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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Feb 06. 2020

소설<Missing>6화. 다정한 남자(1)

종훈은 이상하게 미주네 식구를 만나는 자리가 불편했다. 시종일관 미덥지 않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미주 엄마도 그렇지만 그들이 머물러 있는 공기가 마음에 걸렸다. 뭐랄까 뭔가 이질적인 게 있었다. 지금 자신이 있는 이 병원의 대기실의 모습도 그랬다. 미주 엄마는 미주를 걱정 그 이상의 표정으로 바라봤고 미주는 그런 시선이 익숙한 듯 멍하니 TV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김미주 씨, 들어오세요”


미주는 엄마와 일어서며 벽에 기대어 있는 종훈을 바라보았고, 모녀가 진료실로 향하자 종훈은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따라갔다.


정 박사의 외모는 꼭 나무늘보 같았다. 미주는 나무늘보를 어디에서 배웠는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나무늘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이가 먼 두 눈과 숱 없는 머리, 앙다문 작은 입, 구부러진 어깨를 한 그를 보면 누구라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정 박사는 미주에게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등 평범한 질문을 하고는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였다. 아마도 환자에게 신뢰를 얻기 위한 습관적인 행동 일터.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모녀를 향해 말했다. 


“큰 이상은 없습니다. 그때 쓰러졌던 건 미주 양이 갑자기 사람이 많은 공간에 노출되어서 그랬을 겁니다.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공포가 몰려온 것이죠. 혹 쓰러진 이후에 기억이 조금이라도 돌아오진 않았나요?”


“전혀요.”


미주는 실망스러운 지으며 짧은 대답에 이어 질문을 했다.  


“기억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나요?”


“뭐, 어떤 계기가 있으면 돌아올 수도 있지만... 그 부분에 대해선 확답을 드리긴 어렵군요. 일단 약을 좀 처방해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정신이 불안한 상태라 언제 또 공황장애가 올지 모릅니다.”


그는 탁탁 소리를 내며 자판을 두드렸다. 


“박사님, 우리 남편이 부탁한 건 어떻게....”


정 박사는 자신의 안경을 두어 번 만지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실질적으로 제가 미주 양 옆에 계속 있는다는 건 불가능해서 대신 제자의 도움을 받으면 어떨까 합니다. 존스홉킨스 교환 학생으로 작년에 1년 정도 유학을 다녀왔고, 성적도 굉장히 좋은 우등생입니다. 17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천재이죠. 이미 기본적인 의료 지식은 갖추고 있고, 현재는 심리학 쪽도 공부하고 있어 미주 양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친구가 응급조치를 하고 제가 곧장 달려가는 방향으로 하는 게 좋겠네요.”


“그 제자라는 사람은 믿을만한가요?”


그녀는 조금은 실망한 얼굴로 종훈을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요. 입도 무겁고 똑똑해서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 SNS를 안 하는 친구입니다.”


“그건 마음에 드네”


종훈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똑똑”


노크하는 소리 때문의 그들의 대화가 끊겼다. 정 박사는 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아는 듯 자연스럽게 말했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자 미주의 눈이 커졌다. 종훈도 놀란 얼굴이었다. 


“마음에 든다는 말은 취소.”


종훈은 방 안으로 들어온 준태를 향해 조용히 투덜거리며 미주의 얼굴을 살폈다. 미주는 그야말로 정지된 표정이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어?! 영화관에서.... 맞죠?”


미주를 본 준태는 놀란 눈을 하다가 이내 방긋 웃었다. 


“둘이 아는 사인가?”


무표정하게 정 박사가 물었다. 


“저 사람이에요. 제가 쓰러졌을 때 도와주신 분이!”

“어머, 정말이니? 고마워요!”


미주의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덥석 준태의 손을 잡았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요.”


그는 눈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이렇게 믿을만한 사람이 미주를 돌봐준다니 참 좋네요. 낯선 사람이었으면 미주도 많이 불편했을 거예요.”


미주 엄마는 오버라고 생각될 정도로 준태를 반가워했다. 아마 그의 훤칠한 키와 준수한 외모, 달콤한 미소 때문일 거다. 종훈과는 정말 반대되는 스타일이었다. 종훈은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 채 다시 툴툴거렸다. 


“도와주긴 개뿔. 옆에 서있기 밖에 더 했냐.”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미주는 준태가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이 참 좋았다. 옷차림부터 방긋 웃는 미소, 다정한 말투까지 예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사람 같았다. 종훈이 싫은 것 아니었지만 주먹부터 먼저 나갈 것 같은 거친 남자보단 준태같은 다정한 스타일에 마음이 갔다. 


“앞으로 하루에 한 번씩 미주 씨 집에 들러 상태를 체크할 겁니다. 상태에 좋던 나쁘던 교수님께 늘 보고할 거고요. 오늘은 이렇게 인사만 드리고, 내일부터 집으로 방문하겠습니다.” 


준태의 시선이 미주 엄마에게 머물자 그녀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미주랑 시간 정해서 언제든지 와요!”

“따르르릉~~~ 따르르릉~~~~”


 어디선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망치는 구식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고, 종훈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매너모드로 한다는 게 깜빡했네요. 오늘은 특별한 일이 없는 것 같으니 전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동료 형사한테 연락이 와서. 하하하~ 아마 잘 안 풀리는 사건 때문에 그럴 거예요. 가끔씩 제게 조언을 구하니까요. 그럼 전 이만.”


종훈은 횡설수설하며 아무도 묻지 않은 말을 하고는 그냥 밖으로 나가버렸고,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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