어서야.”


미주 엄마는 남편을 쳐다보더니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당신이 그렇게 장담한다면 괜찮겠죠.”

작가의 이전글 소설<Missing>4화. 은인(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