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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May 15. 2020

할아버지와 자전거와 돈까스

음식 에세이

아주 어렸을 때 난 남쪽 바다가 닿아있는 삼천포에 살았다. 그곳엔 친할아버지, 친할머니 등 친가 쪽 식구들이 많이 살고 있었는데 사천시가 된 지금의 삼천포의 모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깡촌이었다.


친할머니의 말씀으로는 30년 전 그때의 할아버지는(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무척이나 무뚝뚝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빠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고, 말 수도 적어서 무심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단다. 그런데 그런 할아버지가 첫 손주인 내가 태어나고 바뀌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말도 잘 안 건네던 할아버지가 동네방네 갓 태어난 아기 자랑을 그렇게 하고 다녔다고 한다. 


내가 말도 조금씩 하고 잘 걷게 될 무렵,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직접 고쳐 아이 좌석을 만들었고 나를 안다시피 그곳에 태워 다녔다. 그리고 가끔씩 돈까스를 사주러 A식당에 갔는데 당시 삼천포엔 돈까스를 파는 경양식집이 없었고, 이런저런 한식 메뉴를 파는 A식당에서만 특별 메뉴로 돈까스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난 유독 그 비싼 돈까스를 잘 먹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몰래 나만 자전거에 태워 돈까스를 먹이러 다녔다. 

그때 그렇게 돈까스를 먹어서 그런지 어른이 된 지금도 난 돈까스가 참 좋다. 나이프가 그릇과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며 바삭하게 튀긴 돈까스를 잘라 소스를 욕심껏 찍어 먹으면 그렇게나 맛있을 수가 없다. 


친할머니를 뵈러 삼천포에 가면 옛날에 살던 곳을 지나곤 한다. 난 그때마다 그쪽 건물 어딘가를 보며 할아버지가 자전거에 어린 나를 태워 돈까스를 먹으러 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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