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제대로 하기 프로젝트』 epsode.1 워크에세이
출판시장은 해마다 위기를 거론합니다. 숫자도 이를 뒷받침하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성인이 40%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책 말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많다는 응답이 줄을 이었습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반응이었죠.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가 한국에 상륙했던 주말, 저 역시 밤잠을 물리쳐가며 콘텐츠를 즐겼으니까요.
등단한 작가의 사정도 고달픕니다. 그 어렵다는 등단의 바늘구멍을 통과하고도 전업작가로서의 삶은 멀기만 합니다. 몇 개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회사에 취직을 해야 하죠. 시를 쓰는 동료의 증언은 더욱 처참했습니다.
"시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어. 시 독자는 전국에서 오천 명. 그 정도라고 봐. 시인은 오천 명을 보고 시를 쓰는 거야."
역시 숫자가 근거가 됩니다. 작품 한 편, 한 편을 모아 시집으로 한 권을 내기까지 몇 년이 걸립니다. 몇 년 만에 낸 작품은 만 원에서 만 오천 원 사이의 가격이 책정되죠. 작가의 인세는 통상 책값의 10%라는 점을 미루어 볼 때 전국의 모든 시 독자에게 판매가 된다 해도 수입이 500만 원에 불과합니다.
위기의 상황에도 쓰는 사람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온라인 플랫폼(브런치,북저널리즘,롱블랙,폴인 등)은 가히 춘추전국시대라고 해도 좋을 지경이고, 스스로 출판까지 하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누구나 쓸 수 있으니 공급이 많아지고 콘텐츠도 다양해졌죠. 기성 작가의 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생한 경험과 진솔한 입담이 돋보였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작가로 성공한 사람도 속속 등장했죠. 풍문으로 들려오는 성공담은 많은 이들을 글쓰기 수업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의외로 수강생들의 목표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그날그날을 기록하고 싶어서 혹은 그냥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서. 그렇게 글쓰기는 밥벌이의 기술을 넘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리추얼(의례)이 되었습니다. 이럴 경우 글을 쓰는 사람은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만이 독자입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케케묵은 감정을 해소하며 오로지 나를 위해 글을 씁니다. 그래서 나를 위한 글쓰기에는 특별한 요령이 없습니다. 솔직하기만 하면 되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자 하는 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콘텐츠를 소비할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떠올리면 간단합니다.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다가 조금만 지루해져도 뒤로가기를 누르고, 시원치 않은 글은 끝까지 읽지도 않고 스크롤을 내리는 태도.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콘텐츠 소비자의 기본 태도입니다. 그러니 남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 콘텐츠 생산자들은 최소한 버려지지 않을 무기 한 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내 글을 꼭 읽어야 하는 최소한의 이유,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질문을 드리면, 사람들은 당장 매력적인 무기부터 찾기 시작합니다.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는 입담이나, 희귀한 경험을 기반으로 한 소재가 눈에 띄죠. 인기가 많은 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무기이지만 당장에 흉내내기는 아주 어려운 경지입니다. 섣부르게 썼다가는 오히려 독이 되죠. 아무리 좋은 무기라도 쓰는 사람에게 맞지 않으면 짐이 되니까요.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는 글은 끊임없는 경험과 독서 그리고 쓰기와 고쳐쓰기의 반복으로 탄생한 문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승우 작가는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소설에 신동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다섯 살 때 작곡을 했다는 음악가도 있고 열 살도 되기 전에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었다는 과학자도 있다. 그러나 열몇 살에 걸작을 쓴 소설가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중략) 타고난 재능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테크닉의 습득만도 아니다. 삶이, 삶에의 두껍고 깊은 참여가 소설을 만든다."
소설 쓰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일반적 글쓰기에도 충분히 적용되는 말입니다. 마냥 좋은 무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옛날처럼 글을 세상에 내어 놓는 일이 어려운 시대도 아니니까요. 다른 이의 평가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으니 오히려 글 연습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최소한의 무기가 있다면 연습 시간을 효율적으로 단축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질문을 해보죠.
"사람들이 왜 내 글을 읽어야 할까요?"
선뜻 대답하기가 힘든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요?
"가장 최근에 읽은 글 -책이든 블로그 글이든-, 왜 읽으셨어요?"
주제가 재미있어 보여서,
맛집 찾으려고,
제품 후기가 궁금해서,
동료들이 추천한 책이라서,
베스트셀러라서,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이토록 다양한 대답을 관통하는 한 가지 이유, 바로 쓸모입니다. 읽는 이의 호기심을 채워주든, 정보를 제공하든, 사회적인 분위기에 발맞추려는 시도이든, 모두 읽는 이가 유용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기 때문에 '읽기'라는 행위가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누군가 내 글을 읽었을 때 '쓸모가 있다'고 느끼거나 '도움이 된다'고 느끼도록 써야 하는 거죠.
"저는 도움을 드릴 게 없는데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알아야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한 경험이 필요한 것도 아니죠. 매일 겪는 일상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해보세요. 직장인이라면, 출근해서 무엇을 먹을까 치열하게 고민했던 일도 좋습니다. 사수가 가르쳐준 방법보다 훨씬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낸 기쁨을 뽐내도 좋고, 실수 때문에 남몰래 울었던 일도 좋아요. 학생이라면 코로나 시대 학교 생활에 대해 쓸 수도 있겠죠.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라면 카페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들이 소재가 될 겁니다.
저는 이를 워크에세이(Work+Essay)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워크(work)'라는 말은 직업뿐만 아니라 고정적인 취미와 같이 자신이 일정한 시간을 투자한 일상을 가리킵니다. 당장에는 취미 생활이더라도 꾸준히 기록하면 업(業)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일상을 기록하는 일, 어쩌면 시시하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만이 겪을 수 있는 일상과 내가 체득한 지혜를 꾸준히 쓰는 일은 작지만 확실한 무기입니다. 기록이 쌓이면 내공이 생기고 읽는 사람도 그것을 느끼죠.
그렇게 쌓인 글은, 나와 같은 일상을 살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꿈이 되고 나와 같은 일상을 견디고 있는 이들에게는 힘이 되며, 나와 같은 일상을 지나온 사람들에게는 추억이 됩니다.
좋은 워크에세이는 작가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성공적으로 개인 브랜딩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돈이 들지도 거창한 장비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정말 재미있게 읽은 <매일 갑니다, 편의점>은 편의점 점장인 작가가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한 에세이입니다. 시시콜콜한 상품 등록 과정과 함께 계절에 따라 어떤 물건이 들고 나는지도 등장합니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일상일 텐데 독자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오는 지점이었죠. 저는 이제 편의점이라면, <매일 갑니다, 편의점>의 작가 봉달호를 떠올립니다.
꼭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상만이 소재가 되지는 않습니다. <기획자의 독서법>을 쓴 김도영 작가는 독서라는 일상을 기획자의 시선에서 풀어냈습니다. 기획하는 방법을 본격적으로 쓴 서적보다 훨씬 더 쉽게, 훨씬 더 널리 읽히는 내용이었습니다. 기획 자체에 관심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획자의 일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까지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기획자로서의 개인 브랜딩도 확실히 돋보였습니다.
에세이의 춘추전국시대입니다. 혼란 속에서 인재가 탄생했던, 그래서 다양한 사상이 발전했던 춘추전국시대의 역사를 떠올리면 전략은 명확합니다. 한 사람이 독식하는 시장에서는 Best one이 되어야 이길 수 있지만 다양한 사람이 파이를 나누어 가진 시장에서는 Only one이 되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읽히는 글로 살아 남기 위한 첫걸음. 그것은 나만 알 수 있는, 나다운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요.