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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Feb 06. 2020

소설<Missing>7화. 다정한 남자(2)

이열로 가지런히 썰어져 나온 탱글탱글한 순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웅이는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종훈을 보고는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너 진짜 짠하다. 거기서 잘 안 풀리는 사건이 있어서 조언을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도대체 왜 한 건데? 그 가족이 순탠지 준탠지한테만 잘해주니까 삐진 거야?”

“나도 쪽 팔린 거 알거든? 그 진료실 문을 나왔을 때 창피해서 콱 죽고 싶었어. 근데 기분이 더럽잖아. 날 본지가 더 오래됐으면서 도둑놈 취급이나 하고, 그 기생오라비 같이 생긴 놈은 이웃나라 왕자님처럼 쳐다보잖아.”

“그거야. 넌 정직당한 못난 형사고 그놈은 미국 물까지 마시고 온 예비 의사잖아. 게다가 어리고 잘생겼고. 솔직히 엄마는 그렇다 치고 미주 입장에서 보면 너랑 그놈이랑 만난 지 몇 시간 차이 안나거든?”

“그놈이 어떤 놈인 줄 알고 그렇게 반색이야! 뭔가 지는 것 같아서 짜증 나. 으아악!!!”


종훈은 젓가락 하나를 들어 순대를 공격적으로 찔러댔고, 곧 누군가의 손이 ‘퍽’하고 그의 머리를 강타했다. 


“미친놈. 어디서 음식 가지고 장난을 쳐!”

“아, 누님! 왜 제 예쁜 뒤통수는 때리고 그래요?”

“먹는 것 가지고 그러면 못 써. 그리고 너 오늘 여기 있는 순대랑 순댓국이랑 싹 다 먹고 가. 얼굴이 빼짝 곯았잖아. 못생긴 놈이 더 못생겨졌어.”


나이 지긋한 종업원은 순댓국을 종훈 앞에 ‘탁’ 놓고 쿨하게 사라졌다. 


“저 누님은 정말 츤데레라니까.”


능청 떠는 그의 눈치를 보며 웅이 목소리를 낮추며 궁금했던 걸 슬쩍 물었다.  


“근데 재판 결과가 안 좋았다며. 거기… 갔었어?”


종훈은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물컵을 들어 꿀꺽꿀꺽 마신 후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순댓국을 퍼 먹었다. 


“왜 물어?”

“아니. 너 걱정되어서 그런 거지. 그게 그냥 재판도 아니고.”

“내가 간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도 없잖아. 나 보면 은희 생각나서 가족들 속만 더 상해.”

“처음부터 여러모로 불리했다지? 선생들이 똘똘 뭉쳐서 은희를 그렇게 대한 적 없다고 증언했고, 아이들도 막판에 증언 안 하겠다고 마음을 돌렸잖아. 아무튼 사람 새끼 중에 꼭 짐승보다 못한 새끼들이 있어.”

“그 짐승 중에서 내가 가장 나쁜 새끼지.”


그의 말에 웅은 답답하다는 듯 흥분하며 말했다. 


“니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니가 은희 걔 위해서 못한 게 뭐가 있어. 은희 그렇게 되고, 걔네 가족들 조차 은희 그렇게 만든 그 새끼들한테 휘둘려서 절절 맬 때 니가 달라붙어서 재판까지 끌어냈잖아.” 

“... 못했잖아…”

“뭐라고? 뭘 못해?”

“지키지... 못 했잖아. 결국은. 결국은 내가 은희를 지키지 못했어.”


금방이라도 눈물이 차오를 것 같은 쓸쓸한 눈빛으로 허공을 쳐다보던 그는 웅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나 은희 차갑게 식어갈 때 뭐했는지 알아?”

“…”

“텔레비전 보면서 깔깔대고 웃고 있었어. 그때 3일 내내 뜬눈으로 밤 지새우면서 겨우 청남동 택시 강도 사건 끝내고 은희 집에 갔었어. 사실 갈 생각이 없었는데 부재중 전화가 7통이나 와있더라고. 그래서 속으로 짜증 내면서 집에 들어갔는데 은희가 침대에 누워있는 거야. 매일 불면증 때문에 전화해서 재워달라고 그랬던 애가 너무 곤히 자고 있는 거지. 뭔가 신기해서 문지방에 서서 가만히 보고 있다가 다가가 인사라도 하려는데, 너무 피곤하더라고. 졸리기도 하고. 결국은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켜고 소파에 누워서 깔깔거리다가 잠들었어. 그리고 다음날 느지막하게 깼는데 정말 기분이 이상하더라. 왜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것 같은 기분 있잖아. 은희가 일어났으면 날 깨웠을 텐데, 씻고 다시 자라고 했을 텐데, 내 볼에 뽀뽀라도 하고 출근했을 텐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서 은희 방으로 뛰어갔는데 전날 밤과 정말 똑같은 모습으로 누워있었어. 차갑게 식어서. 약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약통에 수면제가 한 알도 남아있지 않았고. 만약 그날 밤 내가 은희 곁에 가까이 가기만 했어도 살았을 거야.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쳐 자지만 않았어도... 그리고 내가 병신처럼 전화했을 때 받기만 했었어도…”

“왜 아직도 자책하고 그래. 니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숨이 끓어져 있었을 거라고 의사도 그랬잖아.”

“그때 숨이 끊어졌던 안 끊어졌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은희는 그동안 수없이 나한테 도와달라고 하고 있었어. 불안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고, 대화하다가 별안간 울먹였고, 불면증도 걸렸어. 근데 난 바보같이 그게 그냥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어. 아니, 귀찮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나 봐.”

“야, 그때 얼마나 바빴냐. 니가 과로사로 쓰러지지 않은 게 신기한 때였어. 너 그때 그 살인마 새끼 때문에 죽을뻔도 했었잖아. 그냥 상황이 그랬던 거야.”

“내 상황이 어쨌든 은희는 내 책임이었어. 내가 책임지고 지켜야 할 사람이었다고!”


종훈은 숨쉬기가 불편해졌다. 바윗덩어리 수십 개가 가슴이 죄다 뭉개지도록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다 게워냈다. 




어린 미주는 도화지에 성에 갇힌 공주님을 그리고 있었다. 종알대던 그녀는 옆에 앉은 남자아이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그는 미주보다 키가 훨씬 컸다. 하지만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나이 든 남자가 또 다른 남자아이와 서 있었다. 남자아이가 미주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뭐라고 남자에게 말하자 그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미주에게 다가와 멱살을 움켜쥐곤 질질 끌고 갔다. 미주 옆에 있던 남자아이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지키려고 했다. 남자의 다리에 매달려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그는 길가의 돌멩이를 차듯 아이를 뻥 찬 후, 미주를 질질 끌고 부엌으로 데려갔다. 


“삐이-“


가스레인지에 있던 주전자가 물이 끓었다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남자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전자를 들어 어린 미주를 향해 내밀고는 협박했다.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니 오빠 얼굴에 부어버릴 줄 알아. 그럼 눈에 뜨거운 물이 들어가서 평생 앞을 보지 못해. 장님이 되는 거지. 그리고 그 물이 입술에 닿으면 타들어가서 아무것도 먹지도 못할 거야. 아마 굶어 죽겠지.”


미주는 벌벌 떨며 주방 바닥에 웅크린 자세로 납작 엎드렸다. 아직도 끊고 있는 주전자의 물이 그녀의 등위로 떨어졌다. 


“으아- 으아악!!! 으아아!!!!”


자지러지는 듯한 미주의 비명소리에 그녀의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아침을 차리고 있던 미주 엄마와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던 해주, 그리고 준태가 들어왔다. 

미주는 침대 위에 무릎을 양팔로 안은 채로 쪼그려 앉아있었다. 엄마가 미주에게 달려가 그녀를 안으려고 하자 미주는 엄마를 밀쳐내며 양귀를 막고 소리를 질렀다. 


“다가오지 마! 만지지 마! 꺄아아 아---”


얼마나 힘이 셌는지 미주 엄마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고 해주는 놀란 얼굴로 엄마를 부축했다. 미주는 흡사 공포에 질린 짐승 같았다. 눈엔 초점이 없었고, 온몸은 땀범벅에 머리카락은 엉켜있었다. 그녀가 처음 집으로 왔을 때의 모습이었다. 


“미주 씨. 나 좀 봐요. 지금 여기 미주 씨 집이에요.”


준태가 다정하게 말을 걸며 미주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벽으로 등을 밀착시킨 후 더욱 웅크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마치 다가가 오지 말라는 것처럼. 그는 잠시 미주 엄마와 해주에게 밖으로 나가 달라고 했고, 미주를 향해 다시 말을 걸었다. 


“미주 씨. 아니, 미주야. 나 좀 봐봐. 응?”


반응이 없는 미주. 


“여기는 엄마, 아빠, 해주랑 니가 살고 있는 집이야. 그리고 넌 아이가 아닌 22살의 김미주이고. 넌 아주 안전한 곳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그녀는 여전히 가녀린 어깨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준태는 무언가 생각난 듯 급하게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음악을 틀었다. 20초 정도 지났을까 미주의 떨림은 서서히 잦아들었고, 조금 정신이 돌아온 듯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미주야. 나 준태야. 나 어제도 여기 왔었잖아. 꽃에 관한 이야기도 하고. 기억 안 나?”


미주의 눈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녀는 준태의 목을 안고선 엉엉 울기 시작했고 그는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 

울음소리를 들은 미주 엄마와 해주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준태는 그들을 보며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했고 어느 정도 미주의 상태가 진정이 되자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소파에 앉은 미주의 얼굴엔 핏기가 거의 없었다. 엄마가 미주에게 물을 건넸고, 미주는 물을 마신 후 준태를 바라보았다. 


“그 노래 뭐예요?”

“노래?”

“아까 제게 들려줬던 거요.”

“환자들이 불안해할 때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로 연주한 음악을 들려주면 마음의 안정을 찾기도 해. 그래서…”

“아니, 그 노래 제목이 뭐냐고요?”

“어?”


준태는 따지듯 묻는 미주의 표정과 말투에 놀란 듯 잠시 당황해하다가 스마트폰의 노래 재생 목록을 보았다. 


“클레멘타인이네.”

“클레멘..타인..?”


그녀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엄마에게 물었다. 


“나 어렸을 때 이 노래 많이 들려줬어요?”


미주 엄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그런 기억은 없는데.”


그녀는 해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알려주긴 했지. 나 어렸을 때 동요 가사 바꿔서 장난치는 게 유행이었거든.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예쁜 미주 살고 있네~ 이런 식으로. 너 실종되기 전에 내가 몇 번 불러줬을 거야. 준태 씨, 아마 나 때문에 미주가 진정된 것 같아요.”


해주는 뿌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마쳤고, 그 말을 들은 미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뭐 기억나는 거라도 있어?”


준태는 해주의 말은 무시한 채 미주에게 물었고, 미주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어요. 아까 노래를 들었을 때 차츰 마음이 편해졌어요. 굉장히 좋았던 기억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정확히 ‘무엇’이 기억나지는 않아요. 그냥 느낌만 있을 뿐.”

“억지로 기억해내려고 하지 않아도 돼. 때가 되면 기억이 자연스럽게 돌아올 거야. 너무 집착하면 더 힘들어져. 우리 잠깐 밖에 나갔다 올까? 시원한 공기를 좀 쐬면 기분이 더 좋아질 거야.”


 미주는 고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해주도 일어났다. 


“저도 같이 가요.”

“아니오. 미주랑 저랑 둘만 다녀올게요. 미주랑 둘이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아... 네....”


해주는 민망한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보았고, 미주와 준태는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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