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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꾸꺼 Jan 28. 2024

나의 주짓수일기 01. 30대 후반에 시작한 주짓수

화이트벨트 3그랄

'주짓수를 배워볼까'라는 생각은 주짓수 퍼플 벨트였던 회사 대표님 때문이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오전 업무 시간에 회의하러 다른 층으로 내려가려던 중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대표님을 만났다. 대표님은 자신의 상체보다 큰 직사각형 백팩을 메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 주짓수 도장을 다녀오신 건지 가방 메시로 된 부분에 도복이 보였다. 난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간 엘리베이터 층수 안내판을 보다가 대표님과의 스몰토크를 위해 입을 열었다.


"대표님, 가방이 진짜 크시네요. 운동 다녀오셨어요?"

"네. 아침에 도장에서 주짓수 하고 왔어요."

"정말요? 주짓수 재밌어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나요?"


대표님은 주짓수에 관한 나의 질문이 반가웠는지 반색하며 대답했다.


"주짓수 꽤 재밌어요. 타격을 주는 운동은 아니지만, 머리를 쓰면서 해야 하기 때문에 배워나가는 재미가 있답니다. 그리고 칼로리를 소모하는 모든 운동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죠."

"주짓수 하는 여성분도 있어요?"

"물론이죠. 요즘 세상이 험해서 여자분들께 주짓수를 호신용으로 배워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도복에 얼굴이 쓸릴 수 있다는 점이 좀 단점이기는 하지만, 배우면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나는 대표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50% 이상 빈말로 '저도 언젠가는 배워봐야겠어요'라고 대답했다. 100% 빈말이 아니었던 이유는 집 근처 단골 카페 지하에 '상도 주짓수'라는 도장이 있었는데 마음의 작은 한켠에 '한번 배워볼까'라는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겐 주짓수의 문턱은 높았다. 필라테스&요가 학원을 다니다가 남자들이 하는 주짓수 도장에 간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표님과의 대화 후 1년이 지난 2022년. 그해는 참 이상했다. 집 근처까지 낯선 남자가 쫓아와 도망치는 일이나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는 일 등을 겪었다. 그 결과, 세상 모든 낯선 남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생각하게 되고 지하철에서는 예민해지는 상태가 되었다. 세상 사람의 반이 남성이니 가는 장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짓수를 다녀보자. 무술을 배우면 날 지킬 수 있으니까 덜 예민해질지도 몰라.'


처음 주짓수를 등록하러 가는 길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어떤 건강한 의도로 시작하는 게 아닌 트라우마 때문에 시작하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운동하다가 다치면 어쩌지?', '운동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못된 사람들이면 어떻게 하지?', '이 나이에 이걸 시작하는 게 맞나?' 등등 별 부정적인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트라우마를 해결할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밖에 없었다. 난 10분 거리의 도장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걸어갔고 도장 문 앞에 잠시 서서 문고리를 잡았다가 놓았다가 하다가 결국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시큼한 땀냄새와 함께 하얀 매트가 펼쳐진 텅 빈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힘차게 인사했다. 30대 후반이었던 나는 오랜만에 보는 대학생들의 모습에 굉장한 어색함을 느꼈다. 난 대충 머리를 끄덕였고, 머리를 짧게 자른 젊은 남성분이 내게 다가왔다.  


"상담하러 오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네..."


젊은 남성은 도장 관장이었는데 날 책상 옆 의자로 안내했다. 그는 주짓수라는 운동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 후 하루에 수업이 몇 타임인지, 몇 시에 시작하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3달 등록하면 주짓수 도복을 준다고 했다. 어차피 도복은 사야 하고 1달 운동해서는 주짓수를 경험했다고 할 수 없어서 3달을 결제했다. 배우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3달은 해보고 정 힘들면 그때 그만둘 마음이었다.

카드 영수증을 받아 든 나는 관장님에게 일주일 뒤부터 시작하겠다고 이야기하며 도복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랫동안 고민한 일이지만 막상 시작하려고 하니 얼떨떨했다.


'내가 주짓수를 시작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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