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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Mar 02. 2020

소설 <Missing>9화. 할머니(1)

장날의 시장은 활기찼다. 시장 입구부터 끝까지 사람들로 북적였고, 상인들은 특가를 외치며 행인들을 불러 모았다. 미주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채소부터 과일, 생선까지 가게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준태는 정신없이 시장을 구경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해. 지난번에 영화관에서 사람들 때문에 쓰러졌었잖아.”


미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느낌이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엔 외롭고 무서웠는데 지금은 따뜻하고 정겨웠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 걸까. 시장이라는 장소 때문일까. 아니면 준태 때문일까.


“저 지금 컨디션 아주 좋고, 기분도 최고예요. 힘들면 오빠한테 말할게요. 그런데 저거 뭐예요? 먹고 싶다!”


그녀는 뜨끈한 육수에 몸을 담그고 있는 어묵꼬치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리어카 앞으로 깡총거리며 뛰어갔고, 준태는 얼른 그녀를 뒤따라가 국물에 푹 익은 어묵꼬치 들어서 건넸다. 


“어묵이야. 부드러운 게 꽤 맛있어. 뜨거우니까 불어서 먹어.”


그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계산을 하고는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나 잠깐 ATM기에 다녀올게. 국밥집이 현금만 받아서 말이야. 여기에서 구경하면서 어묵 먹고 있어. 10분이면 돼.”


미주는 고개를 끄덕였고, 준태는 서둘러 길을 갔다. 미주는 자신의 주머니를 뒤졌다. 핸드폰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돈 좀 들고 나올걸....”


미주의 속상함은 어묵을 입에 넣었을 때 사라졌다. 어찌나 통통하고 맛있는지 마치 신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어묵을 거의 다 먹었을 때쯤 누군가 그녀의 옷소매를 잡아끌었고 무의식적으로 그녀는 뒤돌아보았다. 


“누구세요?”


까만 봉투를 든 허리 구부정한 할머니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한 듯 지팡이를 집고 있었다. 


“아가씨, 내가 손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데 나 이 짐 좀 저기까지만 들어주면 안 될까?”


노인은 반대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미주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녀의 짐을 빼앗아 들고는 대답했다. 


“네. 할머니.”

“고마워, 아가씨. 요 근처 택시 타는 곳까지만 들어줘. 내일이 우리 아들 생일인데 미역국 끓여주려고 사골국물을 샀어. 근데 어찌나 무겁던지 땅바닥에 주저앉게 생겨서 아가씨한테 부탁 좀 하는 거야. 늙으면 다 쓸모가 없어져. 다리도 팔도 허리도.”

“몸도 안 좋은데 어떻게 혼자 나오셨어요.”

“아들이랑 둘이 사는데, 아들 몸이 더 안 좋아. 그래서 혼자 왔어. 불쌍한 내 새끼.”


미주는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아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쪽으로 와.”


5분 정도 할머니의 뒤를 쫓아가던 미주는 리어카가 겨우 들어갈 만한 너비의 골목에 다 달았다. 


“여기에 택시가 있어요?”

“지름길이야. 아가씨 힘드니까.”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할머니의 뒤를 따라갔고, 차 두어 대 들어갈 작은 주차장이 나왔다. 그곳은 더 좁은 골목과 연결되어 있었다. 


“저기만 쭉 가면 도로가 나와.”


노인이 손짓한 좁은 골목은 꽤 으스스했다. 낡은 건물엔 ‘여인숙’이라고 쓰인 색 바랜 간판이 아슬아슬하게 달려 있었고, 낮임에도 주변이 꽤 어두컴컴했다. 겁이 덜컥 난 미주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할머니 죄송해요. 같이 온 사람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절 기다리고 있거든요.”

“나 혼자 짐을 어찌 들고 가?”


할머니는 울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잠깐 기다려 주시겠어요? 제가 오빠 데리고 이쪽으로 올게요.”

“거의 다 왔어, 아가씨. 저기 골목만 지나면 된다니까. 아들 때문에 집에 빨리 가봐야 해. 얼른 들어주고 가.”


노인은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 


“죄송합니다. 저 가봐야 해서.”


미주가 팔을 자신의 몸 쪽으로 당기며 꾸벅 인사를 하자, 할머니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얼른 들어주고 가라고! 저기까지만 가! 저기까지만!!!”


할머니는 노인의 힘이라곤 생각되지 않을 만큼 그녀의 팔을 세게 쥐고는 잡아끌기 시작했다. 


“싫어요. 안 가요!”


미주는 최대한 몸을 반대로 끌며 저항했고,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꺼냈다. 


“어디에서 수작질이야!”


할머니는 지팡이를 높이 들어 미주를 향해 휘둘렀고, 놀란 미주는 뒤로 넘어지며 핸드폰을 땅에 떨어뜨렸다. 


“기껏 구해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아? 죽여도 시원찮을 년. 그런 짓 하고 얼마나 밥을 잘 처먹었기에 면상에 기름기가 잘잘 흘러? 너도 우리 아들처럼 똑같이 당해봐야 해. 죽어. 죽어. 죽어!!!!”


할머니는 다시 지팡이를 들었고, 그녀는 양손을 들어 머리를 감쌌다. 다행히 지팡이는 그녀가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에 스치듯 맞았고, 봉지가 터지면서 미주의 머리에 액체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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