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꾸꺼 Mar 02. 2020

소설<Missing>8화. 기억의 조각

간간히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밖은 참으로 따뜻했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고 있었고, 벚꽃나무들은 하얀 꽃망울을 하나둘 터트리고 있었다. 봄이라는 걸 알고 있긴 했지만, 오늘의 봄은 어제의 봄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미주는 상체가 빵빵해질 정도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런 미주를 보며 준태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저한테 반말해요? 아까부터 계속.”

“좀 닭살 돋잖아. 미주 씨라니. 너무 멀게 느껴지고 말이야.”


그녀가 무표정으로 준태를 바라보더니 ‘풋’하고 웃었다. 


“맞아요. 사실 좀 어색했어요. 되게 억지로 격식 차리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알고 지낸 지 2주 좀 넘었으니까 이제 편하게 말해도 되죠, 뭐.”


“너도 말 놓지? 그리고 나 부를 때 여기요, 저기요, 그거 그만하고.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때?”

“오빠요?”

“어. 내가 너보다 나이가 3살 더 많으니까.”

“‘오빠’라. 다정한 단어네요. 말은 그냥 존댓말 할게요. 전 이게 편해요.”


미주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좋을 대로 해. 그런데 형사님이랑 하던 수사는 어떻게 됐어? 그 형사님 도통 못 봤는데. 뭔가 하고 있기는 한 거야?”


준태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오빠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만나지 못했고 5일 전에 통화한 게 다예요.”

“전화 통화했을 땐 무슨 말했어?”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조사가 늦어진다’, ‘곧 연락하겠다’ 그런 말들이었어요. 뭔가 많이 바빠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저도 많이 답답해서 찾아가 보려요.”

“내가 같이 갈까?”


그가 걱정되는 얼굴로 물었다. 


 “괜찮아요. 오빠까지 찾아가면 더 화낼 거예요. 왠지 모르겠지만 형사님은 오빠가 썩 마음에 들지 않나 봐요.”

“내가 그때 형사님을 성추행범이라고 해서?”


미주는 그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웃음 터트렸다. 


“오빠한테 더는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조사는 형사님과 저의 일이니 둘이 해결할게요.”

“그럼 그렇게 해. 사실 나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


준태는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뭔데요?”

“예전부터 느꼈던 건데 너 유독 너희 언니한테 차가워. 해주는 네게 잘해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넌 자꾸 그런 해주를 밀어내는 것 같아. 둘이 무슨 일 있었어?”


미주는 한쪽 입술을 깨물더니 대답했다.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언니가 살갑거나 반갑지 않았어요. 가끔은 이 사람이 진짜 내 친언니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언니가 저를 대하는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건 아니에요. 모르겠어요. 그냥 언니라는 존재가 별로 내키지 않아요.”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은 질투 같은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고요. 내가 모르는 내 마음 같은 게 있을 수 있으니까. 안 그래도 노력해보려고요. 언니랑 잘 지낼 수 있도록.”

“다시 가족이 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됐으니까 시간이 흐르면 더 잘 지내게 될 거야. 그리고 하나만 더 물어보자. 언니한테 그렇게 차갑게 굴면서 생면부지인 나한텐 왜 그렇게 친근감을 느끼는 거야?”


그녀는 잠시 말을 않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오빠가 꼭 봄 같아서요. 다정하고 따뜻해요. 처음 봤을 때부터 굉장히 익숙했고 반가웠어요. 꼭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찾은 것처럼.”

“야, 너 나한테 반한 거 아니야?”


준태가 장난스레 말하자, 미주는 빙그레 웃었다. 


“반했으면 날 좋아해 줄 거예요?”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다른 데 가서 그런 소리 하면 큰일 나 정말!”


그의 놀란 눈에 미주는 깔깔 대며 웃었고, 준태도 따라 한참을 웃다가 숨을 골랐다. 


“기분이 많이 나아졌나 보네. 그렇게 크게 웃는 거 처음 봐.”

“오늘 아침, 꿈에서 깨어났을 땐 정신을 못 차리도록 무서웠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악몽이 꼭 악몽만은 아닌 것 같아요.”

“무슨 말이야? 악몽이 악몽이 아니라니. 무슨 꿈이길래.”

“꿈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기억의 아주 작은 조각이 돌아온 것일지도.”


미주는 차근차근 준태에게 자신이 꿈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굳어지더니 이내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등에 흉터가 있었다고 했었지? 네 말대로 기억 중 일부가 돌아온 것일 확률이 커. 하지만 어릴 적 기억이고, 기억이 꿈으로 나타나면서 심하게 왜곡됐을 수도 있어. 이게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기억의 퍼즐 한 조각이 자리를 잡았으니 다른 기억들도 조금씩 돌아올 거야.”

“돌아오는데 까지 얼마나 걸려요?”


미주는 간절함이 담긴 눈빛으로 말했다. 


“글쎄. 네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것들을 많이 접한다면 생각보다 빨리 돌아올 수 있겠지. 하지만 정확한 기간은 몰라. 평생이 걸릴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모든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어. 너무 서두르지는 마. 기억을 찾고 싶어 하는 네 마음이 결국은 그 조각들을 불러올 거야.”


그는 빙긋이 웃으며 말하자 그녀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별말씀은. 그런데 배고프지 않아? 우리 저기에서 뭐 먹고 가자.”


산책길의 끝의 다다랐을 때쯤, 준태는 길 건너의 시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가 중앙시장 맞죠? 가보고 싶었어요. 뭐 먹을까요?”


신이 난 미주의 얼굴을 흐뭇하게 보며 준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저기에 끝내주는 순대국밥집이 있어. TV에도 나온 맛집이야.”

작가의 이전글 소설<Missing>7화. 다정한 남자(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